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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김현기의 직격인터뷰

"차기 정부, WTO제소 철회하면 일본 바로 수출규제 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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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5일 도쿄 나가타초의 의원회관에서 만난 사토 마사히사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은 10년 전 한국에서 입국금지 당한 것과 관련, ″울릉도에서의 토론행사에 가려 했던 것일 뿐인데 한국이 문제를 키웠다″고 말했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지난 5일 도쿄 나가타초의 의원회관에서 만난 사토 마사히사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은 10년 전 한국에서 입국금지 당한 것과 관련, ″울릉도에서의 토론행사에 가려 했던 것일 뿐인데 한국이 문제를 키웠다″고 말했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김현기의 직격인터뷰]
일본 외교의 핵심기지 자민당 외교부회 사토 회장
문재인 정부에선 현상유지, 관계 개선은 힘들다
징용자 문제 한국이 완결해야, 대위변제는 안 돼
"일본이 분단 됐어야" 이재명 후보 발언에 깜짝놀라
대만해협 안정이 생명선인데 한국,왜 목소리 안내나

'당고정저(党高政低)'. 정부보다 집권여당의 영향력이 훨씬 강하다는 뜻이다. 일본 정치가 지금 그렇다. 기시다 정권 출범 후 내각에는 '초보 각료'들이 대거 진출했고, 힘쓰는 중진들은 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교도 마찬가지. 언제부터인가 자민당 외교부회가 외무성 버금가는 일본 외교의 핵심 기지처럼 돼 있다. 이곳의 회장은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61). 자위대 출신 3선 참의원. 콧수염 때문에 '히게(수염) 의 사토'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우리에겐 2011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울릉도 입국을 시도하려다 김포공항에서 '입국 금지'당한 의원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런 '악연' 때문일까. 일 외무성 관료에게 "왜 이리 한국에 강경하냐"고 질문을 던지면 "자민당 외교부회가 워낙…"라고 말을 흐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그에게 한국에 대한 생각, 가슴에 쌓인 게 뭔지 듣고 싶었다. 좋든 싫든 24년간의 자위대원, 방위성 정무관, 외무성 부대신 경력을 바탕으로 일본 외교·안보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도쿄 나가타초 의원회관 705호실에서 70분간 진행했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전화 회담에서 한국을 8번째, 제2그룹으로 분류했다. 외교 우선순위에서 뒤로 놓겠다는 건가.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양국 간 정치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본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한·일관계 개선이 힘들다고 보는 건가.
"힘들다. 이재명 씨가 여당의 대선 후보로 정해진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과감하게 나서긴 어렵다고 본다. 임기가 끝나는 내년 5월까지는 현상 유지로 가지 않겠느냐."  
징용자 문제에 대해 일본은 '볼은 한국 측에 있다'고 한다. 그럼 일본은 어떤 공이 돌아오면 전향적으로 움직일 건가.
"한국 정부가, 한국 내에서 문제를 완결하는 것이다.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 때도 한국 정부가 개인 배상을 했다. 한국에선 잘 거론하지 않지만 1965년 청구권 협상 당시 일 정부가 직접 개인 배상을 하겠다고 하자 한국 측이 '개인에 대해선 한국 국내에서 조치하겠다'고 한 부분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 그에 입각하면 된다. 요즘 대위변제안(한국 정부가 먼저 돈을 내 개인에게 배상하고 추후에 일본에 청구하는 방식)이 (한국에서) 거론된다고 하는 데 그건 수용할 수 없다. 나중이라도 일본에 청구할 가능성을 남겨둬선 안 된다."
일본은 징용자,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늘 '국제법 위반'을 언급한다. 하지만 국제법과 국내법이 상충하는 케이스가 다른 국가들에도 있는데.
"국제법이 국내법에 우선한다는 게 상식적 감각이다."  
법률만 갖고 하려면 양국 모두 변호사만 있으면 된다. 그걸 푸는 게 정치의 영역 아닐까.  
"무라야마 총리 당시 아시아여성기금도 그랬고, 아베 총리 때의 위안부 합의도 그랬고 모두 '이걸로 끝내자'라고 하는 마음으로 사죄했고 합의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끝나긴 했지만, 인도적 관점에서 그렇게 쭉 해 왔다. 그래서 일본으로선 이제 '양보를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피해자분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좀 다른 차원의 이야기 아니냐."
과거사는 그렇다 치고 일본의 수출규제가 2년 4개월이나 지났다. 이건 이제 풀어도 되는 것 아닌가.
"그건 문재인 정부의 실수였다. 실제 양국 실무자 간 협의를 거쳐 법 정비도 됐고, 감시 인원도 늘었고 '곧 해제할 수 있겠다' 하는 단계에서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버렸다. 차원이 다른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와 연계시켜 제소를 안 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해결됐을 문제다. 한·일 간에 위안부·징용자·수출규제라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면, 수출규제가 가장 해결이 쉬운 문제다. 다음 정부에서 한국이 WTO 제소를 철회만 하면 수출규제는 바로 풀린다."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일본 입장은.
"관건은 미국이다. 아무리 정치적 선언이라고 해도 그 연장선에는 평화협정이 있는 것 아니냐. 주한미군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한도 종전선언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유엔의 제재 해제, 한미합동훈련 영구적 중단 같은 걸 얻어내지 않으면 응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한·일 간에 방위 분야 협력은 문제가 없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정보 교류는 괜찮다. 문제는 전력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은 일체다. 육군 전투부대는 한국에 있지만, 해군과 해병대 대부분은 일본에 있다. 또 공군의 3분의 2가 일본에 있다. 한국에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한미군사훈련이 제대로 안 이뤄지면 주일미군의 전력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북한이 좋아할 일이다. 한미동맹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게 걱정이 된다."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협의체)에 한국이 가세하길 기대하나.
"그렇다.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자유주의 진영에 들어온다고 하면 일본으로선 웰컴(환영)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대만 본토와 섬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본토에 앞서 둥사(東沙) 군도와 난사(南沙)군도 같은 섬들에서 2027년까지 중국과 대만 간 군사충돌이 발생할 공산이 있다고 본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나라를 만들고, 덩샤오핑은 나라를 풍요롭게 했지만, 시진핑 본인은 나라를 강하게 한 지도자로  동렬에 서려 한다. 내년 가을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이 3기 집권에 들어가면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대만통일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기시다 총리가 이달 중 방미 예정인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이 문제를 논의할까.
"물론이다. 그런데 사실 대만해협 유사시 가장 곤란한 건 한국이다. 여길 보라. (지도의 남중국해 부분을 가리키며) 한국으로 향하는 중동발 원유는 100% 대만해협을 지나간다. 일본은 대체 운송 루트가 있다. 한국은 없다. 대만해협이 불안정해지면 한국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다. 원유비축량이 6개월 있다고 하지만, 비축유를 일부 내놓는 것만으로도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대만해협 안정은 한국의 생명선이다. 그리고 쿼드의 핵심가치다. 프랑스·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들까지 항모와 호위함을 남중국해에 보내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대만해협 안정에 관여하지 않고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 눈치를 보고 있는 건데, 그래도 외교적 발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10년 전 한국에서 입국 금지를 당한 이후 '반한 인사'란 이미지가 강한데. 왜 그랬나.
"그때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표현) 관련 전시물을 놓고 울릉도의 박물관에서 한국의 한 국회의원과 토론을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상관없는 국회의원 한 명이 '그들은 극우 의원'이라며 입국 금지 운동을 시작했다. 약속된 토론행사에 가려 했을 뿐인데, 한국에서 문제를 키워 버렸다. 그리고 테러리스트 취급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주장이나 영토문제는 평행선일 수밖에 없을지언정 적대시하는 사이어선 안 된다. 난 연평해전 후 연평도를 방문까지 했던 사람이다."  
이재명, 윤석열 두 대선후보에 대한 자민당의 기대는.
"이재명 후보는 얼마 전(지난 7월) '침략 국가인 일본이 분단됐어야 하는데 일본에 침략당한 피해국인 우리가 왜 분단을 당하느냐'고 했다. 그런 생각이 근저에 있는 한 '친일세력 배제'라는 적폐청산에 나설 것이고, 양국 관계 개선에 큰 장애가 될 것 같다. 그가 그런 공언을 하는 걸 보고 자민당 외교부회 국회의원 모두 깜짝 놀랐다. 윤 후보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박근혜·이명박 두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 보수세력의 후보가 됐다는 것 자체가 우리 상식으론 상상하기 힘들다. 여야 어느 쪽이 승리하건 새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를 손보려 하지 않겠는가. 역사문제는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해결이 힘들 것이다. 다만 안보 문제는 보수 정권과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  
새 외상에 한국과 중국에 우호적이라 평가받는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60)가 내정됐다(이후 10일 정식 임명됨). 현 노선의 변화 가능성은.  
"(한국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기시다 정부는 향후 1년 정도는 신중하게 '안전운전'할 것이다. 기시다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집권 여당과 상의하고, 협의하면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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