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대 曰] ‘위드 코로나’와 ‘마음 방역’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0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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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30면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위드 코로나’로 일상이 하나둘씩 회복되고 있다. 위드 코로나의 문자적 의미는 코로나와의 공존일 것이다. ‘위드(with)’가 ‘함께’를 의미하는 영어이니 우리말로 하면 ‘코로나와 함께’라는 말이 되겠다. 결국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코로나와의 공존으로 우리의 생각을 전환하는 일이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영세 자영업자들이 이제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년 가까운 기간 전 지구를 뒤흔들었기에 ‘코로나 세계대전’이라 부를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 전쟁에서 공존으로의 변화 과정을 복기해보면 매우 극적이다. 코로나 공포가 가장 심했던 것은 지난해 2~3월이었던 것 같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일 때다. 두려움은 대개 상황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한다. 전쟁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을 알고 나도 알아야 하는 것은 병가의 상식이다. 코로나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불안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의 실상을 점차 알아가면서 무지의 안개가 걷혀가는 순서를 밟은 듯하다.

국가 통제 없이 스스로 조심 ‘자율 방역’
각종 위험과 함께 공존하는 ‘삶의 지혜’

코로나 변종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이미 지난해 8~9월께 전문가들에 의해 예고되었다. 하지만 처음 걱정했던 것만큼 코로나 치명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정보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은 많은 위안을 얻은 것 같다.

위드 코로나를 통해 코로나뿐 아니라 각종 위험과 함께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말고 또 어떤 재난과 재해가 우리가 무지한 상태에서 마치 도둑처럼 우리 삶에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인생이 고해(苦海)라고 하는데 아마 그런 무지한 상황을 통틀어서 하는 얘기인 듯하다.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이 코로나에도 고통과 불편만 따른 것은 아닐 것이다. 좀 살 만해지니까 이런 얘기도 편하게 나오는 것 같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주 손을 씻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 습관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일상의 위생 수준을 높여 주었다.

특히 삶과 죽음의 문제, 질병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살려고만 한다고 해서 죽음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건강해지려고만 한다고 해서 질병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건강과 질병이 공존하는 세계의 실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공존의 의미를 확대해볼 수도 있다. 국민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사회적 방역’이 우선 필요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내 생각과 생활을 바꾸는 ‘마음 방역’도 중요하다. 지나친 탐욕을 내려놓는 마음 방역은 일종의 ‘자율 방역’이라 할 수 있다. 자유는 자율의 뒷받침 없이 제대로 확보될 수 없다. 그 효과는 면역력의 향상으로 나타난다. 국가가 통제하지 않아도 필요하면 마스크 쓰고 자주 손 씻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을 각자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마음 방역을 통해 전쟁을 공존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세상에 많은 듯하다. 우선 ‘나’와 ‘남’의 관계가 그렇다. 나만 옳고 남은 틀렸다는 독선적 생각이 공존을 어렵게 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함께 잘 사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어려운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갈등 지수를 끌어올리는 여당과 야당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여야가 자기만 옳다면서 국민에게 전가하는 정쟁의 스트레스가 아마 코로나의 치명률 못지않을 것 같다. 스트레스가 화를 키우고 면역력을 떨어트린다. 우리 일상의 갈등을 잘 풀어나간다면 어느 순간 남한과 북한의 평화로운 공존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의 고통이 크고 길었지만 이제 위드 코로나와 함께 이런 아름다운 공존의 날개를 펼 수 있다면 그동안의 고통도 전화위복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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