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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보면 넋을 잃는다, 56억 엘시티 앞바다 뜬 72세 해녀[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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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빌딩에 밀려나는 해녀들

“40년 동안 안 했는데도 물질이 바로 되더라.”

부산에서 해녀로 일하는 김경숙(72)씨가 한 말입니다. 그는 “몸은 힘들어도 바다에 가면 피곤한 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해녀가 된 덕인지 “바다에만 가면 속이 다 시원하다”는 겁니다.

김씨가 일하는 곳은 여느 해녀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는 부산의 고층빌딩이 운집한 수영구 남천항에서 물질을 합니다. 항구 바로 뒤편에는 부산 최고층인 101층 엘시티와 69층 W아파트 등이 즐비합니다.

50억원 넘는 엘시티 앞바다서 물질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김경숙 씨(72)가 수확한 해산물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김경숙 씨(72)가 수확한 해산물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김씨는 해녀일을 그만뒀다가 10년 전에 다시 물질을 시작합니다. 1969년 결혼을 하면서 제주에서 부산으로 와 30년간 운영해온 활어센터를 접은 겁니다. 그는 아들 셋을 낳은 뒤 60세가 되자 불현듯 ‘물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현재 부산에는 700여 명의 해녀가 31개 어촌계에 소속돼 활동 중입니다. 이들 중에서도 남천항 해녀는 외지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존재입니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을 낀 해안에서 물질을 하는 광경에 넋을 잃곤 한답니다.

남천항 주변의 엘시티와 W아파트는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고가 아파트로 꼽힙니다.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엘시티는 평당 아파트값이 1억원에 육박합니다. 전용면적 186㎡(약 56평)의 매매가가 50억원에 달하는 겁니다.

고층 아파트에 바다 매립…해녀수 급감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강순희 씨(81)가 남천항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 강순희 씨(81)가 남천항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인근 W아파트(전용면적 99㎡) 집값은 18억원으로 평당 6000만원에 이릅니다. “부산의 평균 아파트 가격보다 3배~5배 비싸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전언 입니다. 남천항 바로 뒤편에 있는 S아파트도 재건축 효과로 가격이 뛰면서 평당 5000만원을 호가합니다.

주변에 고가 아파트가 몰린 것은 해녀들에겐 악재로 작용합니다. S아파트가 개발된 1976년부터 수차례 매립을 거치면서 해녀 수가 급감한 겁니다. 1970년대 200여명이던 남천어촌계 소속 해녀는 올해 5명까지 줄었답니다.

이런 부산 해녀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이들도 있답니다. 유형숙 동의대 호텔경영학 교수가 지난해부터 해녀 5명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선 게 대표적입니다. 지난 1월에는 “도심에 존재하는 남천 해녀의 희소성과 문화적 가치가 크다”며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부산 해녀의 어제와 오늘이 내일의 문화유산이 된다는 의미가 담긴 『어제오늘내일』이라는 책입니다.

한국·일본만 존재…2016년 유네스코 등재  

지난달 27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서북쪽 해안에서 해녀가 소라를 채취하고 있다. 제주 해녀는 2016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서북쪽 해안에서 해녀가 소라를 채취하고 있다. 제주 해녀는 2016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연합뉴스

유 교수에 따르면 해녀는 세계적으로도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답니다. 제주 해녀는 2016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유 교수는 그해 ‘동의대 한일 해녀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제주뿐 아니라 부산에도 해녀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답니다. 흔히들 한국에는 제주에만 해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 교수는 “한국 해녀와 일본 해녀와는 차이가 크다”고 말합니다. 일본 해녀는 하루 1~2시간만 작업하지만 한국은 하루 3~4시간씩 물질을 한다는 겁니다. 그는 “한국 해녀는 매일 억척스럽게 물질해도 한 달 수입은 300만원 남짓”이라고 말합니다.

70%가 70세 이상…“수입 떠나 물질에 만족”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들이 서로 도와가며 해녀복을 입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 남천어촌계 해녀들이 서로 도와가며 해녀복을 입고 있다. 사진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

부산의 해녀 10명 중 7명은 70세 이상 고령자라고 합니다. 해녀 문화의 계승을 위해서라도 후계자 양성이 시급해진 겁니다. 고된 노동에도 매년 수확량이 줄고 판로가 좁아지는 것도 악재입니다.

날로 악화하는 환경에도 해녀들은 의연하기만 합니다. 해녀 김경숙씨가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한 말만 봐도 이른바 ‘포스’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해녀를 천하게 봤는데 요즘에는 그리 안 본다. 수입을 떠나 물질하는 것에 만족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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