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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절벽 투신, 가지 걸려 살아"···94세 송해도 당황시킨 다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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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송해(94)가 9일 다큐 '송해 1927' 시사에 앞서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열린 KBS 1TV '아침마당'을 마치고 방송국을 나서며 정겨운 손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방송인 송해(94)가 9일 다큐 '송해 1927' 시사에 앞서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열린 KBS 1TV '아침마당'을 마치고 방송국을 나서며 정겨운 손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노래부르는 신동, 홍잠언(10) 하고 저하고 띠동갑이에요. 잠언이도 토끼띠, 저도 토끼띠입니다.”
최장수 국민MC송해(94)다운 쾌활한 인사였다. 대한민국 최고령 현역 연예인 송해가 자신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송해 1927’ 개봉(18일)을 앞두고 9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시사 후 간담회를 가졌다.
“젊은이들은 ‘그 영화 송해 나온 다큐래’ ‘에이 뭐 그때 얘기겠지’ 그럴지 모르는데 여러분도 잠깐이에요.” 무대 밖 모습을 담은 다큐가 쑥스러운지 송해는 연신 농담을 던졌다.

18일 개봉 다큐멘터리 ‘송해 1927’ #94세 현역 연예인 송해 무대 뒤 얼굴 #전국노래자랑 최장수 MC‧영원한 오빠 #생전 가수 반대한 아들 자작곡 발견에 #“자격 잃은 아버지…소통 못해 후회”

'영원한 딴따라' 송해 4개월 만에 다큐 수락

다큐는 특유의 우렁찬 오프닝과 함께 33년간 KBS1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며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MC 기록을 세운 ‘영원한 오빠’ 송해의 인생을 구석구석 담아냈다. “내 나이가 어때서~” 행사에서 구성지게 노래하는 그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무대 뒤 분장실로, 혼자 사는 아파트 풍경으로 카메라를 옮긴다. 아내와 아들을 먼저 보낸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송해가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아픔도 보여준다.

'국민 노래자랑' MC이자 최고령 현역 연예인 송해의 무대 아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송해 1927'가 18일 개봉한다. [사진 이로츠, 빈스로드]

'국민 노래자랑' MC이자 최고령 현역 연예인 송해의 무대 아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송해 1927'가 18일 개봉한다. [사진 이로츠, 빈스로드]

그는 처음엔 다큐 제안을 거절했다고 했다. 속마음을 내비치기 자신 없어서였다. “그런데 제작하는 분 아버님이 저에 대해 열렬한 팬이래요. 아드님이 영화 만드니까 송해씨 영화 하나 만드는 게 어떠냐 하셨대요. 4개월 끌다가 결심했죠.” 그 자신도 처음 떨어져서 바라본 삶이었다. 시사 후 소감을 묻자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장면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아주 당황한 가운데 봤다”고 대답했다.

인생 최대 위기도…소나무가지 걸려 구사일생

1927년 일제강점기 황해도 재령군에서 ‘송복희’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함선을 타고 부산으로 피란했다. 바다 건너온 실향민이 되어 바다 해(海)자를 예명으로 삼은 굴곡진 인생사였다. 유랑극단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해 당대 톱스타 구봉서‧서영춘‧배삼룡‧이순주 등과 쇼무대에 서며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었다. 남녀 콤비로 활약한 이순주씨가 올 4월 작고하며 이젠 모두 고인이 됐다.

여성 희극인 1인자 고 이순주와 명콤비로 활약했을 당시 송해. 재치 있는 만담과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국민들의 웃음을 책임지며 1970년대 코미디의 화려한 전성시대를 열었다. [사진 이로츠, 빈스로드]

여성 희극인 1인자 고 이순주와 명콤비로 활약했을 당시 송해. 재치 있는 만담과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국민들의 웃음을 책임지며 1970년대 코미디의 화려한 전성시대를 열었다. [사진 이로츠, 빈스로드]

유랑극단 시절 예인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건강까지 해쳤던 때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떠올렸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죠. 남산에 올라가서 깊은 낭떠러지를 찾았어요.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남길 가치도 없는 사람이 오늘 사라진다, 하고 눈 꼭 감고 뛰어내린 게 소나무 가지에 얹혔던 것 같아요. 정신 차려서 집에 돌아갔던 생각이 납니다. 한참 커가는 아이들한테 또 죄를 지었구나. 그 내색을 안 하려고 마음으로만 앓고 다니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잡아당겼던 게 오늘날까지 왔구나 싶습니다.”

아들 생전 자작곡 30여년 만에 처음 들어 

다큐에서 송해는 20대에 뺑소니 사고로 잃은 아들의 자작곡을 30여년만에 처음 듣고 눈물을 흘린다. 그 자신도 딴따라를 반대하는 아버지와 부딪혔지만, 직접 힘겨운 연예계 생활을 겪은 후론 아들의 생전 가수 꿈을 반대했었다. [사진 이로츠, 빈스로드]

다큐에서 송해는 20대에 뺑소니 사고로 잃은 아들의 자작곡을 30여년만에 처음 듣고 눈물을 흘린다. 그 자신도 딴따라를 반대하는 아버지와 부딪혔지만, 직접 힘겨운 연예계 생활을 겪은 후론 아들의 생전 가수 꿈을 반대했었다. [사진 이로츠, 빈스로드]

20대에 오토바이를 타다 뺑소니 사고로 숨진 아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송해는 충격으로 17년간 진행해온 동아방송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하차했다. “그 후로는 (사고가 난) 한남대교를 건너가지도 못했다”고 돌이켰다. 생전 가수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을 반대했던 그는 이번 다큐를 찍으며,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아들의 자작곡 녹음테이프를 30여년 만에 듣고 눈물을 흘린다. 막내딸이 간직했던 것이었다.
“솔직히 아버지 노릇을 못 했다”고 고백하며 “세대의 변화가 너무 빠르게 오기 때문에 미처 그런 얘기 주고받을 사이 없이 살다 아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자격 잃은 아버지로서 대단히 후회가 컸다”고 말했다.

"몇 년 후면 100년…어려움 뒤에 새로운 것 오죠"

“저보다 한 살 많은 구봉서형이 돌아가신 뒤 제가 제일 위가 되다 보니까 연예계에도 더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코로나19로 장기간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중단돼 방방곡곡 이웃들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은 격려로 바꿔 전했다.
“몇 년 있으면 100년을 사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뒤돌아보면 볼수록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가는 걸, 자책하는 마음도 듭니다. 어려움을 겪고 나면 또 새로운 것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국내 최고령 방송인 송해(94)가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열린 KBS 1TV '아침마당'을 마치고 ‘전국노래자랑’ 최연소 최우수상 출신인 홍잠언 군과 함께 방송국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국내 최고령 방송인 송해(94)가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열린 KBS 1TV '아침마당'을 마치고 ‘전국노래자랑’ 최연소 최우수상 출신인 홍잠언 군과 함께 방송국을 나서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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