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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놀이터 도둑은 누구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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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남의 놀이터에 오면 도둑인 거 몰라?”

최근 인천 영종도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신나게 놀던 아이 5명이 졸지에 도둑으로 몰렸다. 다른 곳에서 산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도둑 취급한 것은 아파트 입주민 대표였다. 아이들이 기물을 파손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이에 아이들 부모는 협박 및 감금 혐의로 해당 대표를 고소했다. 아파트는 2019년에 지은 새 아파트였다. 입주민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놀이터는) 우리 아파트 사람의 고유공간이기 때문에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인성 문제는 차치하고, 도시와 주거지 안에서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왜 남의 놀이터에 놀러 갔을까. 새 아파트의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최신식 장난감과도 같았을 터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구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는 좋은 놀이터는 왜 없는 걸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길거리 놀이터. [사진 carve]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길거리 놀이터. [사진 carve]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에 7만7557개의 놀이터가 있다. 이 중 52%가 사유지인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학교·유치원·어린이집에 있는 놀이터가 29%, 공공이 직접 관리하는 도시공원 놀이터는 14%밖에 안 된다. 아파트가 많은 동네일수록 놀이터가 많다. 서울에서 놀이터가 많은 구를 살펴보니 노원구(723개)·강남구(660개)·송파구(653개) 순이다. 꼴찌는 중구·종로구(155개)다. 민간의 아파트 재개발·재건축에만 중점을 둔 주거환경 개선사업의 결과다. 반세기 동안 아파트 단지 안과 밖의 차이는 너무 심하게 벌어졌다. 단지 밖에는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공공 놀이터가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위험한 도시 구조도 문제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일찌감치 배제됐다. 결국 길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을 좁은 놀이터로 몰아낸 것은 어른들이다. 고도성장기를 지나고 나니 해외 여러 도시에서 반성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디서나 놀 수 있는 도시를 다시 만들자는 것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시는 2007년 ‘아동 친화적인 로테르담을 위한 빌딩 블록’이라는 도시계획을 발표했다. 15만㎡ 규모의 블록을 지정하고 그 바깥은 시속 50㎞로 차량 속도를 제한하고, 블록 안에는 다양한 크기의 놀이터를 만들었다. 심지어 보행로 한쪽에 3~5m 폭의 작은 놀이 공간도 만들었다. 길 자체가 놀이터가 된 셈이다. 놀이터 전문가인 김연금 조경가(조경작업소 울 소장)는 “그야말로 도시가 아이들에게 ‘너희의 도시다’ ‘너희가 놀아도 되는 도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놀이터 도둑은 누구일까.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빼앗은 어른, 아파트 단지 밖의 노후한 주거환경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 모두 반성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