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용점수 높을수록 금리 더 비싸다…정부 대출 규제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의 대출 규제에 대출 시장 왜곡이 심해지고 있다. 저신용자보다 고신용자의 신용대출 금리가 높아지고, 1금융권과 2금융권의 금리 역전 현상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대출 총량 규제를 맞추기 위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정부의 대출 규제가 결과적으로 은행 배만 불린다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케이뱅크는 11일 신용점수 820점 이하(KCB 기준) 중·저신용자들의 신용 대출 금리를 1.5%포인트~2.3%포인트가량 내리기로 했다. 반면 신용점수가 820점이 넘는 고신용자는 신용대출 금리를 오히려 올렸다.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금리의 하단은 연 2.99%에서 연 3.38%로 0.39%포인트 인상했다.

케이뱅크는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마이너스 통장 개설도 중단한 상태다. 케이뱅크 측은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 규제를 맞추는 동시에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8일부터 신용점수가 높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반면 신용점수가 820점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첫 달 이자를 은행이 대신 내주는 조건으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확대계획.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확대계획.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이 중·저신용자 대출 금리를 낮추는 건 금융당국에 제출한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서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금융당국에 각각 21.5%, 20.8%의 중·저신용 대출 목표치를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케이뱅크가 올해 2분기 말 기준 15.5%, 카카오뱅크는 3분기 말 기준 13.4%이다.

해당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신사업 진출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린다는 취지로 (인터넷전문은행)인가가 난 건 맞지만, 고신용자의 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시장의 논리가 왜곡된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규제 발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의 대출금리 역전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은행권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연 4.15%였다. 반면 제2금융권인 상호금융권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3.84%로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쌌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시중은행(연 3.01%)이 아직 상호금융(연 3.05%)보다 낮지만, 조만간 뒤집힐 수 있다. 은행과 상호금융의 주담대 금리 차는 지난 7월 0.17%포인트에서 8월 0.1%포인트, 9월 0.04%포인트로 매달 간격을 좁히고 있다.

대출금리는 치솟는데 예금금리는 제자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출금리는 치솟는데 예금금리는 제자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금융당국의 총량규제로 각 은행이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등 대출금리를 올리며 은행의 예대마진도 커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혼합형(고정) 금리는 연 3.76~5.21%로 1년 전(연 2.74~4.23%)보다 최대 2.47%포인트 올랐다. 반면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연 1.1∼1.55%)는 1년 전보다 최대 0.85%포인트 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가계대출 금리-순수저축성예금)는 지난 9월 말 기준 2.02%포인트로 지난해 말 1.89%포인트보다 0.13%포인트 벌어졌다. 지난 8월에는 2.1%포인트로 2010년 10월(2.22%포인트)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금융권은 대출 시장의 왜곡 원인으로 금융당국의 무리한 총량 관리를 꼽는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모든 경제 분야에서 총량 관리를 하게 되면 가격지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가계부채 문제를 금융의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로 풀고,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관치 금융으로 풀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총량 관리의 부작용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10월 26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 대책을 통해 내년도 가계대출 증가율을 4~5%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21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 목표치가 최근 실제 증가율에 비해 크게 낮고, 총량 규제 시행을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지 않아 일부 수요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유동성 위험에 직면한 가계가 고금리 대출이나 제2금융권 대출 또는 사금융으로 전환함에 따라 오히려 금융건전성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