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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문도 여는 노래'는 어떤 소리일까?…뮤지컬 '하데스 타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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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역 배우가 높은 음으로 천상의 소리를 표현하는 뮤지컬 '하데스 타운'. [사진 클립서비스]

오르페우스역 배우가 높은 음으로 천상의 소리를 표현하는 뮤지컬 '하데스 타운'. [사진 클립서비스]

그가 노래를 하면 강물이 따라 부르며 흐르다 강둑을 터뜨리고, 나무가 따라부르다 열매를 맺는다. 그의 음악은 겨울만 남은 세상에 봄을 가져다준다.

오르페우스 뮤지컬 '하데스 타운' 내년 2월까지 공연

현재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하데스 타운’에서 주인공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신비하다. 그가 만들어 부르는 노래는 사람은 물론 자연까지 변화시킨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뛰어난 음악가인 오르페우스가 세상을 떠난 아내 에우리디케를 못잊어 지하 세계로 찾아가고, 구해 나오는 과정에서 아내가 뒤돌아 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며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은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기 이전인 9월 시작해 내년 2월까지 공연한다.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고 토니상 최우수작품상 등 8개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의 첫 한국 공연이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수백년동안 수없이 변주됐다. 오페라, 관현악곡, 합창 음악, 발레, 오페레타에 뮤지컬까지 나왔다. 민은기 서울대 작곡과 교수는 한 논문에서 “1599~1699년 오르페우스 신화를 주제로한 오페라 중 출처가 정확한 것만 해도 20여편”이라고 집계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오페라 ‘에우리디체’(야코포 페리 작곡, 1600년)에서 시작해 미국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1991년 오페라 ‘오르페’까지 오르페우스가 등장한다. 신화의 원문은 '오르페우스'이고, 작품의 언어에 따라 '오르페오' '오르페' 등으로 변형됐다.

‘하데스 타운’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최신 버전이다. 오르페우스 신화의 어떤 점이 예술가들을 매혹시켰을까. 또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시대를 거치며 어떻게 표현됐을까.

'하데스 타운' 한국 공연의 한정림 음악감독. [사진 클립서비스]

'하데스 타운' 한국 공연의 한정림 음악감독. [사진 클립서비스]

‘하데스 타운’ 한국 공연의 음악감독인 한정림은 “음악가의 신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매혹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무대 위에 올라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밴드를 지휘한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무대에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 음악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작품의 메시지 때문이다.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음(音)이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음악가들에게 오르페우스 신화는 보석과도 같다”고 말했다.

600년 전의 오페라 작곡가들도 음악의 위력이라는 주제에 매력을 느꼈다. 정경영 한양대 작곡과 교수는 “오페라의 기원이 그리스 비극에 대한 연구에 바탕한다. 그리스 비극의 힘이 노래에서 왔다는 논리가 오페라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음악의 힘을 주제로 한 오르페우스 신화가 필연적으로 사용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강물과 나무, 지옥의 신까지 감동시키는 음악을 무대에서 구현하는 일이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을 지키는 신도 노래로 설득해야 한다. 특히 ‘하데스 타운’에서는 그의 노래가 온 세상에 봄을 가져온다. 원작 작곡가인 아나이스 미첼은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높은 음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며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한국 공연에는 테너 중에서도 하이 테너가 가능한 조형균ㆍ박강현ㆍ시우민이 캐스팅됐다.

한정림 감독은 “진성으로 가능한 음높이도 가성으로 부르도록 주문했다”고 말했다. “천상의 소리를 상상했다. 특히 한국어 자음의 특성상 영어보다 거칠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더 가볍게, 힘을 빼고 불러야 한다.” 그는 “하지만 아름답게 들리도록 애써서 부르기보다는 ‘내가 부를테니 들어라’는 느낌으로 한발 떨어져 노래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천상의 음악을 실제로 만들기는 작곡가들에게 도전이었다. 오르페우스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인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오페라 ‘오르페오’(1607년)에서 화려한 방식을 사용했다. 지하 세계의 뱃사공를 설득하는 3막에서 오르페오는 ‘위대한 정령이여’라는 어려운 노래를 부른다. 특히 전체 6절 중 4절까지는 성악가의 거의 모든 기교를 동원해야할만큼 까다롭다. 음악학자 신혜승은 “장식음을 통한 황홀의 순간, 같은 음으로 만들어내는 영혼의 떨림 등으로 지옥의 신을 감화시킨다”고 표현했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크리스토프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년)의 정직하고 직설적인 노래, 자크 오펜바흐 ‘지옥의 오르페우스’(1858년)의 사회 풍자적인 음악이 대표적이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예술가들의 소재가 된다. 오펜바흐는 오르페우스 부부를 위선적으로 그리면서 나폴레옹 시대를 비꼬았다. ‘하데스 타운’은 지하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노동착취가 이뤄진다는 내용을 넣으며 현대 사회를 묘하게 비튼다. 정경영 교수는 “오르페우스가 아내 구출에 결국 실패한다는 점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상징하기도 한다”며 “여러 해석이 가능한 원형인만큼 현대적 변주가 계속되리라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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