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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20대에게 인기 없는 두 후보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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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얼마 전 20대 청년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희망이 없다고 했다. 인생의 출발선에서 섬뜩한 생각을 한다. “외환위기가 다시 오면 좋겠어요. 지킬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집값이 폭락하고, 기존 판이 뒤집어지면 마지막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1990년대에 태어난 20대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임금근로자 353만 명 가운데 40%인 141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2016년 32%에서 현 정부 5년간 40%로 뛰었다. 30대(23%), 40대(29%), 50대(36%)보다 높다. 상대적 약자인 20대가 가장 먼저 비정규직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제로(0)’를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로선 참담한 결과다.

90년대생, 부모보다 못사는 첫세대
진영 싸움 내년 대선의 캐스팅 보트
이념보다 기득권 불공정에 민감
부패·꼰대 이미지에는 마음 안 줘

자산 격차도 전 연령대에서 20대가 가장 크다. 상위 20%(3억2855만원)와 하위 20%(844만원)의 자산 격차가 39배에 달한다. 20대부터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았느냐, 아니냐가 결정적 요인이다. 그나마 빚내서 투자한 주식이 올라 버텼는데, 세계적 긴축 흐름으로 주가 전망이 밝지 않다. 주가가 주춤하면 20대의 동요와 불만은 더 커질 것이다.

미묘한 게 또 하나 있다. 성비 불균형 문제다. 20대 남성이 여성보다 41만 명이나 많다. 지난해 20대 남성은 372만 명, 여성은 331만 명이다. 남아 선호가 남아있던 90년대에 낙태를 많이 한 결과다. 비슷한 나이끼리 결혼한다는 가정하에 남성 9명 중 1명은 짝을 구할 수 없다. 성비 불균형은 많은 사회 문제를 낳는다. 여성에 대한 과도한 혐오로 표출되기도 하고, 이에 맞서 남혐이 번지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풍파를 겪어서인지 20대의 사고는 단순하지 않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것저것 해주겠다는 공약이 넘쳐나죠. 하지만 20대는 별로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재정에서 퍼주면 결국 뒷감당은 우리 몫 아닌가요?” 20대는 돈 몇 푼의 포퓰리즘에 쉽게 현혹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다. 한편으론 피해 의식이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태어난 20대는 보수·진보의 해묵은 진영 싸움에 관심이 적다. 그보다는 기득권의 불공정, 불평등, 부패, 갑질에 예민하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분노하던 20대가 2019년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돌을 던졌다. 그들 눈에는 박 전 대통령을 비호하는 태극기부대나 조국을 감싸는 친문이나 불공정에 눈 감는 집단일 뿐이다. 대장동 사건에 가장 분노하는 연령도 20대다. 갤럽에 따르면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20대가 72%로 가장 많았다. 대선후보들이 기득권의 불공정을 타파하겠다고 외치면 20대의 냉소가 돌아온다. “당신이 바로 불공정 기득권 아니냐.” 20대는 만만하지 않다.

20대는 또 다른 기득권,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이 크다. “노조는 진입장벽을 쌓고,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사는 기득권 꼰대 아닌가요?” 일례로 현대자동차는 노조와 협의해 올 1~8월 생산직 정년퇴직자 1475명을 계약직으로 재고용했다. 같은 기간 신규 채용은 달랑 102명. 20대는 연금개혁을 외면한 문재인 정부에도 불만이 많다. “우리가 연금을 탈 때쯤이면 바닥날 게 뻔해요. 그런데도 현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연금을 개혁하지 않은 유일한 정부입니다. 골치 아픈 현안은 적당히 뭉개고, 차기 정부로 떠넘기겠다는 뜻이죠. 이런 게 불공정입니다.”

연금 말고도 집값과 일자리에 질린 20대 앞에서 정부 편을 들면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20대의 문 대통령 지지율(11월 첫째 주)은 22.9%에 그쳤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다. 70대 이상(24.2%)보다 낮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1호 공약으로 분배 대신에 ‘성장 회복’을 꼽았다. 산업화의 길을 연 박정희 전 대통령도 소환했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 계승을 다짐하며 양다리를 걸쳤다. 20대 표심을 얻으려면 문재인 정부와 선을 그어야 한다.

20대는 친시장, 친기업, 감세, 효용 등을 기반으로 한 보수의 금과옥조, 신자유주의에도 회의적이다. 특히 약자를 보듬지 못하는 듯한 공감 능력 부족에 몸서리친다. “시장이 잘 돌아가면 잘살 수 있나요? 일자리가 생기나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승자독식의 비정한 시장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에는 과거 보수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이 차고 넘친다. 그들 머릿속에는 비정한 신자유주의가 꽉 차 있다. 윤 후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도 하필이면 『선택할 자유』다. 이 책의 저자 밀턴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의 대부다.

내년 대선은 진영 싸움에서 자유로운 18~29세 795만 명(유권자의 18%)이 캐스팅 보트다.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선거 때도 20대 표심이 결정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재명·윤석열 후보 공히 20대에게 인기가 없다. 승부처에서 똑같이 바닥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분명한 건 부패 이미지나 꼰대 이미지로는 20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속 보이는 포퓰리즘이나 어설픈 과거 정부 시즌2로는 20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