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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부친이 남긴 맷돌·북·태평소…삼형제는 어떻게 부자됐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2)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서 벌써부터 후보별 대선공약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아무래도 부동산 정책일 텐데, 투기 규제를 위한 정책이 제안되기도 하고 오히려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 나오기도 한다. 어쨌거나 거의 ‘미쳤다’는 표현이 나오는 부동산 시장 쪽을 들여다보니, 아파트 가격이 하룻밤 새 몇억씩 오르는 일이 예사고, 열네 살 중학생이 월 1600만 원의 임대소득을 올리고 있다고도 한다.

부모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자녀를 부동산 임대사업자 공동대표로 등록해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중 최연소 소득자는 나이가 만2세라고도 한다. 다들 정말 머리도 좋고 참 부지런들 하시다. 능력 있는 부모가 합법적으로 재산 증식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와중에 자녀에게도 자연스럽게 부를 물려줄 수 있다면 그것 가지고 뭐라 할 일도 아니라 할 수 있겠다.

‘불공정한 부의 대물림’이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기준으로 둘 수 있을까. 아니,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 정말 아파트뿐일까. 아파트니 자동차니 부모에게서 그냥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할까. 부모 돌아가실 때쯤 되면 그 재산을 형제들이 나눠 받는 문제로 수많은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요새 어떤 보험은 그런 사례를 제시하면서 광고도 한다.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라는 광고문구를 보면서, 부모 자녀 간에 정말 주고받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로서 자녀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은 욕심을 갖는다. 하지만 정말 물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사진 pxhere]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로서 자녀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은 욕심을 갖는다. 하지만 정말 물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사진 pxhere]

옛날에 한 홀아비가 아들 셋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들이 밥을 빌어와서 먹고살았는데, 하루는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하며 형제가 앞으로 먹고살 수 있게 직업을 하나 일러 달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알려주긴 하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하였다. 큰아들이 그러면 언제 알려주겠느냐고 하니 아버지는 “응, 내가 죽을 때 일러 주마” 하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홀아비는 삼형제와 함께 비루한 생활을 계속하다 이제 때가 되었다 싶었을 때 삼형제를 불렀다. 그리고 첫째에겐 맷돌을, 둘째에겐 북을, 셋째에겐 태평소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삼형제는 물려받은 것을 짊어지고 각자 길을 떠났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먼저 첫째의 여정부터 따라가 본다.

첫째가 맷돌을 지고 길을 가다 큰 갈대밭을 만났는데 날은 이미 깜빡 저물었고 근처에 인가도 없고 하여 갈대밭 가운데 있는 둥구나무 아래에서 쉬어가기로 하였다. 맷돌을 나무에 걸어두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번쩍번쩍 일어나더니 도깨비떼가 몰려들었다. 첫째는 너무 무서워서 나무 위에 올라가서는 숨도 크게 못 쉬고 가만있었는데, 도깨비들은 잔디밭에 죽 둘러앉아서는 방망이를 신나게 두드리며 놀기 시작하였다. 도깨비 방망이는 두드리면서 원하는 것을 말만 하면 전부 뚝딱뚝딱 나왔다.

"돗자리 나와라, 뚝딱" "밥 나와라, 뚝딱". "대추 나와라, 뚝딱."

도깨비들이 그렇게 잔칫상을 상다리 부러지게 벌여 놓고 먹는 것을 보니 첫째도 너무나 배가 고팠지만 가진 것도 없고, 할 수 없이 담배나 피워야겠다고 부싯돌을 탁탁 두드렸다. 도깨비들은 마른 하늘에 번개가 친다면서 놀라 냅다 도망가 버렸다. 첫째는 나무에서 내려와서 도깨비 방망이부터 잘 챙겨두고 도깨비들이 남긴 음식을 배 터지게 잘 먹었다. 첫째는 날이 샌 뒤 주막에 가서 방을 하나 얻어서는 하루 종일 “돈 나와라, 뚝딱” 하며 방망이를 두드려댔다. 저물 때가 되어 방 안 한가득 돈이 가득 차니까 주막 주인이 그걸 보고 이렇게 돈이 많은데 장가를 가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처녀를 소개해 주었다. 첫째는 장가가서 집도 짓고 잘 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5-6, 161-169면, 태인면 설화25, 아버지의 유언.

삼형제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맷돌, 북, 태평소.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었지만 삼형제는 각자 물려받은 대로 짊어지고 길을 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사진 pxhere]

삼형제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맷돌, 북, 태평소.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었지만 삼형제는 각자 물려받은 대로 짊어지고 길을 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사진 pxhere]

첫째 아들은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도깨비 방망이를 주워 부자가 되었고, 그 덕에 좋은 배필 만나 가정도 이루었다. 둘째에게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

 둘째는 북을 짊어지고 빌어먹으며 다니다가 하루는 산속 소나무 아래에서 잠을 청하였다. 한밤중에 호랑이가 하나 오더니 둘째를 쳐다보면서 냄새를 찌끔찌끔 맡기 시작하였다. 너무 무서워진 둘째는 냅다 북을 둥둥 치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호랑이가 북 장단에 맞추어 꼬리를 실렁실렁 엉덩이를 실룩실룩 하며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북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지자 온 산의 호랑이들이 몰려들어서 둥닥둥닥 북소리에 맞추어 신명 나게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때 저 아래서 장사꾼 무리 수십 명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왔다. 호랑이들은 사람들 소리를 듣고는 싹 도망가 버렸다.

둘째는 화가 나서 장사꾼 무리에게 소리쳤다. “너 이놈들, 내가 나라에 진상 드리려고 호랑이 서른 마리를 잡았는데 너희들이 오다가 호랑이들을 다 쫓아 버렸으니 어쩔래? 내가 몇날 며칠 공을 들였는데 그걸 다 쫓아냈으니 책임져!”

장사꾼 무리는 자신들이 팔려고 짊어지고 다니던 짐들을 전부 다 내려놓으며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다. 둘째는 그걸 다 가지고 마을에 와서는 장사꾼들에겐 말을 내주고 가버리라고 내쫓고, 물건들을 모두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중신을 서 주어 장가도 가고 잘 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5-6, 161-169면, 태인면 설화25, 아버지의 유언.

살다보면 도깨비한테 홀리듯 어떤 일을 당하기도 하고, 호랑이가 떼로 몰려 들어오듯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비일비재하다. [사진 pixabay]

살다보면 도깨비한테 홀리듯 어떤 일을 당하기도 하고, 호랑이가 떼로 몰려 들어오듯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비일비재하다. [사진 pixabay]

둘째는 첫째보단 좀 더 배포가 있었다고 할까. 호랑이를 보고 무서우니까 북을 둥둥 쳤는데, 북소리에 춤 추던 호랑이들이 장사꾼 무리들 소리에 도망가 버리니 장사꾼들에게 되레 호통을 쳤다. 그 서슬에 놀란 장사꾼들은 목숨만 살려 달라며 자기 물건들을 모두 내놓았고, 둘째는 그걸로 부자가 되었다. 이제 막내 차례다.

셋째도 길을 가다 날은 저물었는데 아주 허름한 움막을 발견하여 거기서 잠을 자기로 하였다. 움막 안에 병풍이 있어 병풍 뒤에 몸을 뉘었는데, 한 여자가 움막 앞에 와서는 “왔수?” 하고 소곤대더니 음식과 술을 차려온 쟁반을 들이밀었다. 셋째가 그걸 맛있게 먹고는 쟁반을 움막 앞에 내놓았는데, 좀 있다 한 남자가 와서 “어? 벌써 왔다 갔나? 근데 빈 그릇만 있네, 술도 없어지고.” 하는 것이었다. 좀 있으니 이제 여자가 다시 와서 “아까 내가 갖다 놓은 것 잡수었소?” “뭣 언제 먹어? 빈 그릇만 있더만.” 여자는 이상하다며 다시 가서 음식을 가져왔고, 여자와 남자는 움막 안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셋째는 병풍 뒤에서 냅다 태평소를 불면서 “너 이놈들! 세상에 이런 도리가 있냐? 사람이 사람 행세를 해야 할 것 아니냐?” 하고 호통을 쳤다. 남녀는 깜짝 놀라 살려만 달라고 빌면서 논문서를 내주겠다 하고 여자는 돈을 한 보따리 갖고 왔다. 셋째는 그 재산으로 부자가 되어 장가도 들고 잘살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5-6, 161-169면, 태인면 설화25, 아버지의 유언.

삼형제의 행운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그냥 우연히 얻어진 행운일까. 이들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곤 맷돌, 북, 태평소다. 맷돌은 필요한 물건이긴 하지만 짊어지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북과 태평소는 전문 연주자가 아닌 이상에야 먹고사는 일과는 아무 상관 없는 물건이다. 꼴랑 그런 것들을 짊어지고 나선 형제에게 도깨비, 호랑이, 불륜남녀가 닥친다. 이 또한 매우 현실적이지 못하고 허황된 데다 희소하다. 정말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우리 삶도 사실 거의 이러한 면이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그런 일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훅 닥쳐온다. 도깨비한테 홀리듯 어떤 일을 당하기도 하고, 호랑이가 떼로 몰려 들어오듯 무섭고 두려운 순간이 비일비재하다.

가진 것 없어 빌어먹고 살던 아버지는 자기 죽을 때가 되어서야 아들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었다.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었지만 삼형제는 각자 물려받은 대로 짊어지고 길을 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들 앞에 엉뚱한 일들이 들이닥쳤지만 이들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어떻게든 썼고, 그 덕에 행운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들은 처음 헤어졌던 삼갈래 길에서 삼 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켰고, 남은 생을 우애 좋게 잘 살아갔다. “참 울아버지가 참말로 직업을 잘 정해줬다” 하고 즐거워하던 둘째에게 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겨준 북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자녀는 부모가 물려주는 대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존재를 세상에 내보내면서 부모로서 가져야 하는 책임감은 자녀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잘 지낼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것도 있겠지만,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성인으로 길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어떤 부모인들 그런 생각을 안 할까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 아닐까. 세상의 두려움에 맞서 싸울 힘이라는 것은 거창한 데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저 홀아비와 삼형제 사이에 끈끈한 믿음이 없었다면 삼형제의 모험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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