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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제 경제의 복수?…美 CPI 31년 최고, 커지는 인플레 압력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상점에서 어린이가 핼러윈 소품을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상점에서 어린이가 핼러윈 소품을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공급망 대란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 충격이 심상치 않다. 미국 소비자물가가 6% 이상 오르며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혼란은 일시적“이라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예측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1980년대의 초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 노동부는 10일(현지시간)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6.2% 올랐다고 발표했다. 1990년 11월(6.3%) 이후 30여 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자 6개월 연속 5% 이상 상승률을 기록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이 내놓은 시장 예상치(5.9%)보다도 높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인플레 압력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 노동부는 “물가가 여러 부문에 걸쳐 올랐다”고 밝혔다. 에너지 가격이 30%로 치솟았고, 상반기 물가 급등을 이끌었던 중고차 및 트럭 가격 상승률은 26.4%나 됐다. 육류·생선·계란(11.9%), 신차(9.8%) 등도 폭등했다.

식품과 에너지 등을 뺀 근원 CPI도 4.6%로 1991년 8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공급 병목 현상으로 인해 가격이 오르는 품목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CNBC에 "인플레이션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Fed의 평가를 무색게 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Fed는 지난 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인플레이션이 곧 끝날 것이라는 입장을 거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인 공급망 대란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며 가격 상승세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라 하우스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는 “공급 병목이 이어지면서 기업이 재고를 보충하는 동안 소비재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8월 미국 노스다코타주 왓포드시티의 원유 시추 시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월 미국 노스다코타주 왓포드시티의 원유 시추 시설.[로이터=연합뉴스]

커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낡은 사회기반시설에 탄소배출 산업 등을 바탕으로 성장한 ‘올드 이코노미(old economy·구체제 경제)의 복수’라는 진단도 나온다. 제프리 커리 골드만삭스 원자재 수석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구체제 경제의 생산력이 감소해 공급망 대란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이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이는 오히려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 결과 저소득층의 수요 감소로 구체제 경제의 수익은 줄었다. 선진국 중심의 '뉴 이코노미'로 탄소 중립 등 친환경 정책 강화로 지난 10년간 구체제 경제의 생산력은 약화했다. 이런 취약한 상황이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망 대란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Fed의 늑장 대처로 1970~80년대의 초인플레이션을 재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노동력 부족과 기록적인 집값 및 국제유가, 정부와 중앙은행의 부양책 등이 인플레이션의 징후를 보여준다”며 “Fed의 대처가 늦으면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60년대 2% 안팎이던 물가상승률은 70년대 후반 6%대, 82년 초 7.6%까지 올랐다.

실제로 11월 CPI가 7%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간체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및 주택가격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어 11월 CPI는 전년 대비 6.8%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도 “내년에도 인플레이션이 3%에 육박하면 Fed는 심각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며 “기준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플레이션은 이제 정치권의 관심 사안이 됐다. 3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물가상승률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도 충격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물가상승 추세를 뒤집는 것이 최우선 사안”이라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와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에 관련 대책과 조치를 주문했다.

물가 상승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Fed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당길 것이란 전망도 이어진다. 브라운 어드바이저리의 톰 그라프 채권 부문 대표는 “Fed가 테이퍼링을 이번 겨울에 끝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선 인플레이션이 이미 지난 10월 정점을 찍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 물류 운임의 척도인 발틱운임지수(BDI)가 10월 말부터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다. 거스 포셔 PNC파이낸셜서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CNBC에 “BDI의 하락은 공급 대란이 최악을 벗어났다는 신호”라며 “물가 상승세는 끝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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