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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소리에 하늘엔 온통 새까만 구름이 가득했다”

중앙일보

입력

"'펑' 하고 엄청난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온통 새까만 구름이 가득하더라고. 처음에는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원자폭탄이라고…."

나가사키 원폭 피폭자 권순금(95)씨가 지난 5일 '한국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을 하루 앞두고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198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가사키 원폭 피폭자 권순금(95)씨가 지난 5일 '한국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을 하루 앞두고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198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순금(95)씨는 인터뷰 중 그때의 까맣던 하늘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 말했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長崎)시에 원폭이 투하됐을 당시의 충격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권순금씨 #그때의 충격,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열려

당시 원폭 투하 지점에서 1.8㎞ 떨어진 집에 있다 피폭된 권씨는 현재 생존해있는 거의 유일한 나가사키 원폭 한국인 피해자다. 그는 6일 열린 '한국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을 하루 앞두고 나가사키 자택에서 한국 언론과 만났다.

당시 500m 상공에서 폭발한 나가사키 원폭으로 약 7만4000명이 사망했다. 이 중 수천명에서 1만명 가량이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출신 노동자 등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부터 현지 한인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기리는 위령비 설립이 논의됐지만, 장소와 비용 문제, 나가사키시와의 의견차 등으로 진전이 되지 않았다.

2013년 위령비 건립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나가사키시와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6일 오전 나가사키시 평화공원 내에 현지 동포들의 숙원사업이던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가 제막식을 갖고 모습을 드러냈다.

6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長崎)시 평화공원에 제막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연합뉴스]

6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長崎)시 평화공원에 제막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연합뉴스]

권씨의 증언에 따르면 원폭 투하 당시 나가사키시에는 약 7만명의 조선인이 있었고, 이 중 2만여명이 피폭해 이 중 1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도 많았다.

당시 생존한 피폭자들도 ‘언제 증상이 나올까’라는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고 권씨는 전했다. 권씨의 남편인 조연식 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나가사키 지방본부 단장도 1971년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아져 198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도 무릎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혹시 원폭 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926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건너온 권씨는 1963년부터 나가사키시에서 '아리랑정'이라는 고깃집을 운영해왔다. 그는 뒤늦게나마 한국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진 데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6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長崎)시 평화공원에서 열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에서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는 일본 고등학생 평화사절단. [연합뉴스]

6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長崎)시 평화공원에서 열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에서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는 일본 고등학생 평화사절단. [연합뉴스]

6일 열린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에는 강창일 주일본 한국대사와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무카이야마 무네코(向山宗子) 나가사키시 의회 공명당 대표 등 한·일 관계자들을 비롯해 일본 고등학생 평화사절단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높이 3m의 위령비 기단은 거북이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비석 뒤편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희생자들의 영령을 기리는 추도문이 새겨졌다. 위령비 아래쪽에는 당시 징용 피해자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적혔다. 나가사키시가 끝까지 반대한 '강제 징용'이라는 문구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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