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식물인간 돌봄 책임 누구? 이혼한 아내일까 어머니일까

중앙일보

입력 2021.11.06 14:00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28)

A(남)와 B(여)는 2008년 혼인신고를 한 부부인데, 슬하에 자녀가 없다. A는 2013년 교통사고로 두개골 골절, 뇌출혈 등의 상해를 입었고, 개두술과 혈종제거술을 받은 후 의식이 혼미하고 마비증세가 지속되는 이른바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A의 어머니인 C는 교통사고 후 A를 돌보면서 2017년까지 A의 병원비와 간병비로 합계 2억 원 가량을 지출했다. A가 가입해 두었던 보험금으로 8000만 원이 지급되자, C는 그 보험금을 수령해 A의 병원비로 사용했다. C는 2017년 며느리인 B를 상대로 A의 입원비, 치료비, 간병비, 약제비 등으로 지출한 돈 1억 2000만 원을 물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C는 이듬해인 2018년 A를 대리해 B를 상대로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청구를 하였고, B도 반소로 이혼 및 위자료 청구를 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 끝에 2020년 A와 B는 이혼하되, B가 A에게 재산분할로 8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었다. C는 아들인 A의 치료비 등을 위해 쓴 돈을 며느리인 B로부터 받을 수 있었을까?

식물인간이 되어 누군가로부터 부양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돌볼 의무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즉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와 부모의 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지, 두 의무에 우선순위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의 의무가 우선되는 것인지, 어느 한 쪽에서 부양을 한 경우 다른 쪽에 대해 그 비용을 달라고 할 수 있는지, 비용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범위까지 가능한지에 관한 문제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정하는 급여 등을 공적 부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적 부양은 친족 등 부양의무자의 사적 부양이 부족한 경우에 주어진다. [사진 pxhere]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정하는 급여 등을 공적 부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적 부양은 친족 등 부양의무자의 사적 부양이 부족한 경우에 주어진다. [사진 pxhere]

먼저 부부 사이에 인정되는 부양의무와 부모의 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가 본질적으로 다른 성질의 것인지에 대해 보자. ‘부양(扶養)’은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활을 돕고 돌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두 종류로 구분해 설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양해야 할 사람이 부양할 여력이 있는지를 불문하고, 부양을 받을 사람의 생활을 자신과 같은 정도의 수준으로 보장해야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1차적 부양의무, 생활유지적 부양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부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재산도 없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임을 전제로, 부양해야 할 사람이 부양하더라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인정되는 것이다(2차적 부양의무, “생활보장적 부양의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부양 의무자에게 당장 남아 있는 것이 밥 한 공기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부양을 받아야 할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것이 1차적 부양의무이고, 내가 평소 먹는 수준으로 충분히 먹고도 남은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2차적 부양의무이다. 보통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와 미성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1차적 부양의무에, 성년된 자녀와 부모 사이의 부양의무와 그 밖의 친족 사이의 부양의무는 2차적 부양의무에 해당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처럼 식물인간이 된 A에 대해, 아내인 B가 부담하는 부양의무와 어머니인 C가 부담하는 부양의무는 성질도 다르고 그 의무가 발생하는 조건도 다르다.

부부 사이 부양의무와 부모의 성년 자녀 사이 부양의무 간의 우선순위에 대해 사안을 재판한 1심과 2심 법원은 두 가지 부양의무가 성질상 다르다고 하더라도 일단 각각 그러한 부양의무를 부담할 조건이 충족된 이상 둘 사이에 부양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B가 A의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인 C보다 A를 우선적으로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들을 돌보지 않는 며느리 대신에 어머니인 C가 A를 부양하면서 비용을 지출했다 하더라도 B에게 구상금으로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르게 보았다.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와 부모의 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 사이에는 의무를 이행할 조건이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의무를 이행할 우선순위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차적 부양의무자(B)와 2차적 부양의무자(C)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 1차적 부양의무자가 우선해 부양의무를 지고, 2차적 부양의무자가 1차적 부양의무자 대신에 부양한 경우 그에 소요된 비용을 1차적 부양의무자에게 상환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B가 C에게 물어주어야 할 부양료의 범위에 대해 부부 사이에서 청구할 수 있는 부양료, 즉 A가 B에 대해 청구할 수 있는 부양료에 한정된다고 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는 과거의 부양료에 대해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어서, C가 B에게 부양료를 달라고 한 시점 이후부터의 부양료만 상환하면 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B가 A의 발병 초기에 잠시 A를 부양한 적이 있어 자신이 부양을 중단한 후에도 A가 여전히 부양이 필요한 상태에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A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제때 부양료 청구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을 고려해 청구 이전 과거에 지출한 부양료까지 모두 물어주라고 했다.

가족 사이의 부양 의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데도 부양의무를 인위적으로 나누고 순위를 매기는 것은 세상을 더 삭막하게 만들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 pxhere]

가족 사이의 부양 의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데도 부양의무를 인위적으로 나누고 순위를 매기는 것은 세상을 더 삭막하게 만들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 pxhere]

이러한 대법원 판단에 대해 가족들 사이의 부양의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데도 별다른 근거도 없이 친족 사이의 부양의무를 인위적으로 나누고 순위까지 매기는 것은 가뜩이나 각박한 세상을 더 삭막하게 만드는 것이어서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부양의무를 대법원의 판단처럼 둘로 나누더라도 어느 쪽에 해당하는 것인지 모호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치매나 노령, 질병으로 거동조차 힘든 경제력 없는 노부모에 대한 성년 자녀의 부양의무나 자녀 중 성년에 이르기는 하였지만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거나 질병·장애로 인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른바 미성숙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1차적 부양의무일까, 아니면 2차적 부양의무일까? 과연 이와 같은 노부모나 미성숙 자녀에 대한 부양이 부양의무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생활을 다 하고도 여유가 있을 때만 인정되는 의무로 보아도 될까?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일정한 조건으로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정하는 급여(이른바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공적(公的) 부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적 부양은 친족 등 부양의무자의 사적(私的) 부양이 불가능하거나 미흡한 경우에만 주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부양의무를 1차적 부양의무로 보면 노부모나 미성숙 자녀는 사적 부양의무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적 부양을 받지 못하게 된다. 2차적 부양의무로 보면 노부모의 자녀 등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사적 부양의무자가 없는 것으로 되어 공적 부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부양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노부모나 미성숙 자녀의 생활안정을 위해서라도 2차적 부양의무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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