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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탓 대출금리 역전…은행보다 2금융이 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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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의 대출 규제로 시장이 갈수록 왜곡되고 있다.

저신용자보다 고신용자의 신용대출 금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1금융권과 2금융권의 금리 역전 현상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맞추기 위해 은행이 대출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정부의 대출 규제가 결과적으로 은행 배만 불린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당초 규제의 의도와 달리 급히 돈이 필요한 서민의 부담은 커지고 은행의 이익은 갈수록 불어나는 ‘규제의 역설’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새마을금고 서울 교남동 지점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평균 연 3.39%, 남대문·충무로 지점은 연 3.2%다. 서울시내에 위치한 단위 농협의 주담대 금리는 2.71~4% 수준이다. 반면에 11일 기준 국민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3.45~4.65%다. 5년간 금리가 고정되는 혼합형 주담대는 연 3.96~5.16%로 연 5% 선을 넘었다. 변동형 금리 기준 신한(3.49~4.54%), 하나(3.54~4.84%), 우리(3.52~3.82%)도 사정은 비슷하다.

1, 2금융권의 신용대출 금리 역전 현상은 주담대보다 앞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상호금융권 평균 가계 신용대출 금리는 은행(연 4.15%)보다 0.31%포인트 낮은 연 3.84%다. 상호금융권 신용대출 금리는 2월 말 연 3.57%로 은행 금리(연 3.61%)를 처음 추월한 후 매달 격차를 벌리고 있다.

중·저신용자가 주로 찾는 2금융권은 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은행이 가계대출을 줄이겠다며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마진 폭(가산금리)을 올리면서 은행 고객이 새마을금고 고객보다 비싼 이자를 내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대출 고객이 은행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우대금리 혜택을 줄인 것도 금리 역전 현상의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2금융권이 가계대출을 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상호금융 중에서도 가계대출 급증으로 주택 관련 여신을 중단했던 농협·수협과 달리 신협·새마을금고는 대출 여력이 있다. 신협의 1~10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8400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4% 증가해 목표치(1조4350억원)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새마을금고도 지난 1~10월 가계대출이 1조9700억원 늘어 지난해보다 2~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용점수 높다고 대출 막은 곳도 … 시장 원리 무너진 금융권

정부가 가계대출을 전방위로 옥죄면서 실수요자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서울시내 한 새마을금고에 부착된 대출 안내문. [연합뉴스]

정부가 가계대출을 전방위로 옥죄면서 실수요자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서울시내 한 새마을금고에 부착된 대출 안내문. [연합뉴스]

시중은행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6%)를 거의 채우거나 이미 넘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몰려드는 대출 수요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며 문턱을 높일 필요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 상호금융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상호금융권에 가계대출보다 정책자금 대출과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에 주력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에 시중은행만큼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다”며 “하지만 상호금융도 은행과 똑같이 주 단위로 대출 동향을 당국에 보고하고 있기 때문에 1금융권 고객이 밀려든다고 해도 무작정 대출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은행에 근접한 상호금융 주택담보대출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은행에 근접한 상호금융 주택담보대출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당국발 대출 왜곡 현상이 벌어지는 건 1, 2금융권만이 아니다. 고신용자와 저신용자의 금리 역전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고신용자가 저신용자보다 더 비싼 값(금리)을 내고 돈을 빌리게 된 것이다. 열심히 신용점수를 관리한 이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케이뱅크는 11일 신용점수 820점 이하(KCB 기준) 중·저신용자의 신용대출 금리를 1.5~2.3%포인트가량 내리기로 했다. 반면에 신용점수가 820점이 넘는 고신용자에겐 신용대출 금리를 오히려 올렸다.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금리의 하단은 연 2.99%에서 연 3.38%로 0.39%포인트 인상했다. 케이뱅크는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마이너스 통장 개설도 중단한 상태다.

은행보다 낮아진 상호금융 신용대출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은행보다 낮아진 상호금융 신용대출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케이뱅크 측은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 규제를 맞추는 동시에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8일부터 신용점수가 높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반면에 신용점수가 820점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첫 달 이자를 은행이 대신 내주는 조건으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이 중·저신용자 대출금리를 낮추는 건 금융당국에 제출한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서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금융당국에 각각 21.5%, 20.8%의 중·저신용 대출 목표치를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케이뱅크가 올해 2분기 말 기준 15.5%, 카카오뱅크는 3분기 말 기준 13.4%다.

해당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신사업 진출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린다는 취지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가 난 건 맞지만, 고신용자의 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시장의 논리가 왜곡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가계 빚 급증세를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전방위적인 대출 총량 규제로 인한 왜곡 현상은 예대마진 확대로도 나타난다. 총량 관리를 위해 시중은행이 대출 가수요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대출 여력이 있는 다른 은행 등으로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 대출금리를 올리고 대출 한도를 줄이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며 은행의 배만 불리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중·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확대 계획

중·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확대 계획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혼합형(고정) 금리는 연 3.76~5.21%로 1년 전(연 2.74~4.23%)보다 최대 2.47%포인트 올랐다. 반면에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연 1.1∼1.55%)는 1년 전보다 최대 0.85%포인트 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가계대출 금리-순수 저축성예금)는 지난 9월 말 기준 2.02%포인트로 지난해 말 1.89%포인트보다 0.13%포인트 벌어졌다. 지난 8월에는 2.1%포인트로 2010년 10월(2.22%포인트)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중은행이 올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규제발 금리 상승에 금융소비자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진행되는 은행의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은행이 ‘대출의 희소성’을 무기로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높이면서 서민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은 대출 시장의 왜곡 원인으로 금융당국의 무리한 총량 관리를 꼽는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모든 경제 분야에서 총량 관리를 하게 되면 가격지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가계부채 문제를 금융의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로 풀고,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관치 금융으로 풀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총량 관리의 부작용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10월 26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 대책을 통해 내년도 가계대출 증가율을 4~5%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21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 목표치가 최근 실제 증가율에 비해 크게 낮고, 총량 규제 시행을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지 않아 일부 수요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유동성 위험에 직면한 가계가 고금리 대출이나 제2금융권 대출 또는 사금융으로 전환함에 따라 오히려 금융 건전성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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