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 벗으면 외로운 청년…84년 가을의 전설 최동원 최초 다큐

중앙일보

입력 2021.11.08 12:34

업데이트 2021.11.08 15:14

야구선수 고(故‘) 최동원 추모 다큐 1984 최동원’에서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선수의 84년 당시 모습이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야구선수 고(故‘) 최동원 추모 다큐 1984 최동원’에서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선수의 84년 당시 모습이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로 꼽히는 1984년 가을, 롯데 자이언츠 ‘무쇠팔’ 최동원(1958~2011)은 기적 같은 우승을 이끌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열흘간 한국 시리즈 7차전 중 무려 5경기 등판해 4승 1패를 거뒀다.
“전 게임을 다 나가더라도 마,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이기고 싶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최동원이 한 말이다. 그날의 투혼을 담은 다큐멘터리 ‘1984 최동원’(감독 조은성)이 10주기를 맞아 생전 등번호였던 11일 개봉한다.

10주기 추모 다큐 ‘1984 최동원’ 11일 개봉 #조은성 감독 “한국 프로야구 40년의 영웅 #故 최동원 가장 빛난 84년 극적 승부 담았죠”

"각본 없는 드라마" "만화에 나올" 84년 최동원

야구 선수 최동원에 관한 최초의 극영화 다큐다. “만화에서 나올 장면”(이만수 삼성 포수, 이하 1984년 기준)이고 “각본 없는 드라마”(김용철 롯데 타자)다. “제1 선발 투수로서 대한민국에서 최동원만큼 확실한 투수가 없었죠.”(임호균 롯데 투수) 최동원과 맞대결한 삼성과 롯데 동료 선수들, 강병철 감독, 야구해설위원, 부산 사직구장 최동원 동상을 매일같이 닦는 어머니 김정자 여사 등이 다큐에 직접 나와 생생한 기억을 되살렸다. 롯데 야구팬으로 소문난 배우 조진웅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지난 3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1984 최동원' VIP 시사회에 박찬호 선수(오른쪽)가 응원차 깜짝 등장했다. 조은성 감독과 최동원 선수의 등 번호 11번을 의미하는 포즈를 취했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지난 3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1984 최동원' VIP 시사회에 박찬호 선수(오른쪽)가 응원차 깜짝 등장했다. 조은성 감독과 최동원 선수의 등 번호 11번을 의미하는 포즈를 취했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연출을 맡은 조은성(49) 감독을 지난 4일 서울 종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럭비 다큐 ‘60만번의 트라이’(2014), 노무현 전 대통령 다큐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등을 제작했고,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그린 다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2017)로 감독 데뷔했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를 했다”는 그는 “베이스볼 키즈이자 다큐 감독으로서 최동원 선배님을 추모하고 싶었다. 다큐의 밀도가 중요했다. 1984년 한국 시리즈 열흘간의 이야기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KBS·MBC에 없던 경기영상 창고서 극적 발견

 연출을 맡은 조은성 감독은 “야구가 재밌는 게 대부분의 구기종목은 공이 들어가야 점수가 나는데 야구는 사람이 ‘홈(Home)’, 집에 들어가야 점수가 난다”면서 “인간적이다. 단체 종목이면서도 개인이 출전한 경기의 승패 기록이 낱낱이 남는 경기가 야구“라고 말했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연출을 맡은 조은성 감독은 “야구가 재밌는 게 대부분의 구기종목은 공이 들어가야 점수가 나는데 야구는 사람이 ‘홈(Home)’, 집에 들어가야 점수가 난다”면서 “인간적이다. 단체 종목이면서도 개인이 출전한 경기의 승패 기록이 낱낱이 남는 경기가 야구“라고 말했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다큐엔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최초 완봉승을 거둔 대구 시민야구장 1차전(9월 30일)부터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삼성에 6:4로 우승을 거둔 7차전(10월 9일)까지 이야기가 담겼다. 경기 영상을 찾은 과정도 극적이다. “생전 경기를 다 모아보려 했는데 KBS도, MBC도 없더군요. 당시는 경기를 라이브로 송출하고 녹화를 한부 떠놓는데 방송 테이프가 비싸서 여러 번 재녹화해서 썼기 때문이죠.”
4년 전 보물상자 같은 박스를 발견하며 본격적으로 제작에 돌입했다. 최동원 선수 아버지가 방송사 중계를 녹화해둔 비디오테이프를 최 선수 부인이 창고 정리 중에 발견한 것이다. “디지털 복원을 해보니 1982년 서울 세계선수권대회부터 한국 시리즈 4개 정도가 담겨있었어요. 최동원 선수가 방송 쇼 프로 출연한 것까지요.”

최동원 우승 소감 "자고 싶어요"

우승까지 몸을 불사른 최동원이 리포터에게 “자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 당시 인터뷰 음성도 다큐 속에 빼곡히 실렸다. 미공개 영상도 담았다. 1985년 최동원이 임호균 선수 아들 돌잔치에서 ‘한오백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 장면이다. 조 감독이 KBS 스포츠 다큐 ‘인천 야구의 추억’(2012)을 만들 때 가까워진 임 선수가 당시 찍어둔 비디오를 제공했다.

 조은성 감독은 “주변 증언에 의하면 경기장에선 투혼의 선수였지만 운동복을 벗고 나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청년이었다”고 했다. 임호균 선수는 "유니폼을 벗고 난 이후에 최동원이란 선수는 상당히 외로운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조은성 감독은 “주변 증언에 의하면 경기장에선 투혼의 선수였지만 운동복을 벗고 나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청년이었다”고 했다. 임호균 선수는 "유니폼을 벗고 난 이후에 최동원이란 선수는 상당히 외로운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최동원 선배에 대한 다큐라고 하면 거절하는 분이 없어서 지금껏 만든 다큐 중 이번이 섭외가 가장 쉬웠다”고 조 감독은 말했다.
특히 최동원과 학창시절 친구이자 1984년 맞수였던 삼성 라이온즈 투수 김시진은 국가대표팀 예비 엔트리 시절 함께 동대문 야구장에서 훈련하던 때를 추억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등번호 1번에서 11번으로…야구 함께 하는 것

“주변 증언에 의하면 경기장에선 투혼의 선수였지만 운동복을 벗고 나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청년”(조은성)이었던 최동원의 뒷모습도 담겼다. 조 감독은 “영화에는 안 나오는데 최동원 선수 등 번호가 11번인데, 어릴 적엔 1번이었다. 에이스여서. 점점 덩치 커지는데 유니폼의 1번을 보니까 외로워 보였다더라.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동료들과 서로 기대면서 야구 하자’는 의미로 11번을 했다”고 전했다. 그의 등번호는 롯데 자이언츠 최초로 영구 결번돼 사직구장에 새겨졌다.

다큐에는 어머니 김정자(86)씨가 사직구장에 있는 아들 최동원 선수의 동상을 매일같이 나가 닦는 모습도 담겼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다큐에는 어머니 김정자(86)씨가 사직구장에 있는 아들 최동원 선수의 동상을 매일같이 나가 닦는 모습도 담겼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조 감독은 최동원을 “한국 프로야구 40년의 영웅, 약자를 먼저 생각한 최초의 스포츠 스타였다”고 꼽았다. “최동원 선수가 1988년 선수협의회를 만들려다 삼성에 김시진과 맞트레이드됐죠. 야구판의 충격이었어요. 왜 연봉 많은 스타가 노조를 만들었을까. 행보를 보면 2군 선수들의 열악한 현실을 돕기 위해서였죠.”

조 감독은 서울 세계선수권 대회 때 최동원을 처음 보고 “안경 쓴 야구선수가, 덩치가 훨씬 큰 서양인들을 상대로 빠른 공을 던져 삼진을 잡는 실력에 반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본 최동원은 그가 KBS 스포츠 다큐를 찍던 2011년 최동원이 모교 경남고와 군산상고 간 레전드 매치에 참석한 모습이다. 대장암 재발을 감춘 채였다. “비쩍 말랐는데 복수가 차서 배만 나와 있었어요. 두 달 후에 돌아가셨죠. 가족들은 다 말렸는데 기어코 마지막으로 모교 유니폼 한번 입어보고 싶다고 하셨대요. 동생이 야구심판인데 최동원 선수가 야구공을 쥐고 돌아가셨다고 해서 안타까웠어요. 살아계셨으면 한국 야구계에 쓴소리도 하셨을 텐데….”

한국 스포츠 아카이브 열악, 박찬호 "발자취 보전해야"

청년 시절부터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투수 김시진 선수는 다큐에서 최동원 선수를 추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청년 시절부터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투수 김시진 선수는 다큐에서 최동원 선수를 추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조 감독은 ‘1984 최동원’을 통해 확보한 경기 영상들을 토대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멤버들의 다큐도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마지막 국가대표’란 제목으로 2~3년 내 완성할 계획이다. “당시 출전 멤버 중 최동원 선수를 포함해 벌써 일곱 분이 돌아가셨다”면서다.

조 감독은 이번 다큐로 아카이브 자료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한국은 스포츠 아카이브가 열악해요. 차범근 선수 다큐도 만들 법한데 국내엔 아카이브가 없어요. 이번 다큐를 만들며 아카이브 장비들을 개인적으로 모으기 시작했죠. 다큐 완성본을 제외하고 촬영해놓은 영상들은 무료로 쓸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누구나 기증하고 쓸 수 있게 하면 또 다른 다큐의 원천 소스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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