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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가을의 전설, 다큐로 부활한 무쇠팔 최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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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최동원

최동원

1984년 가을, 롯데 자이언츠 ‘무쇠팔’ 최동원(1958~2011)은 강력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열흘간 한국 시리즈 7차전 중 5경기에 등판, 4승 1패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로 꼽힌다.

“전 게임을 다 나가더라도 마,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이기고 싶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최동원이 한 말이다. 그날의 투혼을 담은 다큐멘터리 ‘1984 최동원’(감독 조은성)이 10주기를 맞아 11일 개봉한다. ‘11’은 생전 등번호였다.

최동원에 관한 최초의 극영화 다큐다. “만화에서 나올 장면”(이만수 삼성 포수, 이하 1984년 기준)이고 “각본 없는 드라마”(김용철 롯데 타자)다. “제1 선발 투수로서 대한민국에서 최동원만큼 확실한 투수가 없었죠.”(임호균 롯데 투수) 최동원과 맞대결한 삼성과 롯데 동료 선수들, 강병철 감독, 야구해설위원, 부산 사직구장 최동원 동상을 매일같이 닦는 어머니 김정자 여사 등이 생생한 기억을 되살렸다. 롯데 팬인 배우 조진웅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연출을 맡은 조은성(49) 감독을 지난 4일 서울 종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럭비 다큐 ‘60만번의 트라이’(2014), 노무현 전 대통령 다큐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등을 제작했고,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그린 다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2017)로 감독 데뷔했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를 했다”는 그는 “베이스볼 키즈이자 다큐 감독으로서 최동원 선배님을 추모하고 싶었다. 다큐의 밀도가 중요했다. 1984년 한국 시리즈 열흘 이야기만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야구선수 고(故) 최동원 추모 다큐 ‘1984 최동원’에서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선수의 84년 당시 모습이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야구선수 고(故) 최동원 추모 다큐 ‘1984 최동원’에서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선수의 84년 당시 모습이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다큐엔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최초 완봉승을 거둔 대구 시민야구장 1차전(9월 30일)부터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삼성에 6:4로 우승을 거둔 7차전(10월 9일)까지가 담겼다. “생전 경기 영상을 다 모으려 했는데 KBS에도, MBC에도 없더군요. 당시엔 경기를 라이브로 송출하고 녹화를 한부 떠놓는데 방송 테이프가 비싸 여러 번 재녹화해서 썼기 때문이죠.”

4년 전 보물상자 같은 박스를 발견했다. 최동원 선수 아버지가 방송사 중계를 녹화해둔 비디오테이프를 최 선수 부인이 창고 정리 중 발견한 것이다. “디지털 복원을 해보니 1982년 서울 세계선수권대회부터 한국 시리즈 4개 정도가 담겨있었어요. 최동원 선수가 방송 쇼 프로 출연한 것까지요.”

미공개 영상도 담았다. 1985년 최동원이 임호균 선수 아들 돌잔치에서 ‘한오백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 장면이다. 조 감독이 KBS 스포츠 다큐 ‘인천 야구의 추억’(2012)을 만들 때 가까워진 임 선수가 당시 찍어둔 비디오를 제공했다. “최동원 선배에 대한 다큐라고 하면 거절하는 분이 없어서 지금껏 만든 다큐 중 이번이 섭외가 가장 쉬웠다”고 조 감독은 말했다.

조은성 감독

조은성 감독

“주변 증언에 의하면 경기장에선 투혼의 선수였지만 운동복을 벗고 나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청년”(조은성)이었던 최동원의 뒷모습도 담겼다. 조 감독은 “영화에는 안 나오는데 최동원 선수 등 번호가 11번인데, 어릴 적엔 1번이었다. 에이스여서. 점점 덩치 커지는데 유니폼의 1번을 보니까 외로워 보였다더라.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동료들과 서로 기대면서 야구 하자’는 의미로 11번을 했다”고 전했다. 그의 등번호는 롯데 자이언츠 최초로 영구 결번돼 사직구장에 새겨졌다.

조 감독은 최동원을 “한국 프로야구 40년의 영웅, 약자를 먼저 생각한 최초의 스포츠 스타였다”고 꼽았다. “최동원 선수가 1988년 선수협의회를 만들려다 삼성에 김시진과 맞트레이드 됐죠. 야구판의 충격이었어요. 왜 연봉 많은 스타가 노조를 만들었을까. 2군 선수들의 열악한 현실을 돕기 위해서였죠.”

조 감독은 서울 세계선수권 대회 때 최동원을 처음 보고 “안경 쓴 야구선수가, 덩치가 훨씬 큰 서양인들을 상대로 빠른 공을 던져 삼진을 잡는 실력에 반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본 최동원은 그가 KBS 스포츠 다큐를 찍던 2011년 최동원이 모교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레전드 매치에 참석한 모습이다. 대장암 재발을 감춘 채였다. “비쩍 말랐는데 복수가 차서 배만 나와 있었어요. 두 달 후에 돌아가셨죠. 가족들은 다 말렸는데 기어코 마지막으로 모교 유니폼 한번 입어보고 싶다고 하셨대요. 동생이 야구심판인데 최동원 선수가 야구공을 쥐고 돌아가셨다고 해서 안타까웠어요. 살아계셨으면 한국 야구계에 쓴소리도 하셨을 텐데….”

조 감독은 ‘1984 최동원’을 통해 확보한 경기 영상들을 토대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멤버들의 다큐도 2~3년 내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제목은 ‘마지막 국가대표’. “당시 출전 멤버 중 벌써 일곱 분이 돌아가셨어요.”

조 감독은 이번 다큐로 아카이브 자료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한국은 스포츠 아카이브가 열악해요. 차범근 선수 다큐도 만들 법한데 국내엔 아카이브가 없어요. 이번 다큐를 만들며 아카이브 장비들을 개인적으로 모으기 시작했죠. 다큐 완성본을 제외하고 촬영해놓은 영상들은 무료로 쓸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누구나 기증하고 쓸 수 있게 하면 또 다른 다큐의 원천 소스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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