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나이들면 단풍을 놓치고 싶지 않은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1.11.11 15:00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75) 

단풍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 해 더 해진다. 눈이 시릴 정도로 가득 단풍을 담아왔다. [사진 김현주]

단풍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 해 더 해진다. 눈이 시릴 정도로 가득 단풍을 담아왔다. [사진 김현주]

“와~ 저 앞의 산 좀 봐. 색이 너무 예쁘다.” 운전을 하고 가는 내내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남편과 딸 아이는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가끔 고개만 끄떡일 뿐이었지만, 난 차가 움직일 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된 첫 주 주말, 가평으로 가족 여행을 나섰다. 시어머니의 팔순 생신을 앞두고 2년 만에 온 가족이 제대로 모여보는 것이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어찌나 기대되던지, 함께 모여 밥 먹고 좋은 곳 가서 구경하고 사진도 남기는 일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게다가 단풍이 만개한 때 아닌가. 남편과 나는 일 때문에, 아이는 학원 스케줄로 평일과 주말을 각자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이 좋은 시기를 그냥 보내는 건 아닌지 아쉬웠는데 잘 됐다 싶었다.

북한강을 지나 청평호 호수 근처 펜션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도로 양옆으로 뻗은 크고 작은 산에는 노랗게 빨갛게 물든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가득했고, 햇빛을 받은 수면은 눈이 부시게 빛이 났다. 찬 기운이 도는 바람마저 어찌나 상쾌한지 오랜만에 나선 여행이라 그런지 모든 게 설렜다.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호수와 산자락. 편도 18분의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놀라운 풍경이었다. [사진 김현주]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호수와 산자락. 편도 18분의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놀라운 풍경이었다. [사진 김현주]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짠 듯, 2박 3일의 여행 일정 역시 완벽했다. 첫날은 청평호 주변을 돌았고, 둘째 날은 지난달 개장한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를 타러 갔으며, 마지막 날은 축령산 자락에 개장한 잣향기푸른숲이라는 고즈넉한 숲을 방문했다.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까지 이동하는 3.6km의 국내 케이블카는 역시 소문대로였다. 케이블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너른 호수와 산자락의 조화란! 단풍철을 맞아 붉은색을 띈 나뭇잎이 호수의 잔잔한 물결과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가까운 풍광부터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령 80년 이상의 잣나무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잣향기푸른숲도 치유의 숲이라는 설명처럼 큰 나무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가는 곳마다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내 모습을 보며 딸 아이는 “그렇게 좋아? 엄마도 이제 프사가 다 꽃, 나무로 바뀌겠네. 할머니처럼, 하하.”

그러고 보니 한 해 한 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더 감탄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면 계절이 가고 오는 걸 느끼지 못하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자연은 변함없이 시간의 움직임을 시연한다. 봄에는 푸른 잎이 돋고, 여름에는 그 잎이 울창하게 뻗으며, 가을에는 고운 색을 띄우다가, 겨울이 오면 땅으로 떨어진다. 잠깐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보면 그 반복의 과정 중 어느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데, 그럴 때 느끼는 감흥이 나이가 들수록 더해진다. 그렇게 한결같기가 어디 쉬운가.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은 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움직이는 자연의 섭리에 더 깊게 감탄하기 때문이리라.

높은 나무에 둘러싸인 축령산 자락을 조용히 걷는 일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그야말로 숲치유다. [사진 김현주]

높은 나무에 둘러싸인 축령산 자락을 조용히 걷는 일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그야말로 숲치유다. [사진 김현주]

아이에게 읽어 준 기억이 있는 동화책 한 권이 떠올랐다.『잎에는 왜 단풍이 들까요?』(다섯수레)란 책이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무는 8월부터 겨울 준비를 시작해요. 여름이 지나면서 뜨거운 햇볕의 양이 줄면 나뭇잎에도 변화가 생겨요. 이런 변화가 아름다운 가을 색을 만들어 내게 되지요. 단풍이 드는 잎은 노랑, 주홍 말고도 빨간색, 갈색, 자주색으로 물들어요. 가을에는 햇빛이 점점 약해지고 하루 동안 햇빛을 받는 시간도 줄어들어요. 햇빛 없이는 나뭇잎은 엽록소도 만들지 못해 나뭇잎의 엽록소가 차츰 없어져요. 엽록소를 더 이상 만들어 내지 못하는 잎에서는 엽록소의 짙은 초록색에 덮여 있던 노랑, 주홍 색소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햇빛이 나뭇잎에 남아있던 당분을 빨강이나 갈색, 자주색 같은 색소로 바꾸면서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어요. 맑은 날과 서늘한 밤이 계속되면 더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어내요.”

이렇게 이해했던 단풍이 지금은 피어나고 뻗어나고 바래고 떨어지는 소중한 과정의 하나로 다가온다. 초록은 유지할 수 없지만, 그 안에 꼭꼭 담아 두었던 또 다른 색을 펼치며 마지막 아름다움을 기어코 선보이는 잎사귀의 미소 같은. 나이가 들면 단풍이 좋아지는 말은 그래서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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