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욕 ‘북 로’에 서점 한 곳뿐인데, 책의 ‘행복 냄새’ 솔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1호 24면

POLITE SOCIETY 

현재는 폐업한 뉴욕의 어반 센터 북(Urban Center Book). [사진 박진배]

현재는 폐업한 뉴욕의 어반 센터 북(Urban Center Book). [사진 박진배]

뉴욕의 유명한 햄버거집 쉐이크 쉑(Shake Shack) 본점이 위치한 매디슨 스퀘어 공원, 그리고 그 남단에 다리미 모양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플랫아이언(Flatiron)빌딩이 있다. 여기서부터 브로드웨이를 따라 남쪽으로 약 1마일의 거리는 ‘레이디스 마일(Lady’s Mile)’이라고 불린다. 과거 로드앤테일러(Lord & Taylor)를 비롯한 여러 백화점과 상점이 위치해 늘 쇼핑하는 여성들로 붐비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거리는 서점 48개가 위치했던 ‘책방거리(Book Row)’이기도 했다. 패션과 지성이 공존하던 과거 뉴욕의 모습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하나만 남아 있다. 캘빈 클라인, 움베르토 에코 등이 단골로 찾았던, 빨간색 로고가 찍힌 뉴욕의 패션 굿즈로도 유명한 서점이다. 1950년대 뉴욕에는 365개의 서점이 있었다. 매일 다른 서점을 들러도 일 년이 걸리는 숫자다. 현재 뉴욕에는 70여 개 정도의 서점만 남아 있다.

종이책, 전자책보다 흡수력 훨씬 좋아

캘빈 클라인, 움베르토 에코 등이 단골로 찾았던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사진 박진배]

캘빈 클라인, 움베르토 에코 등이 단골로 찾았던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사진 박진배]

‘책’이라고 불리는 작은 사각형의 물체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누구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DNA다. 그리고 어떤 주제와 문화에 대한 기록이다. 책 속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또한 책을 읽는 시간과 책이 놓인 공간도 존재한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과 식견을 통해서 본질과 진리를 배우는, 과거부터 존재했던 가장 정선된 생각들과 대화하는 과정이다. 문명의 행위이자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걸 보게 해 주는 여행이다.

책을 읽을 때는 잉크의 냄새, 종이를 만지는 촉감,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가벼운 바람과 특유의 소리 같은 정서적 경험이 동반된다. 책은 또한 무척 개인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햄릿』을 소장하고 있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햄릿』은 특별하다. 그건 나의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DVD나 블루레이를 가지고 있어도. 그 영화가 내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책은 또한 좋은 선물이 된다.

책에는 또한 종이, 천, 실, 잉크, 가죽, 먼지와 같은 요소가 결합된 물성(物性)이 존재한다. [사진 박진배]

책에는 또한 종이, 천, 실, 잉크, 가죽, 먼지와 같은 요소가 결합된 물성(物性)이 존재한다. [사진 박진배]

제인 오스틴의 저서 『오만과 편견』에 “내 집에 근사한 서재가 없다면 불행할 것이다”라는 대사가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보관하는 신비의 캐비닛’이라고 불리는 서재는 책의 페이지로부터 나오는 영혼에 의해서 꾸며지는 공간이다. 지적이고 근사하고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벽면에 빽빽하게 진열된 책이 주는 힘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집안에 작은 규모라도 서재가 있는 경우 자녀의 학습능력은 훨씬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요즈음 책은 덜 읽어도 개인 서재를 만드는 것은 트렌드다. 책을 꼭 주제별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 서재를 패션으로 생각한다면 책의 높이별, 색상별로 분류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 정리해도 자신의 서재에 어디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정도는 알기 때문에 상관없다.

앞서 언급한 뉴욕의 스트랜드 서점에는 책을 길이 단위로 재서 판매, 또는 대여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책의 종류에 따라 가격은 다르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으로 꾸며진 장식이 필요한 무대디자이너나 인테리어 데코레이터들이 주 고객이다.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인기가 있어서 플라자 호텔의 내부 장식,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세트, 랄프 로렌의 매장에 이용되기도 했다. 카페나 호텔, 부티크, 심지어는 술을 마시는 바의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도서관이나 서재는 꾸준한 테마로 인기가 있다. 책이 쌓인 공간의 지적 분위기가 근사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더블린(Dublin) 시립도서관. [사진 박진배]

더블린(Dublin) 시립도서관. [사진 박진배]

인터넷은 종이문화의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책이라는 형식뿐 아니라 그 내용도 전자기기로 전송되면서 인쇄매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등장한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책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문화혁명이나 나치들이 책을 불을 태웠던 것보다 훨씬 파괴력이 크다.

다양한 정보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똑같은 책을 인터넷에서 찾아 컴퓨터스크린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기를 마치면 우리 앞에서 소멸한다. 여운은 남지 않는다.

인쇄된 책은 다르다. 내용이나 기억뿐 아니라 하나의 실체로서 남는다. 영원히 나의 것이 된다. 인쇄물로 읽을 때는 흡수력도 훨씬 좋다. 무엇보다 읽는 시간의 질이 다르다.

애슐린 서점. [사진 박진배]

애슐린 서점. [사진 박진배]

책은 몇 가지 여정을 택한다. 문학으로 남는 작품, 연극이나 영화로 재생되는 경우, 그리고 하나의 미술품이나 오브제로의 가치다. 근래에는 특히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그리움으로 소유와 감상적 가치로의 책이 부각되고 있다. 현재 아트북으로 유명한 애슐린(Assouline)이나 타셴(Taschen)과 같은 출판사들은 책의 미래를 일찌감치 예언했다. 정보는 인터넷으로 찾게 되고, 그러면 종이책은 예술품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개념을 염두에 두고 기획과 제작을 할 때 독창적 주제, 삽입되는 그림과 사진의 질, 삼박한 편집 같은 요소에 집중함으로서 책 한 권 한 권을 마치 도자기와 같은 미술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런 책들은 소장하고 있으면 값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미술품과 같다.

과거 영국의 귀족들에게는 고급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인류 최초의 경매는 1600년대 영국에서 이루어진 책 경매다. 예전에는 생선 경매처럼 책 경매도 빈번했다. 지금도 소더비(Sotherby’s)와 같은 경매하우스에서 희귀본 위주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어린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책의 초판은 수억원에 거래된다.

현재에도 아름답고 좋은 책의 소유에 대한 선망이 있다. 구입자들은 책이 가지고 있는 유산 자체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또 개인소장의 기분도 즐길 수 있다. 미국에서 700만 명이 시청하는 TV 프로그램 ‘전당포 스타(Pawn Star)’에서도 종종 책 거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어린왕자』 같은 책 초판 수억에 거래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책상. [사진 박진배]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책상. [사진 박진배]

인터넷이 서점을 망가트렸지만 공헌한 점도 있다. SNS를 통해서 덕후가 생기고, 또 귀한 책에 대한 가치가 평가되면서 이런 문화를 살짝 부활시킨 면이다. 오브제로서의 책의 미래는 확실히 하나의 방향이 된 것 같다. 전 세계 수백억 권에 달하는 책들에 모두 주인이 있다. 그리고 책에는 생명이 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면 책도 실시간으로 우리를 읽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내가 웃고 슬퍼하는 순간들을 책은 알고 있다.

책에는 또한 종이, 천, 실, 잉크, 가죽, 먼지와 같은 요소가 결합된 물성(物性)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책을 쳐다보고, 만져 보고,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다. 책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냄새는 행복의 냄새다.

책에도 특별한 공간이 있다. 낱장이 겹쳐지면서 형성된 측면이다. 보통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간혹 측면에 고급 색칠이나 24K 금박이 덮인 책들도 있다. 물질로서의 금이 아니라 그 속의 진정한 지식의 보고(寶庫)와 지혜를 발견한다는 은유다. 이 좁은 책의 측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경우도 있다. 마을이나 도시 풍경도 나오고 옷을 잘 차려입은 숙녀가 등장하기도 한다.

부분적으로 보면 마치 숨은 암호 글자처럼 보이지만 책을 닫으면 근사한 한 폭의 그림이다. 홀로그램의 아날로그 버전이다. 이 공간을 열고 들어가면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인류의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우주보다 더 장대한 이야기가 있다. 인류가 존재했던 곳에 책이 존재해 왔다. 우리의 꿈과 생각, 미래의 비전을 보존하고 물려주는 책에는 읽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책을 존경하는 것 이외의 다른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모르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