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재명·윤석열에 묻고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 [Law談-권경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Law談

Law談’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정의란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이다. 사회란 그 성원들 상호 간에 구속력을 갖는 행동 규칙을 인정하는 조직체이다. 국가가 구성원들이 공정한 규칙에 합의하는 조직체라면, 법(法)이 추구하는 이념적 철학의 핵심은 ‘정의’이다.

권경애 변호사가 서울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권경애 변호사가 서울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현대적 정의론을 정립한 존 롤즈는 ‘부정의는 그보다 더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참을 수 있는 것이며, 정의는 지극히 준엄한 사회적 합의’라고 했다. 존 롤즈의 정의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제1원칙으로 삼는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권적 기본권, 양심‧사상‧신체‧언론‧집회‧결사‧사유재산의 자유 등과 같은 헌법의 자유권적 기본권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원칙은 분배의 정의이다. 존 롤스의 정의의 제1원칙은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과 맞닿아 있다.

프랑스혁명을 이끈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적 핵심은 자유주의다. 혁명의 이념은 홉스, 로크, 볼테르, 루소 등의 사상가들이 반세기에 걸쳐 배양시켰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면서 시작된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자유주의’는 현실이 아니었다. 꿈과 이상이었다. 장 자크 루소는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지만 어디를 가나 사슬에 묶여 있다”고 했다.

자유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해방은 교권과 왕권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자유주의는 프로테스탄트적 개인주의를 철학적 기반으로 출발했다. 하나님과 나를 중개하는 교회를 제거하고 개인이 신과 직접 맞서 양심에 따라 신앙과 삶을 결정할 자유를 추구했던 개인주의는 왕족과 귀족으로부터의 자유 추구를 향해 나아갔다.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왕족과 귀족은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했지만, 전체 토지의 40%를 보유하고 세금과 부역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쟁탈패권을 놓고 영국과 경쟁해 온 프랑스는 1775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왕실재정은 이미 파탄 나 있었다. 프랑스 왕정은 식민지였던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와의 무역을 독점했던 미시시피 회사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지폐와 채권 발행을 남발해 왔다. 한 해 세수입의 절반이 국채 상환과 이자 비용으로 소진됐다. 루이 16세는 추가 세금 부과를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다. 투표권 배분 문제로 제3신분 평민들이 테니스 코트에서 국민회의를 조직하자 왕은 군대를 보냈다. 분노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시키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제가 선포됐다. “제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 사회적 차별은 오로지 공공 이익에 근거할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꿈이 현실이 되었다.

1789년 7월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다.

1789년 7월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다.

그러나 프랑스 헌법은 루소가 아니라 부르주아 이익을 보장하는 E.J.시에예스의 사상을 기초로 제정되었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현재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전체이되 구속되고 억압된 전체이다. 특권적 신분이 없으면 제3신분은 무엇일까? 전체이되 자유롭고 번성하는 전체이다. 제3신분이 없으면 그 무엇도 있을 수 없으며, 다른 신분들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한히 잘 되어갈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나 타고난 능력이나 배워서 얻은 노력에 따라, 또 운수가 아주 좋거나 그러저러한 우연에 따라, 행운이나 노동으로 자기 재산을 얼마든지 늘리는 것을 어떠한 공공 이익도 막지 못한다”고 했다. 시에예스에게 인간의 권리는 재산권의 보호와 자유시장의 원리와 일치했다. 루소와 달리 시에예스는 권리의 평등과 평등을 실현할 수단인 부와 능력의 불평등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에예스의 자유는 태생적 능력과 사회적 환경의 행운으로 인해 부유한 소수의 제3신분의 자유,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였다. 혁명의 주력군이었던 농민과 임금노동자들은 신분적 평등을 얻었지만, 부역의 금납(金納)과 사적 거래의 자유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농민과 임금노동자들은 혁명의 결과로서 경제적 평등의 개선을 원했다. 루소의 평등주의는 부르주아의 자유주의와 농민‧노동자 계급의 사회주의적 각성 사이를 배회했다. 프랑스혁명은 현대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 내포된 딜레마를 노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일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일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20세기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두 이데올로기의 급진적 변형인 파시즘, 세 축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각축전을 벌였다. 자유주의 이념 내부에서도 갈등이 노정됐다. 시에예스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와 연결됐다. 루소와 존 롤즈, 마이크 샌델의 정의론은 복지국가의 이념적 토대와 닿았다. 자유주의의 핵심 철학인 개인주의는 능력 있는 소수의 개인이 사회발전의 추진력이라고 본다. 자유주의가 엘리트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시에예스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고등 교육을 받을 재력이 없는 대다수 시민에 대한 경멸을 기반으로 했다. 루소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제를 정치적 귀착점으로 하지만, 대중민주주의는 자칫 변형되어 파시즘으로 질주하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을 방문해 청년 지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을 방문해 청년 지지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대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당과 야당의 대선 후보가 모두 결정됐다.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 정책으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약속한다. 그러나 그가 단군 이래 최대의 공공환수라고 자랑했던 치적 사업인 부동산 개발사업은 유례없는 부동산 약탈 부패였다. 3억5000만원을 투자한 개인들에게 4000억원의 배당수익 특혜를 주는 부패 사업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이 후보는 무능 내지 부패에 대한 성찰 없이 부동산감독원 신설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사정 권력 강화를 예고한다. 특별한 희생을 당하는 자영업자들의 손실 보상금으로 사용해야 할 재원을 기본소득 맛보기의 매표 자금으로 풀어야 한다고 행정부를 압박한다.

정권 심판의 민심은 강렬하다. 지난 2년여간 국민은 집권 여당 및 지지 세력의 법치 유린과 공정과 상식을 와해하는 반민주적 행태에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자산의 양극화와 계급의 세습화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기존 야당은 특권과 반칙의 상징이었다. 제1야당이 공정과 상식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사회를 일굴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윤석열 후보는 120시간 노동할 계약의 자유를 주장하고, 메이저 언론과 마이너 언론을 구별하며, 첨단 기술분야 차세대 노동을 중시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육체노동을 차별하는 설화를 일으킨 바 있었다. 극단적 자유주의의 경향성이다. 한편 윤 후보는 경선 토론을 거듭할수록 밀턴 프리드먼을 언급하던 초기와는 다른 철학을 드러냈다. 노사의 동등한 협상력을 강조하고, 저성과자 평가제나 해고의 자유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정치 입문 4개월의 정치신인이 야당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정권 교체뿐만 아니라 정치 교체의 강한 의지가 투영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무너진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소멸과 서민경제의 붕괴, 부동산 양극화 심화를 해결하고 공정과 상식을 재정립하기는 쉽지 않다. 정의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유능한 실행력을 갖춘 지도력이 있어야 반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누가 되어도 미래가 빠르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래도, 미래는 꿈꾸는 사람들의 몫이다. 프랑스혁명 이전까지는 양심과 사상, 언론과 출판,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자유권적 기본권도 한낱 몽상에 불과했다. 정의를 구현하는 법(法)을 꿈꾸는 국민이 많을수록 권력은 달라진다. ‘국민 주권’은 민심을 거스르는 권력은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며, 헌법의 제1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Law談 칼럼 : 권경애의 로-노마드(law-nomad)

대한민국의 헌법 및 법률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철학인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와 정의의 역사 및 법적 가치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이해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법적 상상력은 무엇인지 사유하고자 합니다.

권경애 변호사가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권경애 변호사가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한국관광공사 법무팀장/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연대 활동/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