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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탄소중립, 목표치보다 실행력과 신뢰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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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기후위기발 복합위기의 생존전략으로 탄소중립(넷 제로)이 급부상했다. 2021년 6월 기준 137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한국은 탄소중립위원회가 작성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2018년 대비)를 국무회의에서 그대로 확정했다. 곧바로 산업계는 너무 강하다고 환경단체는 너무 약하다고 반발했다.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탄소중립은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며 “2030년 NDC 40%는 한국의 강력한 의지와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데 토를 달기 어렵다. 당초 글래스고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에 COP28 유치 의향을 밝힌 바 있었으니, 국제사회의 선도적 역할도 의식했을 터이다.

기후 복합위기로 탄소중립 부상
탈탄소 경로 설계가 경쟁력 변수
국가 에너지 효율부터 높이고
전문가·산업계 의견 수렴해야

기후위기로 인해 에너지·수자원·식량은 전략자원이 된 지 오래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농산물·원자재 가격급등과 공급사슬 붕괴로 금융위기가 유발되는 ‘그린스완’을 경고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2019년)은 46%, 곡물자급률은 21%(사료용 곡물자급률 1%)로 OECD 중 최하위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넷 제로의 ‘파괴적 혁신’ 경로 설계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가 됐다.

온실가스 감축은 탄소기반 문명 속속들이 충격을 주고,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를 요구한다. 따라서 국제적 원칙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 국제협약의 감축 배분원칙은 1994년 발효된 기후변화협약 3조 1항에 명시돼 있다. 첫째 형평성(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둘째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산업화 이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셋째 국가별 역량(1인당 국민소득 등)이다. 미국의 1인당 배출량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160배다.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1751~2017년)도 미국이 전체의 25%, EU가 22%다.

협약상의 배분원칙과는 별개로 선진국은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통상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공급사슬의 협력사에 탄소중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금융계는 넷 제로 기준으로 투자하며 투자회수도 불사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COP26 세계정상회의에는 연간 배출량 1위의 중국과 4위의 러시아가 불참했다. 그리고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넷 제로의 목표연도는 2050년에서 21세기 중반 무렵으로 바뀌었다.

기후위기는 생존적 위협이며 선진국의 대응은 강력하다. 이제 막 선진국 반열에 든 한국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각별히 탄탄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불리하고 관련 기술경쟁력과 재정에서 선도국 대비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존자원 없이 제조업 비중이 GDP 대비 26%로 높고, 철강·석유화학이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76%를 차지한다. 이들 악조건을 극복해야 하므로  감축경로가 더 전략적이고 정교해야 한다.

IPCC(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에너지 비용절감 등 직접적 이익이 발생하는 정책수단부터 추진하고, 다음 단계로 비용이 많이 드는 정책으로 넘어가라고 조언한다. 몇 가지 짚어보면, 한국은 연간 총배출량(10위권)보다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국가 순위가 더 높다. 수출과 수입을 반영한 소비기반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순위와 에너지강도(GDP 단위당 에너지 소비량) 순위는 그보다 더 높다. 탄소강도(에너지 생산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역시 국가 순위가 높다. 그렇다면 주요 지수상의 취약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마련해 국가 에너지 효율부터 높여야 한다.

기후행동을 미룰 경우 넷 제로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존 기간산업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책 추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특정산업에 대한 좌초 수준의 충격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가 외면할수는 없다. 한국의 6개 핵심산업(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시멘트·철강·정유)은 탄소중립에 199조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비용효과적 접근으로 정책 실현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럼에도 에너지 전환 경로에서 유일하게 기술경쟁력을 갖춘 탈탄소의 원자력을 제외함으로써 실현가능성 논란을 빚고 정책 합리성을 훼손한 측면이 있다. 현존하는 기술을 놔두고 언제 도입될지 모르는 기술에 의존하는 정책은 신뢰를 받기 어렵다. 핵심분야인 수소환원제철 기술, 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 등은 아직 미성숙이다. 무엇보다도 선진국이 핵심기술을 선점하고 있는 터에 후발국으로서 기술과 재정 격차를 줄이고 경쟁력을 확보할 길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번에 발표한 넷 제로 시나리오는 ‘공감·참여·실천을 통한 탄소중립사회로의 대전환’을 기치로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한 결론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장의 반응은 다르다. 일례로 2034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의 6%에서 20%로 높인다는 정책에 대해 ‘실패할 것’이라는 응답이 112개 발전사업자 중 64%였다(대한상의 2021년). 소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성과는 크다. 전문가그룹의 다양한 견해와 판단을 조율해서 보완하고, 감축의 실행주체인 산업계와 쌍방통행해서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과 정책 신뢰를 높여야 할 것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