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당나귀 주인 잠깐 봅시다" 갑자기 나타난 경찰에 끌려간 곳은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13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평선 아득한 메세타 평원. 걷다보면 아무 생각 없어진다.

지평선 아득한 메세타 평원. 걷다보면 아무 생각 없어진다.

돌멩이가 박혔어요. 그래도 씩씩한 동키호택.

돌멩이가 박혔어요. 그래도 씩씩한 동키호택.

나는 자연인이다. 밥 하려면 불부터 피워야지.

나는 자연인이다. 밥 하려면 불부터 피워야지.

이동식 부엌 살림. 없는 거 빼고 다 있어요.

이동식 부엌 살림. 없는 거 빼고 다 있어요.

오후 1시경 우리는 산토 도밍고에 도착했다. 이 마을의 정식이름은 아주 길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la Calzada)인데 줄여서  산토 도밍고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기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곳의 랜드마크는 거대한 종이 있다는 성당이다. 그 앞마당에 호택이를 묶어 놓을 생각이었다. 성당 맞은편에 있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호택이를 보자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어른들도 ‘부로’를 외치며 달려왔다. 마침 신부님으로 보이는 분이 오셨기에 당나귀를 잠시 묶어 놓아도 좋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한 걸 물으니 난감한 모양이다. 신부님은 입을 씰룩거리며 어깨를 들썩여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나라동네 교회나 절집 마당에 당나귀를 묶어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나귀다 당나귀.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어 와글와글.

당나귀다 당나귀.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어 와글와글.

어메 호택이 이쁜 거. 순례객 언니도 와서 쓰다듬어 주고.

어메 호택이 이쁜 거. 순례객 언니도 와서 쓰다듬어 주고.

이 마을에 잠시 들른 이유는 동훈이 휴대전화 유심카드 재충전 때문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아직 13km 정도를 더 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스페인은 낮 12시가 넘으면 저녁까지 가게 문을 모두 닫는다. 하필 ‘씨에스타’라고 하는 낮잠시간에 딱 걸렸다.
“저녁 6시에 문을 연대요?”
이제 두 시도 됐는데 6시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니. 사실 나도 데이터가 동이 나서 보충해야 하지만 숙소나 식당 공짜 와이파이를 쓸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도 없었다. 여기서 개통을 못하면 부르고스까지 가야 한다. 일주일 이상을 걸어야 하는 먼 거리다.

우리는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지는 어느 호텔 로비에 자리 잡았다. 장기간을 죽치려니 눈치가 보여 1.2유로를 주고 커피 한 잔을 시켰다. 6시에 휴대폰 가게로 간 동훈이가 삼십여 분 뒤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다.
“벌써 다했어?”
“아니요. 여권을 안 가지고 갔어요.”
에구, 얘는 참 손이 많이 간다. 호택이가 어쩌고 있는지 궁금해서 성당 광장으로 갔다. 이놈의 인기는 5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했다. 그 사이 똥을 잔뜩 싸 놓은 것 외에는 별일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난리를 치건말건 호택이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표정이 없었다. 똥을 치울까 생각하다가 더 싸 놓으면 한꺼번에 처리할 생각으로 다시 호텔카페로 돌아왔다.
교회의 종소리가 나면 호택이도 우렁차게 울었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동네 사람들이 종소리가 달라졌다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호택한테 가니 그 사이에 누가 똥을 치우고 물을 뿌려 놓았다. 나는 당나귀 영양제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호택이 입에 넣어주는 시범을 보이니 아이들도 줄줄이 따라했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50대 여성이 ‘무차 그라시아스’(대단히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아니요 뭐, 제가 더 감사한 걸요. 이때 동훈이가 돌아왔다.
“이 나라 진짜 느립니다. 느려요.”
네가 더 느린 걸, 이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말해도 삐치지는 않겠지만.

당나귀 사진 찍으러 왔어요. 가지 말고 우리 동네서 계속 살면 안돼요? 응, 안 돼 우리도 갈 길이 있어. 싫어 싫어요, 가지 말어요. 엉엉엉.

당나귀 사진 찍으러 왔어요. 가지 말고 우리 동네서 계속 살면 안돼요? 응, 안 돼 우리도 갈 길이 있어. 싫어 싫어요, 가지 말어요. 엉엉엉.

얘들아 이제 가서 자야지. 안돼요, 호택이 더 볼 거예요.

얘들아 이제 가서 자야지. 안돼요, 호택이 더 볼 거예요.

“동훈아 저물어 가는데 우리 여기서 자야겠어. 호택이는 여기 둬도 될 것 같아.”
호택이를 그대로 둔 채 우리는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골목을 돌아가니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메뉴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는데 스테이크가 크고 맛있게 보였다.
“와! 저렇게 큰 스테이크가 9유로야. 대박이다.”
“진짜 죽이네요. 우리 저거 먹어요. 아부지.”
식당에 들어서니 썰렁했다. 직원이 없어 남자 주인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모양이다. 한참 지나서야 나온 음식은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밥을 다 먹고 차를 마시는데 느닷없이 경찰이 들어왔다.
“당신들이 저 당나귀 주인이지요?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경찰이 왔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싶어 긴장했다. 동훈이가 먼저 경찰들과 현장으로 갔다. 나는 충전 중이던 전자기기들을 챙겨 뒤를 따랐다. 이미 어두워진 광장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 설명하는 사람,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도 보였다. 우리가 나타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동훈이가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경찰은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경찰이 입을 열었다.
“당나귀가 여기서 4시간 이상을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에 당나귀를 두면 안 됩니다.”
당연한 말이다. 문명사회에서 당나귀를 이런 문화재 앞에 묶어두면 될 일이겠는가. 욕먹어도 싸다는 자세로 몸을 조아리는데 경찰이 말을 이었다.
“여기는 풀도 없고, 물도 없고, 당나귀가 잠자기에는 마땅치 않아요.”
엥? 이게 무슨 말이지? 당나귀 걱정하는 말이잖아.
“당신을 신문에서도 보고 TV에서도 봤어요.”
근엄하던 경찰 얼굴에 이제 웃음이 돈다. 유명인을 대하는 자세처럼 공손했다.
“제 차를 따라오세요. 제가 풀도 많고 텐트도 칠 수 있는 명당으로 안내할게요.”
경찰차는 번쩍이는 경광등을 켜고 우리가 힘들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였다. 호위를 받으며 가보니 과연 호택이 밥이 많고 텐트 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제가 오늘 밤에 두 번 정도 와 볼게요. 그런데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될까요?”
휴대폰을 꺼내 셀프사진을 찍고 고마운 경찰이 돌아갔다.

우리가 편히 쉴 풀밭에 데려다 준 친절한 경찰 아저씨.

우리가 편히 쉴 풀밭에 데려다 준 친절한 경찰 아저씨.

이때 숲속에서 웬 놈이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먹은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아 씨퐈 뽕주아? 저 경찰이 왜, 왜 오 온 거죠? 나 잡으러 온줄 알고 숲으로 도망갔다 나왔어요. 여기서 자면 불법인가요?”
발음이 프랑스인이다. 말을 더듬는 그의 눈빛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개를 데리고 순례길을 가는 프랑스 청년이었다.
“여기서 캠핑하라고 경찰이 데려다 줬어요.”
“씨 포앙 정말요? 스페인 경찰이 그 그렇게 친절해요?”
그는 믿을 수 없다며 프랑스인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당신하고는 급이 달아요. 우리는”
그가 알아들었을 리 없겠지.
다음날 새벽. 우리는 호택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깼다. 이날 산토 도밍고 모든 시민도 호택이의 우렁찬 외침을 들으며 눈을 떴을 테다.

※중앙일보(joongang.co.kr) 로그인 하시면 임택 작가의 '동키호택' 연재물을 일주일 빨리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에 시커먼 자가 사람 놀래킨 프랑스 아재.

왼쪽에 시커먼 자가 사람 놀래킨 프랑스 아재.

프랑스 노숙자와 한국 노숙자. 프랑스 노숙자는 없어보이는 저 개랑 같이 산티아고길을 걷는다나. 그래도 우리 호택이는 꽤나 있어보이지.

프랑스 노숙자와 한국 노숙자. 프랑스 노숙자는 없어보이는 저 개랑 같이 산티아고길을 걷는다나. 그래도 우리 호택이는 꽤나 있어보이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