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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만이 사죄"라던 강윤성, 울먹이며 국민참여재판 신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강윤성(56)이 9일 열린 두 번째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장에 왜곡된 내용이 많다”며 법원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강씨는 지난달 14일 첫 재판을 앞두고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사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약 1개월 만에 강씨의 입장이 뒤바뀐 배경에 대해 의문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 살해 혐의를 받는 강윤성이 지난 9월 7일 오전 송파경찰서에서 서울동부지검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 살해 혐의를 받는 강윤성이 지난 9월 7일 오전 송파경찰서에서 서울동부지검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강윤성 “흉악범 매도 억울” 울먹거리기도  

서울동부지법 형사12부(박상구 부장판사)는 9일 오후 강도살인 등 7개 혐의를 받는 강씨의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짙은 녹색 수의를 입고 재판장에 나타난 강씨는 살해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으나, ‘검찰의 공소장에 왜곡된 내용이 많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강씨는 “유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싶지 않아서 검찰 조사 과정에서 틀린 부분까지 인정했다”며 “변호인이 ‘여론이 안 좋은데 왜 굳이 국민참여재판을 하느냐’고 했지만 정면돌파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이유에 대해선 “제가 이걸 해서 감형 이런 게 아니다. 흉악범이 아닌데 매도하니까 너무나…”라고 말끝을 흐리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내달 2일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강씨의 국민참여재판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강윤성이 지난 8월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차고 있다. 연합뉴스

강윤성이 지난 8월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차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구속기소 된 강씨는 지난 2일 법원에 국민참여재판 의사 확인서를 제출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강씨는 “검찰의 공소장에 기재된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면 만 20세 이상 국민 중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린다. 다만 재판부가 이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앞서 강씨는 지난달 첫 재판을 앞두고 변호인에게 편지를 보내 “사형 선고만이 유가족에게 진정 사죄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뉘우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달 2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탄원서와 기부금 영수증 등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감형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감정 호소 전략, 자충수 될까

법조계에서는 강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게 중형을 피하기 위한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판사 출신 조용현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는 “본인이 살인을 인정한 상황에서 유죄를 피하긴 어렵다고 판단해 조금이라도 양형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며 “판사보다는 일반 국민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일반적인 경우 국민 배심원이 재판부보다 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이 병원을 가기 위해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이 병원을 가기 위해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강씨의 범행과 잔혹성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슷한 사례로 2019년 경남 진주시에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 5명을 살해한 안인득(44) 재판이 있다. 당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안씨는 배심원들에게 조현병 등 정신병력을 강조했지만, 배심원 9명 중 8명이 사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 역시 안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2·3심에선 안씨의 심신미약이 인정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형사법 전문 구재일 변호사(법률사무소 다정)는 “보통 피고인의 유·무죄를 첨예하게 다투는 사건에서 배심원의 판단을 구하고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이미 살인 혐의가 명확한 사건에서 형벌의 정도를 낮추고자 국민참여재판으로 돌리는 건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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