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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11시 유엔 참전용사 향한 1분의 묵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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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11월 11일 11시 부산 유엔기념공원. 해마다 이날엔 6·25전쟁의 포연 속에서 희생된 유엔 전몰장병들을 추모하는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가 정부 주관으로 열린다. 캐나다 참전용사의 제안으로 2007년 시작된 이 행사는 매년 같은 시각, 전 세계 유엔 참전국이 ‘부산을 향해(Turn Toward Busan)’ 추모의 마음을 담아 1분간 묵념하는 국제 추모 행사다.

부산시 남구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 묘지다. 현재 미국·호주·캐나다·터키·영국 등 11개국 용사 2311명이 안장돼 있다.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1월 유엔군 사령부가 전사자 유해 안장을 위해 조성했고, 대한민국 국회는 이곳의 토지를 유엔에 영구 기증했다.

11일은 유엔 참전용사 추모의 날
그분들 덕에 자유·평화·번영 누려

유엔기념공원이 전쟁 당시의 ‘묘지’ 기능으로 부활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6·25전쟁에서 유엔군 임시 묘지로 역할을 하다 전쟁이 끝난 후 더 이상의 안장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묘지보다 추모 공간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다. 그러다 국가보훈처에서 추진한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계기로 묘지 기능을 회복했다. 바로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던 노병들의 요청과 유언 때문이다. “젊은 시절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낸 땅, 그리고 전우들의 곁에서 잠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유엔 공동관리위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2015년 5월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베르나르가 처음 사후 안장된 후 지금까지 13명이 안장됐다. 올해 추모 행사는 영국 국적의 참전용사 3명의 유해가 국내에서 발굴된 뒤 안장되는 첫 사례여서 의미가 크다. 다만 수년간의 노력에도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워 무명용사로 안장되는 점이 안타깝다.

유엔기념공원은 묘지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단 한 곳뿐인 유엔 묘지이자 전쟁 영웅들의 사후 안장이 이뤄지면서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연대와 협력,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 잠든 영웅들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켰고, 전쟁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 뒤 다시 전우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평화 수호자가 되는 ‘제2의 참전’을 결정했다. 그런 점에서 유엔기념공원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하는 완충지 역할도 한다.

아직 유엔기념공원을 모르는 국민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71년 전 일어난 전쟁에서 국군과 함께 22개 나라 195만 유엔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날의 자유와 평화·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국가보훈처는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행사는 물론,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에게 보답하고 참전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유엔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의 재방한과 현지 감사 행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 보내기 등 다양한 국제 보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전쟁의 아픔을 잊지 않고 미래 평화로 이어가기 위해 국내·외 참전용사 후손들이 참여하는 평화캠프와 참전국 후손 장학사업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국제 보훈은 전 세계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공외교 자산이다. 이는 우리나라와 혈맹으로 맺어진 22개 유엔 참전국과의 소통과 협력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던 유엔 참전국과 참전용사들. 우리 국민이 11월 11일 11시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고개를 숙여 1분간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실천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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