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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도 자제했는데…거침없는 김정숙여사 "교황에 종전선언 부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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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님을 만나뵙고 종전선언 지지와 평양 방문을 부탁했습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누가 한 말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 각국 정상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말로 들리지만, 사실 이 말을 한 사람은 문 대통령이 아닌 김정숙 여사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30일 오전(현지시간) G20 정상 배우자들과 친교를 위해 방문한 로마 콜로세움에서 질 바이든 미국대통령 부인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30일 오전(현지시간) G20 정상 배우자들과 친교를 위해 방문한 로마 콜로세움에서 질 바이든 미국대통령 부인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한 김 여사는 지난달 30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의 배우자 모임에서 미국의 질 바이든 여사부터 찾았다. 그리고는 “평화를 위한 여정에 한ㆍ미가 함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이탈리아의 마리아 세레넬라 카펠로 여사에게는 “교황에게 방북과 함께 종전선언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만찬에서 뵙게 될 (남편)드라기 총리에게도 특별히 부탁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EU 상임의장의 배우자인 아멜리 데르보드랑기앵 여사에게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멈추거나 두려워 말라”고 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공개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극도로 민감한 안보 사안에 대해 김 여사가 거침 없는 발언을 이어간 것과 달리, 문 대통령은 순방 내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왼쪽), 마리아 세레넬라 카펠로 이탈리아 총리 부인(가운데)이 31일 오후(현지시간) 로마 카피톨리네 박물관에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왼쪽), 마리아 세레넬라 카펠로 이탈리아 총리 부인(가운데)이 31일 오후(현지시간) 로마 카피톨리네 박물관에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7박9일 간 다자·양자 회담을 비롯한 공식일정 33개를 소화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활용한 ‘평화의 십자가’ 전시회 때 국내 인사들에게 “종전선언을 형상화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것을 제외하고 순방 내내 한번도 ‘종전선언’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도 안보와 관련해선 원론적 발언만을 소개했다.

교황 방북에 대해서도, 방북을 요청한 사실만 알렸을 뿐 구체적 대화 내용은 제한적으로만 공개했다.

실제 김 여사가 언급한 ‘교황에 대한 종전선언 지지 요청’을 비롯해, 교황이 했다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지지 발언’ 등은 청와대가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심지어 교황 면담 직후 청와대는 공식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이 논의됐다는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종전선언은 핵심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있고, 작은 오해도 민감하게 확대될 수 있다”며 “교황의 방북도 북한과 교황청이 당사자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마친 뒤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마친 뒤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사안이 김 여사를 통해 돌발적으로 공개된 것에 대해선 “노코멘트”라고만 했다.

특히 교황의 방북과 관련해선 김 여사뿐 아니라 청와대 대변인이 구설수에 올랐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순방 중이던 지난 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따뜻한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기대하는 교황의 방북에 ‘찬물’을 끼얹은 말이자, 교황 방북이 쉽지 않은 상황을 날씨탓으로 돌리는 말로도 해석됐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및 회담 결과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및 회담 결과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미국의소리(VOA)은 바로 다음날 “아르헨티나는 박 대변인의 묘사처럼 항상 따뜻한 나라가 아니라 일부 지역은 혹한 피해를 입을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다”며 “교황의 방북을 가로막는 요인은 ‘날씨’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워싱턴의 중평”이라고 보도했다.

VOA는 “아르헨티나 스키 리조트는 영하 25.4도를 기록했다”는 등 박 대변인의 주장을 반박한 관계자들의 발언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이번 순방 기간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또다른 사안은 일본 문제였다.

청와대는 순방 전부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신임 일본 총리와 문 대통령의 첫 대면 접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반일(反日) 감정을 조장한다고 해석될만한 언급 자체를 피했다.

김정숙 여사가 3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국가기록원을 방문해 '러시아 제국과 타타르 세계'(1730년 제작)의 이름을 가진 고지도를 보며, 헝가리 언어로 한반도 동쪽바다를 '소동해'라고 기록된 부분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김정숙 여사가 3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국가기록원을 방문해 '러시아 제국과 타타르 세계'(1730년 제작)의 이름을 가진 고지도를 보며, 헝가리 언어로 한반도 동쪽바다를 '소동해'라고 기록된 부분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반면 김 여사는 지난 3일 헝가리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지금의 동해를 ‘소동해(小東海, MARE ORIENTALE MINVS)’로 표기한 고(古)지도를 전달받아 조선의 위치를 직접 찾아본 뒤 “한국은, 여기에 한국이 있네요”라며 웃음을 보였다. 일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김 여사는 또 1902년 고종을 알현했던 헝가리 신부 버이 삐떼르의 일기(1902년)과 저서(1918년)를 낭독한 뒤 “그 어떤 무력과 가혹함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더욱 강하게 저항하는 조선인들의 고귀한 자존심이 기록됐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3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국가기록원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속 책은 100년 전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한 버이 삐떼르 헝가리 신부가 남긴 글을 재편집한 '낭독본'으로 조선에 대한 찬사, 믿음과 신뢰, 기대로 구성돼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3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국가기록원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속 책은 100년 전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한 버이 삐떼르 헝가리 신부가 남긴 글을 재편집한 '낭독본'으로 조선에 대한 찬사, 믿음과 신뢰, 기대로 구성돼 있다. 뉴스1

청와대는 지난 2일 기시다 총리가 영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하자, 당일 오전 일정을 일부 조정하는 등 기시다 총리와의 만남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ㆍ일 정상의 대면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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