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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협력해 북극항로 선점하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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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20면

한국의 선택

한국의 선택

한국의 선택
김태유·이대식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4차 산업혁명시대와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의 활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래학자인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선택 : 한·미 동맹의 새로운 동반자, 러시아』를 통해 러시아를 주목했다. 한반도에 들이닥치고 있는 미·중 갈등의 대격변에서 한국이 수동적인 희생양이 아니라 판도를 이끌고 가는 능동적 중재자, 나아가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는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과 러시아의 동반자 관계로의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국-중국-일본의 연횡(連衡)과 한국-미국-러시아의 합종(合從)의 균형’을 전략적 선택지로 제시했다.

러시아는 지금 크림반도 사태로 미국과 유럽의 제재를 받고 있다. 또 북핵 위기로 역대 정권이 추진했던 러시아와의 각종 경제협력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런데 왜 러시아일까.

김 교수는 먼저 북극항로를 주목했다. 산업혁명과 인류 문명 발전사를 볼 때 새로운 길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북극항로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화물과 여객의 폭발적인 증가를 해결할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새길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 나선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AFP=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 나선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AFP=연합뉴스]

북극항로는 대서양에서 러시아 북쪽 해안을 거쳐 베링 해협과 태평양에 이르는 북동항로와 캐나다 북쪽 해안을 거쳐 북동항로와 만나는 북서항로를 말한다. 북극항로를 통해 부산과 로테르담을 운항할 경우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한 운항보다 거리는 32%, 운항일수는 40일에서 30일로 줄일 수 있다. 러시아는 북극해 연안의 60%를 차지한다.

그는 “대한민국이 선도해야 할 4차 산업혁명은 곧 북극항로의 선점이고 이는 한국과 러시아 양국 관계를 발상의 전환을 통해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공동 대표저자인 싱크탱크 여시재의 이대식 기획실장은 “세계사를 돌아보면 17세기 네덜란드처럼 새로운 물류를 개척하고 장악한 국가가 세계 문명과 패권을 좌지우지했다”며 “21세기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물류는 가시적으로는 북극항로이며, 더 큰 의미가 있는 데이터 유통인데 한국의 유력한 조력자는 바로 러시아”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를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안보 문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대 정권의 강온 전술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미국, 중국, 일본의 북핵 관련 이해관계를 조정할 선택지가 우리에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김 교수는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선 미·중, 겉으로는 친한 듯하지만 원자폭탄과 플라자합의의 한이 서린 미·일, 미국의 제재와 미·중 갈등 속에 당분간 힘을 합친 중·러, 북방 4개 도서 영유권 분쟁 중인 러·일 간의 팽팽한 ‘구조적’ 긴장 관계 속에서 한국이 ‘연횡’과 ‘합종’의 균형을 주도해 힘의 원천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다.

위성락 주러시아 대사 역시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연횡’과 ‘합종’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위 대사는 한국이 러시아에 냉전 시기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국제적 핵 비확산 중시 정책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는 것을 선순환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현재의 미·러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촉진자 역할이 필요하다. 21세기 미·중 패권 경쟁 속에 러시아의 중국 밀착은 과거 냉전 시기 중국의 구소련 밀착만큼 미국의 국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북한의 핵 완성으로 동북아에서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미·러는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 비핵화에 협조하고 미국이 대러 관계개선 조치로 응답한다면 최소한 북한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중국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을 동북아의 유익한 협력 파트너로 보는 러시아의 인식에 한국은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 한국이 한·러 양자 협력을 강화하고 미·러 관계 개선에 기여한다면 또 하나의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한국 주도의 통일이 러시아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독일 통일이 구소련의 전향적 정책 전환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선택 : 한·미 동맹의 새로운 동반자, 러시아』는 한국 최고의 러시아 전문가 18명의 분석과 제안을 모아 지경학, 에너지, 물류와 기술, 인적·문화적 교류 등 네 부문에서 한·러 협력의 효과와 가능성을 짚었다. 오늘의 러시아를 이해하는 지적 깊이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제안이 담겼다는 점에서 내년 출범하는 새 정부를 위한 전략보고서가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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