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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에 화장품 파는 女…5년전 사우디 상상못할 일 벌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이 수도 리야드에 있는 쇼핑몰의 화장품 가게에서 향수를 시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이 수도 리야드에 있는 쇼핑몰의 화장품 가게에서 향수를 시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사는 르함 알-아흐마드(24·여)는 매일 아침 시내 쇼핑몰로 출근한다. 그는 화장품 대면 판매 업무를 맡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사우디에서는 남성과의 접촉이 잦은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따르는 보수적인 가부장제 사회 문화 때문이다.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로 여성의 사회 생활은 금기였다. 아흐마드는 "(남성 후견인 제도에 따라) 무슨 일이든 아버지에게 부탁해야 해 자괴감을 느꼈었다"며 "내게 취업이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남성중심 보수 사회인 사우디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사우디 여성의 사회 진출은 5년 전보다 두 배 가량 뛰면서 전체 노동력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 힐은 "서구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낮은 비율이지만, 여성을 가정에만 머물게 했던 나라에서는 큰 발전"이라고 전했다. 여성의 운전조차 금지했던 곳이 불과 3년 만에 사회 진출을 적극 권장하는 국가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다.

사우디 여성이 운전대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 여성이 운전대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 여성의 사회진출 분야도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교사나 의료직 등 공공 부분에서만 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소매업과 서비스업 등 민간부분 대면 업무에서도 여성 고용이 가능케 됐다. 제니퍼 펙 경제학자는 "값싼 노동력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주어져 왔던 소매업과 접대업으로 다수의 여성이 진출하고 있다"며 "법 개정으로 고객 대응 서비스직에서도 여성이 일하기가 쉬워졌다"고 말했다.

변화의 바람은 사우디 전역에서 불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사우디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중부 까심 지역이다. 까심은 사우디에서 인구 규모 7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곳 여성 실업률은 남성의 3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인·구직 게시판에 여성들이 적극 몰리고 있다.

한 사우디 여성이 살만 국왕과 그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그려진 배너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사우디 여성이 살만 국왕과 그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그려진 배너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사우디 비전 2030'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발표된 이 계획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부분의 경제 기여도를 높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여성들의 민간 부문 사회 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도 이 계획의 일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며 정치·사회·문화적 성차별을 막는 취지의 새로운 가족법도 도입했다. 지난달 사우디 왕실이 승인한 90여건의 인권 개혁안 가운데 30건이 여권 신장과 관련될 정도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왕세자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보여주기식 개혁’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자신의 왕위 계승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20~40대 청년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성별 임금 격차 등 여전히 사회 깊숙한 곳에 성차별이 남아있다는 점을 사례로 지목한다. 비영리단체(NGO) 알 나흐다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 평균 임금의 49%밖에 못 받는다. 사우디 여성 인권 전문가 할라 알-도사리는 "성차별적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여성의 노동시장에 대한 접근에 영향을 끼친다"며 "대부분 여성은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 여성이 남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우디 여성이 남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 내각이나 선임 자문 자리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그나마 국왕의 정책자문기관인 슈라 평의회에 여성 자문관이 있지만 전체(150명)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인권운동가들은 “공식적인 권력을 주지 않는 슈라 평의회에 여성을 앉힌 것은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성 평등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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