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민 밀어내기’ 싸움이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의 안보 갈등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는 이날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폭격기(Tu-22M3) 2대를 벨라루스의 영공에 띄웠다. 러시아 국방부는 명목상 “벨라루스의 합동 영공 방어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며칠 전부터 수천 명의 난민 사태로 갈등이 빚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동부 전선에 긴장감이 한층 고조됐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화상회의에서 양국 간 관계를 “형제적 관계”라고 표현했다.
러시아의 이 같은 도발에 폴란드는 비공개로 나토 동맹국들과의 회의를 소집했고, 나토 회원국들은 “폴란드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폴란드의 동부 쿠즈니카의 국경에는 주 초반부터 수천 명의 이라크·시리아·아프간 난민들이 몰려 들어 진을 치고 있다. 벨라루스의 독재자 루카셴코 정권이 EU 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난민들을 일부러 이동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아프간인은 실제 로이터통신에 “매일 밤 벨라루스 군인들이 이주민 수용소로 와서 30~4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국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털어놨다.
EU는 ‘난민 인해전술’을 쓰는 벨라루스의 행동을 “적대 활동” “인신매매”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샤를 미첼 EU이사회 의장은 “우리는 EU 국경에 대한 잔혹한 신종(hybrid) 공격을 맞닥뜨렸다”며 “벨라루스는 이민자들의 고통을 냉소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무기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벨라루스에 대한 EU의 추가 제재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난 뒤 “다음주 초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가 매우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며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와 EUㆍ벨라루스 국경으로 이어지는 인신매매를 조장하는 항공사들을 제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벨라루스의 외교부 장관과 국영 항공사 등 30곳에 이르는 개인ㆍ단체에 대한 제재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쪽 국경 지대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는 난민들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난민들이 식량과 물 부족,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며 “참을 수 없는 위기”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 크렘린궁은 “유럽이 인도주의 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며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부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우크라이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들며 유럽 대륙에서 연일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벨라루스의 독재 정권을 안보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는 천연가스관 문제로 압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에서 서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송유관이 있다.
미 백악관은 10일 바이든 대통령이 “EU와 벨라루스 국경의 인도적 상황과 예측불가한 이주민의 흐름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역시 “미국은 러시아의 심상찮은(unusal)군사 활동에 대한 보고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2014년 국경을 따라 도발했던 심각한 실수를 되풀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4년 러시아가 기습적으로 합병한 크림 공화국 사태를 상키시킨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