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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락여성 토막낸 연쇄살인마…美감독 왜 유영철에 꽂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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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달 출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죄 다큐멘터리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연쇄살인마 유영철을 통해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 이면을 재조명했다. [사진 넷플릭스]

지난달 출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죄 다큐멘터리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연쇄살인마 유영철을 통해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 이면을 재조명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관한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출시했다. 지난달 22일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한 3부작 다큐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넷플릭스가 처음 한국 범죄를 소재로 제작한 다큐다. OTT 흥행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출시 첫 주 한국‧홍콩‧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대만‧태국‧베트남까지 아시아 8개국에서 많이 본 콘텐트 톱10에 들었다.
미국 다큐 전문 감독 겸 프로듀서 롭 식스미스가 총책임(쇼 러너)을 맡아 한국계 캐나다인 존 최 감독과 공동 연출한 다국적 프로젝트로, 지난해와 올해 총 4차례 한국 촬영을 진행했다. 넷플릭스가 제작 초기부터 참여했다.
제목의 ‘레인코트 킬러’는 유영철이 현장 검증 때 입은 노란 우비가 인상에 남아 제작진이 지은 별명이다. 2004년 20여명을 살해한 사실이 발각된 유영철을 “한국에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연쇄 살인마”로 주목했다.

토막사체 묵은김치에 버무린 유영철 

유영철이 자신의 집에 온 윤락여성이 욕실 문턱을 넘느냐 마느냐로 살인 여부를 결정하며 “하느님과 맞먹을 정도로 전지전능한 위치”(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과신하고, 토막 낸 사체를 묵은김치에 버무려 썩는 냄새를 감춘 채 택시 등으로 이동했던 끔찍한 범행 방식을 낱낱이 되짚었다.

또 1980년대 후반 급성장한 한국 사회에서 빈부 격차를 겪은 첫 세대인 1970년대생 살인마의 존재에 주목했다. IMF 외환위기를 넘어 선진국을 꿈꾼 2000년대 초 한국 사회 풍경과 심화한 계급 문제에서 이전에 없던 묻지마 연쇄살인이란 새로운 범죄 현상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갔다.
‘사이코패스’란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 유영철 체포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수사 시스템의 허점을 깨우쳐간 담당 형사들과 유영철을 직접 면담한 1세대 프로파일러 권일용, 피해자 유족, 변호사, 기자, 과학수사대 요원, 성노동 여성 등이 직접 인터뷰에 응해 그날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돌이켰다.

美감독 "범죄는 그 사회 들여다보는 창구" 

“범죄는 그 사회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죠.” 롭 식스미스(41) 감독을 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한국 영화‧드라마를 즐겨 봐왔다는 그는 “스릴러 장르는 한국이 최고다. 한국 스릴러의 강점을 다큐에 접목해 좀 더 큰 주제, 질문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롭 식스미스 감독. [사진 넷플릭스]

롭 식스미스 감독. [사진 넷플릭스]

한국 대중에게 자신을 소개하면.  

“싱가포르에서 제작사(비치 하우스 프로덕션 픽쳐스)를 운영하며 일본, 중국 북경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범죄 장르 외에도 모험‧서바이벌‧자연사 다큐도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최초 한국 범죄 소재 다큐다. 왜 유영철이었나.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지금 K콘텐트로 주목받는 문화강국이 되기까지 한국 사회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이 ‘핫한’ 국가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특히 유영철 사건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얽혀있는 계급‧빈부 격차 문제, 자본의 변화가 너무 빠를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 사회가 너무 급작적으로 발전했을 때 어떤 자잘한 문제들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보통 연쇄살인범이 범행 수법이나 피해자 유형을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유영철은 부유층 노부부에서 윤락여성으로 바뀐다. 계급 문제와 보호받지 못하는 윤락 여성이란 주제를 함께 다룰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한국에서 유영철 사건은 여러 TV 프로그램이 다뤘고 영화 ‘추격자’로도 만들어졌다. 기존 콘텐트와 차별화하면서도 사건을 잘 모르는 넷플릭스 해외 시청자도 고려해야 했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다. 양쪽을 100%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외 시청자 중엔 유영철이 어린 시절 어땠는지나 주변 친지 인터뷰는 왜 없냐는 의견도 있었다. 저희가 그런 내용을 넣지 않은 이유는 유영철의 개인사에 집중하면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그를 인간적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다. ‘추격자’는 잘 만든 스릴러지만 노부부 살해사건은 담겨 있지 않다. 저한테는 범죄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다큐에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한국사회에 자기 감정을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하는 범죄가 생겨났다” 고 설명한다. [사진 넷플릭스]

다큐에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한국사회에 자기 감정을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하는 범죄가 생겨났다” 고 설명한다. [사진 넷플릭스]

이런 한국 사회상을 외국인 감독이 3부작 통틀어 총 140분 남짓한 상영시간에 함축해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터. 식스미스 감독은 “사건 관계자들이 1인칭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중요했다”고 했다. “3인칭 내레이션은 편집하기 쉽지만, 저희 결정과 주장이 들어가게 되는데, 저희가 주장하거나 결론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다. “그래서 인터뷰 대상을 선정할 때 솎아내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했다.
식스미스 감독은 “경찰에 많이 집중했다. 경찰의 서사가 다큐의 뼈대였고 그들의 개인적인 여정을 따라가려 했다. 당시 너무나 새로운 사건이었고 충분한 수사기법이 없었다.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일하는 방식이 변화했고 이를 쫓는 방식으로 인터뷰이를 선정했다. 되도록 그때의 트라우마를 불러오지 않는 방식으로 인터뷰했다”고 했다.

"K콘텐트, 재밌으면서도 은근히 깨달음 줘"

넷플릭스에 따르면 이번 시즌1을 잇는 후속작 제작 여부는 미정이다. 식스미스 감독은 K콘텐트의 세계적 열풍 비결을 “재밌으면서도 은근히 깨달음을 준다”고 짚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나라, 자본주의라는 나라에 산다’고 했죠. 한국 콘텐트는 보편적인 콘셉트를 잘 끌어냅니다. ‘사랑의 불시착’은 오락용 드라마지만 남북 분단을 담고 있어 재밌으면서도 정보성도 있죠. 좀 더 큰 주제에 접근해 같이 생각해보게 하는 점이 훌륭합니다. 미국은 정치적 담론을 너무 대놓고 펼쳐서 오락거리를 원하는 관객이 잘 보지 않는데 한국은 교묘하게 잘 섞여 있어 많은 관객에게 어필하죠. 영화 ‘택시운전사’는 독일인 기자와 운전사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배경에 근현대사의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도 굉장히 재밌는 스릴러인데, 큰 담론이 포함돼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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