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딸 70세 노인에 팔았다…1900만명 굶는 아프간의 매매혼

중앙일보

입력 2021.11.06 05:00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자택에서 대학생 하와(20·가운데)가 책을 읽고 있다. 하와는 브루하누딘 라바니대(현 카불 종합대) 3학년에 다니다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 집에만 머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자택에서 대학생 하와(20·가운데)가 책을 읽고 있다. 하와는 브루하누딘 라바니대(현 카불 종합대) 3학년에 다니다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 집에만 머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살고 있는 하와(20)는 볕이 드는 창가에서 책을 만지작 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하와는 지난 8월 탈레반이 장악하기 전까지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다.

탈레반 장악 이후 하와는 또래 여대생들과 마찬가지로 집에만 머무르고 있다. 탈레반은 여아들에게 초등교육은 허락했지만, 중등교육 이상은 아직까지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와는 지난 달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집에 앉아 있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며 “우리가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경제 활동으로)가족도 부양할 수 있다”고 답답해 했다.

인근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하디아(10) 역시 언젠가는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언니들처럼 공부를 계속 할 수 없고,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점령하며 아프간을 접수한 탈레반 2기 정권의 가혹한 통치 본색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탈레반은 8월 집권 초반만 해도 외신기자들을 모아놓고 “여성들도 ‘이슬람법에 따라’ 정치와 교육에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 속 여성들의 처우는 달라진 게 없다. 탈레반 집권 1기(1996~2001년)로 회귀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영국 BBC 방송, 미 CNN 등 서구 언론들은 아프간 여성과 아동들이 직면한 현실을 잇따라 기사로 전하고 있다. 중등교육 이상을 받아왔거나 직장에 다녔던 여성들은 이제 어두컴컴한 집 안에만 갇혀 지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난이 극심한 시골 마을에선 여아 매매혼이 성행하고 있다.

BBC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탈레반의 서부 거점도시인 헤라트 외곽 시골마을의 풍경을 전했다. 이곳에선 굶주린 주민들이 갓 태어난 여아를 500달러에 팔기도 했다. [BBC 캡처]

BBC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탈레반의 서부 거점도시인 헤라트 외곽 시골마을의 풍경을 전했다. 이곳에선 굶주린 주민들이 갓 태어난 여아를 500달러에 팔기도 했다. [BBC 캡처]

아프간 중부의 구르 지방에 살고 있는 10세 여아 마굴은 70세 노인에게 넘겨질 예정이다. 이웃 마을에서 20만 아프가니(2200달러·약 250만원)를 빌렸지만 이를 갚지 못 했기 때문이다. 마굴의 아버지는 ”돈을 갚지 못 하면 탈레반 감옥으로 보내질 것”이란 협박 끝에 딸을 내주게 됐다. 마굴은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며 “나는 그 사람이 싫다. 나를 가게 하면  스스로 죽어버릴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BBC가 탈레반의 서부 거점 도시 헤라트 외곽에서 만난 익명의 가족은 갓 태어난 딸을 담보로 500달러(약 60만원)를 빌렸다. 폐지 수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아버지가 일을 하지 못 하게 되면서 아직 어린 아들들에게 먹일 밀가루조차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웃마을 남성에게 돈을 빌리고 딸이 걸을 수 있게 되면 그를 넘기기로 했다.

지난 8월 이후 서방 국가들은 탈레반이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무자비한 정책을 거두지 않으면 그들을 정식 아프간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탈레반은 반면 “우리의 소녀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외국인들이 지시할 권리가 없다“며 ”우리는 지구촌의 일원이며,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무너진 내수, 탈레반은 “서구 탓” 

아프가니스탄에선 지난 4월의 미군 철수 발표와 5월의 탈레반 공세 이후 약 40만 명의 국내 피란민이 추가 발생했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선 지난 4월의 미군 철수 발표와 5월의 탈레반 공세 이후 약 40만 명의 국내 피란민이 추가 발생했다. [AP=연합뉴스]

탈레반은 새로운 내각 구성을 밝혔지만, 해외 자금줄이 막히며 두달 넘게 혼돈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월 탈레반 집권 직후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물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기구를 통한 아프간의 해외 계좌를 동결했다. 해외 원조에 의존하던 아프간 경제는 현금 유입 창구가 닫히면서 내수 경제와 의료 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인구의 45%인 1900만 명이 현재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해 있으며,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최대 2280만명이 굶주림에 처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미 정부는 지난달 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아프간에 1억 4400만 달러(약 17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단, 탈레반 정부가 아닌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하거나 인도주의 기구를 통해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탈레반은 이달 초 “아프간 내 외화 사용을 금지한다”고 선언해버렸다. “모든 시민과 사업가 및 일반 대중들은 아프간 내에서 외화 사용을 엄격히 자제하라”며 “이 명령을 어기면 법적 조치를 받을 것”이라면서다. 탈레반의 이번 조치로 가뜩이나 현금이 마른 아프간 내수는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프간 시내 장터에서는 미 달러가, 국경지대에서는 파키스탄 루피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서방 국가들 탓으로 돌린다. 무자히드 자비훌라 탈레반 대변인이 지난 달 30일 “미국 등이 우리의 현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프간 문제는 장기화될 것”이라며 “체제 인정은 아프간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자국민들의 인권 문제를 협상 카드로 쥐고 국제 사회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인도주의냐, 합법 정부 인정이냐'의 딜레마

지난 8월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이 외신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8월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이 외신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탈레반은 9월 유엔 등 국제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새로 임명된 아미르 칸 무타키 외교부 장관이 유엔에 “아프간의 기존 유엔 대사를 해임하고 새 대사를 임명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로이터는 이와 관련 “새 유엔 대사를 통보한 탈레반의 무타키 외교부 장관 부터가 유엔의 제재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탈레반 인정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하메드 카담 샤 미 시애틀 퍼시픽대 교수는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더 디플로맷 기고를 통해 “국제사회가 압력에 못 이겨 탈레반에 유엔의 정식 회원 자격을 부여하게 되면, 국제법의 무결성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이 앞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문제 삼아 1994년 첫 민주 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유엔 대표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던 점을 예로 들었다. 탈레반 1기 때도 유엔은 탈레반의 아프간 대표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국제법의 시각에 따르면 국제사회에서 합법 정부로 승인 받기 위해 4가지 요건( ▶효과적인 통제 ▶대중적 지지와 국내적 합법성 ▶영속성과 안정성 ▶국제적 의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지)을 충족해야 한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모든 국경과 주요 도시를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합법 정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4가지 가운데 어느 요건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서구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탈레반을 통하지 않고 최대한 유엔 기구를 통해 직접 현금 또는 현물 살포를 하는 방법을 고심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간헐적 지원만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파키스탄, 러시아, 중국, 터키 등 비(非) 서구권 국가들이 이미 원조를 재개하고 있어 서구의 소규모 지원이 탈레반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유인책이 되기에도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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