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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독재 예고한 니카라과 ‘답정너’ 대선…바이든도 "엉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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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7일(현지시간)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이 TV 연설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이 TV 연설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답이 정해져 있는 대선’, ‘팬터마임 대선.’ 7일(현지시간) 말 많고 탈 많은 중남미 국가 니카라과의 대선 투표가 막을 내리면서 다니엘 오르테가(75) 현 대통령의 4번째 연임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투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엉터리 선거”라며 오르테가 정권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AFP 통신과 현지 언론 라 프렌사 등에 따르면 이날 아침 일찍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1만 3459곳의 투표소에서 대통령,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이뤄졌다. 수도 마나과 등에 설치된 투표소는 역대급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얼마 후 오르테가 측이 승합차와 밴, 휠체어까지 동원해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투표소로 실어날랐다고 라 프렌사는 보도했다.

낮은 투표율을 방어하기 위해 공립학교 교사ㆍ군인 등 공무원들이 투표를 강제 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두 명의 초등학교 교사는 “교장의 지시를 받고 투표를 인증한 사진을 보내야 했다”며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에서 반미·좌파 성향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정당으로 출마한 오르테가 대통령은 2007년 이후 4번째 연임, 역대 5선대통령을 노리고 있다. 부통령으로 출마한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70)와 함께 ‘부부 독재’가 현실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 성명을 통해 “이번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엉터리 선거(pantomime election)’”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력 주자 차모로 가택연금, “후보는 오르테가 뿐”

지난 5월 31일(현지시간) 니카라과의 야권 대선 주자였던 크리스티아나 차모로(67)가 수도 마나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월 31일(현지시간) 니카라과의 야권 대선 주자였던 크리스티아나 차모로(67)가 수도 마나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르테가는 지난 6월부터 유력 야당 대선 후보 7명을 무더기로 투옥ㆍ감금하는 등 야당 인사 150여명을 탄압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굵직한 후보자들이 모조리 잡혀가는 바람에 “유일한 후보자는 오르테가 뿐”이란 말도 나왔다. 실제 선거 당일 오르테가를 제외한 후보들은 무명에 가까운 군소 후보들이었다고 한다.

오르테가를 위협했던 강력한 야권 주자는 비올레타 차모로 전 대통령의 딸 크리스티아나 차모로(67)였다. 언론인 출신 무소속인 그는 지난 6월부터 반역ㆍ자금세탁 혐의 등으로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 오르테가는 앞서 1984년 대통령으로 처음 당선됐다가 1990년 니카라과의 첫 여성 대통령인 비올레타 차모로에게 패하면서 실각했다. 이후 2007년 재집권했다. 오르테가 입장에선 자신을 밀어냈던 차모로 대통령의 딸이자 정부 비판 활동을 해온 크리스티아나 역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앞서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6월 1일 니카라과와 국경을 맞댄 코스타리카를 방문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언급한 다음 날, 오르테가 정권은 미국 보란듯 유력 야당 주자인 차모로를 가택연금시켜버렸다.

또다른 야당 주자인 청백국민통합당(UNAB) 대표 펠릭스 마라디아가 역시 2018년 4월 오르테가 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이끈 혐의로 구속됐다. 마찬가지로 2018년 정부 비판 시위를 주도했던 언론인 미구엘 모라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투옥됐다. 지난 8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던 ‘자유를 위한 시민당’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을 해산해버렸고, 당 대표가 코스타리카로 망명한 상태다.

7일(현지시간) 니카라과 마나과의 투표소에서 한 여성이 투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니카라과 마나과의 투표소에서 한 여성이 투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르테가 정권은 법률 개정·수사권 남용을 통해 정부 비판 의견을 범죄화 하는 식으로 야당을 무력화하고 있다. 40년 만에 니카라과를 독재 시절로 후퇴시키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 달 중순 실시된 CIDㆍ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는 “오르테가의 연임에 정당성이 없고, 국내·외로 인정받지 못 할 것”이라고 했다. 단 9%만이 집권 여당 FSLN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든 정부, 니카라과 제재 카드 만지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니콰라과의 선거는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니콰라과의 선거는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남미에 민주주의 진영을 확장하려 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구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행정부가 반민주주의적 움직임을 차단하는 데 실패했고, 절망한 니카라과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동하는 사태를 막지 못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결과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미국의 추가 제재 수위가 관건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는 앞서 오르테가 대통령의 딸 등 측근과 관리들에 대해 미국 여행 금지, 자금 동결 등의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더해 대선일 이후 니카라과의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추방을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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