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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한쪽 풀면 다른 쪽이 꼬인다, 경제정책 ‘트릴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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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의 거시 경제정책이 ‘트릴레마’(Trilemma·삼각 딜레마)에 빠졌다. ‘경기부양-물가-금리’의 세 가지 변수가 서로 얽혀 있어서다. 한쪽을 풀려면 다른 한쪽이 꼬이다 보니 정책의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설정한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4%대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분기별 GDP 성장률이 올해 1분기 1.7%를 기록한 이후 2분기 0.8%, 3분기 0.3%까지 내려가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과 공급망 병목 현상 등의 영향으로 민간소비(-0.3%)와 실비투자(-2.3%) 등이 뒷걸음친 영향이다.

목표를 맞추기 위해선 남은 4분기에 뚜렷한 회복을 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과 코로나 상생소비지원금, 소비진작쿠폰 등을 통해 내수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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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내수부양책이 가뜩이나 커진 물가상승 압력을 높인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9년 7개월 만에 3% 넘게 올랐다. 원자재값이 계속 오르고 위드 코로나로 소비가 급증하면, 정부의 관리 목표치인 ‘연간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오는 12일부터 유류세를 인하한 가격에 휘발유를 판매하는 등 각종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을 올리려고 쏟아내는 내수 부양책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2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게 정부의 ‘이상’이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다.

트릴레마 중 나머지 하나인 금리 고민은 한국은행이 떠안고 있다. 이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저(低)물가 이후 찾아온 고(高)물가의 역습은 중산층과 서민층의 삶을 팍팍하게 한다.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이 자칫 내수 회복 동력을 훼손할 수도 있다. 이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리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을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하지만 금리 인상과 같은 긴축모드는 살아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대출 금리도 덩달아 뛰면서 국민의 이자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5%대 중반까지 상승했고, 곧 6%까지 오르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약 12조원 증가할 거라고 한은은 보고 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민간부채 국면별 금리 인상의 거시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 “아직 우리 경제가 견고한 회복 단계에 접어들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금리 인상이 경기에 미칠 부작용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코로나19 위기에서 경제 주체별로 불균등한 충격을 받았는데, 금리 인상이 취약계층의 채무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서로 재정·통화 정책의 조화를 맞춰 나가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 조합)’를 더 정교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경기 회복’과 ‘물가 안정’ 간의 트레이드 오프(상충 효과)가 심해졌다”며 “현재로썬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백을 보완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2%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의 성장률 추이는 한국의 실제 능력을 많이 초과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경기 과열에 따른 물가 압력에 더 신경을 쓸 때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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