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변호사의 배신…되레 고소당한 의뢰인 '만장일치 무죄'[法ON]

중앙일보

입력 2021.1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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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동안 함께 위기를 헤쳐나간 변호사가 나를 범죄자 취급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형사27부(부장 김선일) 심리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 A씨(34)측 변호인이 한 말이다. 대학원 지도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한 A씨. 그런데 A씨는 자신이 선임했던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피고인석에 섰다. 이날 15시간가량 진행된 재판을 지켜본 배심원들은 A씨에 대해‘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도 이에 따라 A씨에 대해 무죄 결론을 내렸다. A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수임료 반환 갈등으로 ‘사무실 소동’

사건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대학원 지도교수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어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해당 교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A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사건을 맡아줄 변호인을 찾던 중 변호사 B씨를 선임하고 민ㆍ형사사건 위임계약을 맺었다. B씨는 성범죄 피해 전문으로 이름을 알린 변호사였다.

성범죄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중앙포토]

성범죄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중앙포토]

하지만 성범죄 전문 변호사라는 믿음도 잠시, A씨는 B변호사의 재판 준비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B변호사의 인턴이 자신의 의견서를 대신 작성하면서 서면에 잘못된 사건번호를 기재하거나 ‘교육부’를 ‘교육청’으로 적는 등 오·탈자를 발견했다. A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B변호사는 A씨의 민사재판을 앞두고 중도 사임했다.

A씨는 2017년 4월 2일 오전 10시 30분께 자신의 어머니와 외삼촌, 지인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B변호사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신용대출을 받아 낸 수임료 1300만원을 B변호사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B변호사가 만남을 거부했다. 그러자 A씨는 일행과 함께 이 사무실에서 15분여간 머물며 “못하겠으면 돈을 달라”고 외치는 등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A씨 일행은 사무실 출입을 제지하던 사무장을 밀치기도 했다. 결국 B변호사는 A씨 일행을 공동폭행ㆍ공동주거침입ㆍ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2019년 11월 재판에 넘겨진 A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판단은 배심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피고인석에 앉은 A씨는 재판 내내 맞은편에 위치한 배심원석을 바라보며 두손을 꽉 잡은 채 긴장한 모습이었다.

B변호사 증언 뒤집은 PD 진술

이날 오후 4시께 법정에 나온 B변호사는 “저는 수임료 절반을 돌려준다고 했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건가 생각했다”고 했다. 또 앞서 법원이 이와 별개로 진행된 변호사비용 반환청구 민사소송에서 B변호사가 받은 민사사건 착수금 중 일부를 A씨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는데, 법원이 제시한 액수가 자신이 돌려주겠다고 말한 40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B변호사는 “소란 부리고 반말하고 직원을 떠미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정당한 게 무엇일지 모르겠다”며 “이 사건 이후로 직원 뽑을 때 체격을 보고 폐쇄회로TV(CCTV)도 제 방에 설치해뒀다. 저는 단언컨대 피해자가 맞다”고 밝혔다.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그런데 뒤이어 나온 C씨의 증언은 이와 달랐다. C씨는 이 사건 취재를 맡았던 방송사 PD였다. C씨는 “(사건 당일 B변호사 요청으로) 난장판일 줄 알고 사무실에 왔는데 B변호사가 친구 두 명과 피자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며 (이후 사무실에서 나와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은 A씨를 만났는데) 얼굴이 유리창처럼 하얗게 질려 있고 축 처져서 울고 있어 안쓰러웠다”고 증언했다.

또 B변호사는 C씨에게 ‘성추행 가해자 측 변호사를 만나 말해줄까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C씨는 “자기가 변호한 피해자 얘기를 가해자에게 말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서 B변호사가 정말 화가 많이 났다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C씨가 사무실을 찾을 당시 B변호사가 “A씨가 난리 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는데 사무실 빌딩 변호사들에게 보여주면 성추행 가해자 쪽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취지로 얘기했다고도 말했다.

‘사무실 항의’ 폭행죄 성립 가능?

이날 재판의 쟁점은 A씨 일행의 행위를 ‘폭행’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검찰 측은 A씨가 “출입을 제지한 사무장을 강제로 밀쳐 변호사 방에 침입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B변호사의 인턴이 촬영한 영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A씨측 변호인은 “폭행죄는 신체에 닿았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향하여’ 행해져야 한다”며 “A씨는 문 빈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지 사무장을 밀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또 양측이 상해를 다소 입었어도 정당행위(형법 제20조)로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A씨 변호인은 “검사 관점에서 보면 물리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고 볼 수 있겠지만, 달의 뒷면을 보려면 우주에 가야 하는 것처럼 B변호사가 고소한 경위를 보면 사건도 달리 보인다”며 “B변호사 대화 자료에선 A씨가 사무실에 오면 신고하겠다고 얘기하는데 피고인들은 소송비용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애초 고소당할 위기에 처해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심원 판단은 ‘전원 무죄’  

법봉 이미지그래픽. [중앙포토]

법봉 이미지그래픽. [중앙포토]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7명의 배심원은 만장일치 의견으로 A씨측 일행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오전 11시 19분에 시작한 공판은 자정을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12시간이 넘도록 공판이 이어지자 배심원 중 일부는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이후 약 2시간 30분 가량 유ㆍ무죄와 양형에 관한 배심원단의 토론이 이어지며 선고는 10일 오전 2시 30분께 이뤄졌다. 재판부는 “피고인들 전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선고가 끝나자 A씨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A씨 어머니는 최후진술에서 “1300만원이 어느 누군가에겐 쉬운 돈이겠지만 저희 같은 서민에겐 2~3년 모아도 어려운 돈이다. 망망대해에서 구명보트까지 뺏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1급 시청각장애와 투석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재판을 받던 공동피고인이자 A씨의 교회 지인인 선교사도 결과가 나오자 끝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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