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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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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2019년 7월 1일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이 문제 삼은 건 일제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 인정)이었다. 일본은 포토레지스트(PR)·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등 3개 핵심 품목을 규제했다.

‘반도체 강국’ 한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PR·FPI 등은 세계 시장의 90%가량을 일본이 점유하고 있었다. 한국 입장에선 이 소재를 수입하지 못하면 반도체 생산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이 규제를 강행하자 한국 정부는 긴급 국무회의를 여는 등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본이 행동에 나서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소재·부품의 대체 수입처와 재고 물량 확보, 원천기술의 도입, 국산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공장 신·증설, 금융지원 등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지원을 다하겠다. 나아가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다시는 기술 패권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물론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 이어
이번 중국발 ‘요소수 대란’까지
특정국 수출·수입 쏠림 현상 탓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야

이런 다짐이 있은 지 2년여가 흘렀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요소수 대란’에 휩싸여 있다. 해당 국가가 중국으로 바뀌었고 규제 이유가 달라졌을 뿐 대체적인 흐름은 일본의 수출 규제 때와 비슷하다. 중국은 지난달 11일 비료 공급 차질을 이유로 요소의 수출 전 검사를 의무화했다. 사실상 ‘수출 통제’다. 중국은 석탄 수출국인 호주와 갈등을 빚으며 석탄 부족에 시달렸고 전력난이 심각해졌다. 석탄으로부터 요소를 추출하려면 많은 양의 전력이 쓰이는데 석탄도 모자라고 전력도 부족하니 요소 생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문제는 중국이 세계 최대 요소 생산국이고 한국은 요소수의 원료가 되는 산업용 요소의 97.6%를 중국에서 들여온다는 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산업계에서 아우성치기 시작했고 요소수를 쓰는 디젤 차량에도 영향이 미치자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도 뾰족한 수가 없다. 군 수송기까지 동원해 요소수 2만L를 호주에서 들여온다고 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제 한국은 물류망 붕괴 위기에 봉착했다. 이번에도 문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지금까지 첨단 기술 영역 중심의 전략 물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으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품목까지 관리 범위를 넓혀 수입선 다변화와 기술 자립, 국내 생산 등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다.

한국은 개방형 통상국가다. 경제이론처럼 자유롭게 무역을 하면서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은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팔고 비교열위에 있는 제품은 해외에서 들여온다. 자유무역 덕에 한국은 무역 규모가 세계 8위 대국으로 올라섰다. 10월엔 역대 가장 빠른 기간인 299일 만에 무역액 1조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제이론을 적용할 수 없는 품목이 있다. 식량, 석유 등과 핵심 기술·소재 등이다. 특정 국가에 의존했다가 수입 등이 차질을 빚으면 한 나라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어서다. 한국은 이렇게 홍역을 치를 때마다 수입선 다변화, 소재·부품 경쟁력 확보 등을 외쳤지만 그때뿐이었다.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지난해 한국 수입의 23.3%를 중국이 차지한다. 미국 비중도 12.3%에 달한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중국(25.9%)과 미국(14.5%) 비중이 전체 수출의 40%를 넘어선다. 핵심 소재의 쏠림 현상은 더 심각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이 수입하는 품목 1만2586개 가운데 3941개(31.3%)가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80%를 넘어선다. 이 가운데 중국 품목 수는 1850개로 47%에 달했고 미국(503개), 일본(438개) 순이다.

이번 요소수 사태는 중국이 헛기침만 해도 한국은 독감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차이나 리스크’다. 한국은 겉모습으론 세계 8위 무역 대국이지만 속으론 쏠림 현상 때문에 미풍에도 휘청거리는 약한 존재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가 세계 주요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자 필요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주요 회사를 압박하며 미국 내 투자를 늘리게 하고 있다. 시장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리려고 할 때 균형을 잡아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통계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