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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문 지키는 신까지 설득하는 노래는 어떤 소리일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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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오르페우스역 배우가 높은 음으로 천상의 소리를 표현하는 ‘하데스 타운’. [사진 클립서비스]

오르페우스역 배우가 높은 음으로 천상의 소리를 표현하는 ‘하데스 타운’. [사진 클립서비스]

그가 노래하면 강물이 따라 부르며 흐르다 강둑을 터뜨리고, 나무가 따라부르다 열매를 맺는다. 그의 음악은 겨울만 남은 세상에 봄을 가져다준다.

현재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하데스 타운’(내년 2월까지)에서 주인공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신비하다. 사람은 물론 자연까지 변화시킨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가 출발. 뛰어난 음악가인 오르페우스가 세상을 떠난 아내 에우리디케를 못 잊어 지하 세계로 찾아가고, 구해 나오는 중 아내가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며 비극으로 끝난다.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고 토니상(최우수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한 ‘하데스 타운’의 첫 한국 공연이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수백 년 동안 수없이 변주됐다. 오페라, 관현악곡, 합창 음악, 발레, 오페레타에 뮤지컬까지. 현존하는 최고(最古) 오페라 ‘에우리디체’(야코포 페리 작곡, 1600년)에서 시작해 미국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1991년 오페라 ‘오르페’까지 오르페우스가 등장한다. 신화의 원문은 ‘오르페우스’이고, 작품의 언어에 따라 ‘오르페오’ ‘오르페’ 등으로 변형됐다.

‘하데스 타운’은 이 신화의 최신 버전이다. ‘하데스 타운’ 한국 공연의 음악감독인 한정림은 “음악가의 신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매혹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무대 위에 올라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밴드를 지휘한다.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음(音)이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음악가들에게 오르페우스 신화는 보석과도 같다”고 말했다.

600년 전의 오페라 작곡가들도 음악의 위력이라는 주제에 매력을 느꼈다. 정경영 한양대 작곡과 교수는 “오페라의 기원이 그리스 비극에 대한 연구에 바탕을 둔다. 그리스 비극의 힘이 노래에서 왔다는 논리가 오페라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음악의 힘을 주제로 한 오르페우스 신화가 필연적으로 사용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강물과 나무, 지옥의 신까지 감동하게 하는 음악을 무대에서 구현하는 일이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을 지키는 신도 노래로 설득해야 한다. 특히 ‘하데스 타운’에서는 그의 노래가 온 세상에 봄을 가져온다. 원작 작곡가인 아나이스 미첼은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높은음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며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한국 공연에는 테너 중에서도 하이 테너가 가능한 조형균·박강현·시우민이 캐스팅됐다.

한정림 감독은 “진성으로 가능한 음높이도 가성으로 부르도록 주문했다”고 말했다. “천상의 소리를 상상했다. 특히 한국어 자음의 특성상 영어보다 거칠게 들릴 수 있어 더 가볍게, 힘을 빼고 불러야 한다.” 그는 “아름답게 들리도록 애써 부르기보다는 ‘내가 부를 테니 들어라’는 느낌으로 한발 떨어져 노래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크리스토프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년)의 정직하고 직설적인 노래, 자크 오펜바흐 ‘지옥의 오르페우스’(1858년)의 사회 풍자적인 음악이 대표적이다.

오펜바흐는 오르페우스 부부를 위선적으로 그리면서 나폴레옹 시대를 비꼬았다. ‘하데스 타운’은 지하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노동착취가 이뤄진다는 내용을 넣어 현대 사회를 비튼다. 정경영 교수는 “오르페우스가 아내 구출에 실패한다는 점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상징하기도 한다”며 “여러 해석이 가능한 원형인 만큼 현대적 변주가 계속되리라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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