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살에 상상못할 끔찍한 짓" 에티오피아 대학살 절규

중앙일보

입력 2021.11.09 05:00

“5살 아이 살가죽이 벗겨져 죽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더 끔찍한 사례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말해주겠다. 어떤 증언이라도 할 테니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

지난해 11월 3일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는 티그라이 집권 지역정당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 측이 지역 내 연방군 막사를 공격했다며 연방군을 '질서 회복 작전'에 투입했다. 이후 발발한 내전 와중에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하고 북부 지역에서 피란민 250만 명이 발생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일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는 티그라이 집권 지역정당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 측이 지역 내 연방군 막사를 공격했다며 연방군을 '질서 회복 작전'에 투입했다. 이후 발발한 내전 와중에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하고 북부 지역에서 피란민 250만 명이 발생했다. [EPA=연합뉴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사는 칼디(18‧가명)는 하루하루 공포에 떨며 숨어지내는 티그라이족 중 한 명이다. 약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티그라이족은 에티오피아 인구(약 1억1800만명)의 6%를 차지하는 소수민족. 이들의 주 본거지인 북부 티그라이주(州)에서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이 반기를 들고 내전을 시작한 지난해 11월 이래 티그라이족은 반군과 연관을 의심받을까봐 숨죽이고 살아왔다. 최근 TPLF가 수도 진격을 코앞에 두면서 티그라이족을 상대로 한 보복 살육과 약탈이 거세지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중앙일보와 메신저 인터뷰에서 “지금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전쟁이 아닌 인종청소”라고 탄식했다.

정부군-반군 대립 속 소수민족 대학살
티그라이족 주민, 본지 인터뷰서 폭로

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아디스아바바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티그라이 반군과 싸우고 있는 아비 아머드 총리 행정부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앞서 지난 2일 에티오피아 정부는 “반군이 심각하고 임박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칼디에 따르면 그때부터 아디스아바바의 혼돈은 극에 달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내 메스켈 광장에서 에티오피아 국방군(ENDF) 지지 집회가 열려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날 도심에 집결한 수만 명의 시위대는 티그라이 반군과 싸우는 아머드 총리 정부 지지를 표명했다. [AP=뉴시스]

7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내 메스켈 광장에서 에티오피아 국방군(ENDF) 지지 집회가 열려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날 도심에 집결한 수만 명의 시위대는 티그라이 반군과 싸우는 아머드 총리 정부 지지를 표명했다. [AP=뉴시스]

경찰은 각 집을 수색하며 티그라이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을 연행하고, 공공주택에 사는 티그라이족을 내쫓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정부에서 일하던 티그라이족은 일자리를 잃었다. 비상사태 선포 이후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라디오와 TV 방송에선 ‘쥐 같은 것들’(티그라이족)을 축출해야 한다는 혐오 발언이 연이어 보도된다. 티그라이족은 타 종족과 외모로 구분 짓긴 어렵지만, 에티오피아 공식 언어인 암하라어가 아닌 자체 언어 티그리냐어(Tigrinya)를 사용한다.

칼디는 “시 당국이 시민들을 향해 스스로 무장하라고까지 한 상황에서 무슨 일이 더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모두가 두려움에 숨어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비 총리는 지난달 31일 “반군에 맞서 모든 시민이 어떠한 무기라도 들고 싸워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부가 민간인들에게 무기를 들도록 장려하는 것은 특히 혐오 발언이 널리 퍼지는 이 상황에서 잔학행위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에티오피아 내 폭력을 옹호하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7일(현지시각)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친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아비 아머드 총리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날 모인 수만 명의 시위대는 북부 지역 티그라이 반군과 싸우고 있는 아머드 총리 행정부를 지지하고 반군과 즉각적 휴전을 촉구한 미국을 비판했다. [EPA=연합뉴스]

7일(현지시각)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친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아비 아머드 총리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날 모인 수만 명의 시위대는 북부 지역 티그라이 반군과 싸우고 있는 아머드 총리 행정부를 지지하고 반군과 즉각적 휴전을 촉구한 미국을 비판했다. [EPA=연합뉴스]

수도 내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칼디는 “북부도시 호젠에선 에티오피아 국방군(ENDF)이 한 여성의 아이들을 집 밖으로 끌고 나와 눈앞에서 죽였다. 군인들은 시체를 수습할 경우 그 여성도 죽인다고 했고, 엄마는 집 앞에 놓인 아이들의 시체를 며칠간 두고 봐야 했다”며 “이는 이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전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군은 우리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부러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 다른 도시에선 정부군이 5살짜리 아이를 산 채로 살가죽을 벗겼다. 그 아이는 고통으로 기절했고, 과다출혈로 죽었다”며 “이 이야기들이 충분히 끔찍하지 않다면 얼마든지 더 증언할 수 있다.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지난달 4일 티그라이 한 병원에서 영양실조 등으로 치료받는 4세 여아 모습. [AP=연합뉴스]

지난달 4일 티그라이 한 병원에서 영양실조 등으로 치료받는 4세 여아 모습. [AP=연합뉴스]

칼디는 “각지에서 조직적인 성폭행과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 가족이 사는 곳에는 통신도 끊겨 연락도 못 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이런 종류의 증오가 이 나라에 만연한 상황을 전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번 내전의 직접적인 뿌리는 지난 2018년 취임한 아비 총리가 고질적인 부족 간 대립 해소를 위해 지역 정당 연정을 해체하고 단일정당인 번영당 체제 수립을 시도하면서다. 아비 총리 집권 이전 부족 연정 체제에서 30년 가까이 에티오피아를 이끌었던 TPLF는 이 같은 방향에 반기를 들었다. TPLF는 연정 집권 당시 힘을 키워 에티오피아 전체 군사력의 절반 수준인 25만의 무장병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주 아굴라에서 주민들이 구호식량으로 도착한 콩을 두고 언쟁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주 아굴라에서 주민들이 구호식량으로 도착한 콩을 두고 언쟁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에티오피아 정부군은 한때 티그라이 주도 메켈레를 장악했지만, 지난 6월 말 전세가 역전되며 현재 TPLF는 메켈레를 포함한 티그라이 지역 대부분을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 측이 티그라이주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막고 대규모 학살과 기아, 성폭행 등을 방조하면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여기에 아비 총리를 배출한 에티오피아 내 최대 부족인 오로모족(전체 인구의 34%)의 ‘오로모해방군’(OLA)도 종족 지도자들을 대거 투옥한 아비 총리에 반발해 TPLF와 동맹을 맺으며 사실상 전국적 내전으로 확대됐다. 7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반군은 수도로 직행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앞서 점령한 데시와 콤볼차를 넘어 수도와 약 320㎞ 떨어진 도시 케미세에 도달한 상황이다.

에티오피아, 국가비상사태 선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에티오피아, 국가비상사태 선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에 아프리카연합(AU)의 '아프리카의 뿔'(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 반도 일대) 지역 고위 협상 대표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권담당 사무차장 등이 양측 사이에서 휴전과 인도적 지원 우선 시행을 요청하고 있지만, 앞서 제프리 펠트먼 미국의 동아프리카 특사는 “양측은 휴전 협상이나 회담 모두에 전혀 가까워(anywhere near)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에티오피아 주재 미 대사관은 5일 필수인력을 제외한 주에티오피아 외교공관과 미 정부 시설의 직원·가족에게 현지에서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스라엘과 캐나다 등도 외교관 가족부터 대피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외교부도 지난 5일 에티오피아 전 지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출국권고인 3단계로 상향했다. 현재 에티오피아에 체류하는 재외국민은 약 270명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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