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희망 놓지마, 또 새로운 게 펼쳐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최장수 국민MC 송해가 다큐 영화 ‘송해 1927’ 개봉을 앞두고 9일 간담회를 가졌다. [뉴스1]

최장수 국민MC 송해가 다큐 영화 ‘송해 1927’ 개봉을 앞두고 9일 간담회를 가졌다. [뉴스1]

“노래부르는 신동 홍잠언(10)과 띠동갑이에요. 잠언이도 토끼띠, 저도 토끼띠입니다.”

최장수 국민MC다운 쾌활한 인사였다. 대한민국 최고령 현역 연예인 송해(94)가 자신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 개봉(18일)을 앞두고 9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시사 후 간담회를 가졌다.

“젊은이들은 ‘그 영화 송해 나온 다큐래’ ‘에이 뭐 그때 얘기겠지’ 그럴지 모르는데 여러분도 잠깐이에요.” 무대 밖 모습을 담은 다큐가 쑥스러운지 그는 연신 농담을 던졌다.

다큐는 특유의 우렁찬 오프닝과 함께 33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며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MC 기록을 세운 ‘영원한 오빠’ 송해의 인생을 구석구석 담아냈다. 행사에서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구성지게 노래하는 그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무대 뒤 분장실로, 혼자 사는 아파트 풍경으로 카메라를 옮긴다. 아내와 아들을 먼저 보낸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아픔도 보여준다.

처음엔 다큐 제안을 거절했다고 했다. 속마음을 내비치려니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제작하는 분 아버님이 저의 열렬한 팬이래요. 아드님이 영화 만드니까 송해씨 영화 하나 만드는 게 어떠냐 하셨대요. 4개월을 끌다가 결심했죠.”

그 자신도 처음으로 떨어져서 바라본 삶이었다. 시사 후 소감을 묻자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장면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아주 당황하면서 봤다”고 대답했다.

1927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송복희’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때 미군함선을 타고 부산으로 피란했다. 바다 건너온 실향민이 돼 바다 해(海)자를 예명으로 삼은 굴곡진 인생사다. 유랑극단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한 뒤 당대 톱스타 구봉서·서영춘·배삼룡·이순주 등과 쇼 무대에 서며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었다.

유랑극단 시절 예인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건강까지 해쳤던 때를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떠올렸다.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죠. 남산에 올라가서 깊은 낭떠러지를 찾았어요.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남길 가치도 없는 사람이 오늘 사라진다’ 하고 눈 꼭 감고 뛰어내렸는데 소나무 가지에 얹혔던 것 같아요. 정신 차려서 집에 돌아갔던 생각이 납니다. ‘한참 커가는 아이들한테 또 죄를 지었구나’ 싶었지만, 내색 안 하려고 마음으로만 앓고 다니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잡아당겼더니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20대에 오토바이를 타다 뺑소니 사고로 숨진 아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송해는 충격으로 17년간 진행해온 동아방송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하차했다. 그는 “그 후로는 (사고가 난) 한남대교를 건너가지도 못했다”고 돌이켰다. 생전 가수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을 반대했던 그는 이번 다큐를 찍으며,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아들의 자작곡 녹음테이프를 30여년 만에 듣고 눈물을 흘렸다. 막내딸이 간직했던 물건이었다. 그는 “솔직히 아버지 노릇을 못 했다. 자격 잃은 아버지로서 대단히 후회가 컸다”고 고백했다.

“한 살 많은 구봉서 형이 돌아가신 뒤 제일 위가 되다 보니까 연예계에도 더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코로나19로 장기간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중단돼 방방곡곡 이웃들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격려로 바꿔 전했다.

“몇 년 있으면 100년을 사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뒤돌아보면 볼수록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가는 걸, 자책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래도 어려움을 겪고 나면 또 새로운 것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