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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에 의무상속 44년 만에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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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배우자·부모·자녀 없이 사망한 사람의 형제·자매가 고인의 생전 의사와 상관없이 재산 중 일부를 상속받을 권리가 사라진다. 미혼 독신자는 친양자(親養子)를 입양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법 및 가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9일 밝혔다. 이에 따라 형제자매의 유류분(遺留分)이 없어진다. 유류분은 고인의 뜻과 무관하게 상속인이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유산 비율이다.

현행 민법에는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손자녀)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이 유류분으로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고인이 가족이 아닌 제3자에게 유언을 통해 재산을 모두 상속하고 싶어도 유류분만큼은 줄 수 없다.

형제·자매 상속 어떻게 바뀌나

형제·자매 상속 어떻게 바뀌나

유류분 제도는 1977년 도입됐다. 상속이 주로 장남에게만 이뤄지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을 비롯한 다른 자녀에게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해 주려는 게 제도의 취지였다. 법무부는 농경사회와 대가족제를 전제로 한 가산(家産) 관념이 희박해진 데다 형제·자매의 경우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을 고려해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형제·자매의 유대관계가 과거보다 약해진 만큼 고인이 재산을 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유언의 자유와 효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학계에서는 유류분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된 부분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 맞다고 보고 형제·자매 유류분 삭제를 먼저 추진했다”고 말했다.

형제·자매에 대한 유류분 제도가 폐지되면 직계가족이 없는 고인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나 단체 등에 모든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 생전 연락이 끊겼거나 불화 관계에 있던 형제·자매가 고인 사후 법적 상속분을 요구할 수도 없게 된다.

혼자 양육할 능력이 충분한 미혼 독신자의 친양자(親養子) 입양도 가능해진다. 친양자 입양은 일반 입양과 달리 친생부모와의 관계 종료를 전제로 한다. 입양 후 자동으로 양부모의 성과 본을 따르고 상속도 양부모로부터만 받을 수 있다. 현행 민법은 ‘혼인 중인 부부가 공동으로 입양할 것’을 친양자 입양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혼 독신자는 일반 입양만 가능하고 친양자 입양이 불가능하다. 법무부는 개정안에서 ‘친양자가 될 사람의 복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25세 이상의 사람’이라면 독신자라도 친양자를 입양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독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친양자 입양을 일률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은 독신자 가족 생활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다만 입양 허가 시 가정법원이 고려해야 하는 필수 요소에 양육 상황, 양육 능력뿐 아니라 양육 시간, 입양 후 양육 환경을 추가해 충실한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입양 허가 전 가사조사관을 통해 입양 환경 등도 조사하도록 했다.

아울러 법무부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해 11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배우자나 직계혈족을 상대로 지방자치단체 등 가족관계 등록 관서에 가족관계증명서 교부·열람·공시 제한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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