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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만난 日 원폭 피해자의 기억 “엄청난 빛과 버섯구름”

중앙일보

입력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로 평생 반전 평화운동을 벌인 쓰보이 스나오의 2013년 8월 모습. AP=연합뉴스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로 평생 반전 평화운동을 벌인 쓰보이 스나오의 2013년 8월 모습. AP=연합뉴스

히로시마 공과대학을 다니던 스무살 쓰보이 스나오(坪井直)는 그날 아침 미유키 다리를 건너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한순간 눈앞에 엄청난 빛이 번뜩이더니 정체 모를 충격으로 약 10m를 날아가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 눈앞엔 빛은 사라진 채 검은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훗날 “나는 버섯구름 아래 있었다”고 말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의 핵무기 ‘리틀 보이(Little Boy)’를 투하한 그날이다. 쓰보이는 원자폭탄이 폭발한 ‘폭심지’에서 약 1.2㎞ 거리에 있었다.

생지옥 핵전쟁의 ‘산 증인’

쓰보이는 과거 인터뷰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내 귀는 (잘려서) 덜렁거리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주변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체에 불이 붙어 있었다. 한 소녀는 오른쪽 눈알이 턱 옆까지 빠져나와 매달려 있었고, 또 다른 여성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내장을 틀어막고 있었다. 한 어르신의 폐는 가슴에 겨우 붙어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던 기억들이다.

곧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을 주워 땅바닥에 “이곳에서 쓰보이가 죽었다”고 썼다. 어디선가 그를 찾아 헤매고 있을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의 시신을 잘 수습할 수 있도록 남기는 표식이었다. 3일 밤낮 아들을 찾아다니던 어머니는 “이제 그만 돌아가서 장례식을 치르자”는 삼촌의 말에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고 그 소리를 쓰보이가 들으면서 극적으로 모자 상봉이 이뤄졌다.

그렇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쓰보이가 지난달 24일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5일(현지시간)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를 처음 목격한, 그리고 국제적인 반전 평화 운동가로 제2의 삶을 시작한 그 날 이후로 쓰보이는 자신과 주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76년도 더 살았다”면서 그의 일생을 조명했다.

쓰보이 스나오가 2016년 4월 원자폭탄 피해 지역을 기록한 지도를 배경으로 히로시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쓰보이 스나오가 2016년 4월 원자폭탄 피해 지역을 기록한 지도를 배경으로 히로시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대가는 컸다. 안면에 선명한 화상 흉터는 누구나 그가 ‘히바큐샤(피폭자)’라는 걸 알게 했고, 방사능도 전염된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차별을 당했다.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피폭자와의 결혼을 반대하자 수면제를 먹고 동반 자살까지 시도한 것. 결국 결혼에 성공한 그는 아내 스즈코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두 딸을 낳고 일곱 손주를 뒀다.

결혼 반대에 동반 자살 시도 

평생 후유증에도 시달렸다. 방사선 노출로 인해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으면서 2주마다 수혈했고 몇 차례의 암 진단을 받으면서 입원만 11번 넘게 했다. 그중 세 번은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실제 그의 사인(死因)도 빈혈에 따른 부정맥이었다. 그는 지난 2015년 인터뷰에선 “내가 왜 살아남아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경험을) 떠올리기가 더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쓰보이 스나오가 2016년 5월 27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쓰보이 스나오가 2016년 5월 27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수학 교사이던 그는 매년 8월이 되면 학생들에게 생생한 핵무기의 참상을 알렸다. 중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후로는 본격적인 반전 운동에 나섰다.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히단쿄) 대표위원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활동했고, 2016년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만났다. 젊은 시절 원폭을 투하한 미국에 대해 “두고 보자”는 증오심을 키웠다던 그는 당시 만남을 두고 “감정만큼은 (말하지 않아도 잘 통해서) 통역이 필요 없었다”고 했다.

쓰보이는 평생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겪었던 끔찍한 이야기를 전하고 전 세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가 평생 꿈꿔온 ‘핵무기 없는 세상’은 이뤄질 수 있을까. 사실 쓰보이 역시 실현할 수 없는 꿈이라는 지적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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