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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얼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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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조선 시대엔 날씨가 추워지면 서울 한강 변에 사는 사람들의 근심이 커졌다. 조선 시대 세금 중에는 노동력으로 감당하는 역(役)이 있었다. 한강 그중에서도 한강진과 양화진 사이를 경강이라 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한강이 얼면 얼음을 캐서 얼음창고까지 운반해야 했다. 이를 장빙역(藏氷役)이라고 한다. 예전 기록을 보면 주로 겨울날 오전 2시를 전후해 얼음을 채취했다고 하는데, 한양 도성 주민들이 맡은 역 중에서는 가장 고된 일에 속했다. 그래서 조선 후기가 되면 대행업자들이 나타난다. 경강 주민들이 업자에게 돈을 주고 얼음을 대신 납부하게 한 것이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얼음은 고가의 귀한 물자였다. 정부는 동빙고와 서빙고를 짓고 얼음을 보관했는데, 관료와 왕실 종친 등에게 특별히 하사했다. 일부 정계 실력자들은 한강 변에 개인 얼음창고(사빙고)를 지어 특권을 누렸고, 민간에 판매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강희맹의 집안으로 합정에 사빙고를 설치해 300년간 얼음 사업으로 번창했다. 정조 때 강경환은 한양의 얼음 사업을 장악한 거상으로 명성을 떨쳤다.

조선 후기 얼음 사업은 연간 10배 가까운 이익이 남는 사업이었다. 강경환은 신규 진입 세력을 억누르고 사업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 왈패들과 손을 잡기도 하고, 집안과 재력 등을 이용해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로비를 벌이는 등 많은 애를 썼다. 정조 시대에 얼음 사업권을 놓고 관료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이유다. ‘화천대유’ 사태처럼 천문학적 이익이 걸린 사업을 위해 공무원들이 대리자로 나선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