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없는 영구채 발행한 뒤 조기 상환하는 까닭은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06 00:20

업데이트 2021.11.0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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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08면

채권.

채권.

실전 공시의 세계

최근 풀무원식품이 680억원의 영구채(永久債)를 발행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영구채 850억원 어치를 조기상환했다고 합니다. KB금융 등 금융지주사들이 수천억원의 영구채를 발행키로 했다는 공시도 가끔 보입니다. 영구채는 다른 말로 ‘신종자본증권’이라 합니다. 일반 회사채는 3~5년 만기 때 원금을 상환해야 하고, 대개 3개월 단위로 이자를 지급합니다.

영구채는 일반적으로 만기가 30년에 이릅니다. 단지 만기가 길어서 영구채라고 부르는 건 아닙니다. 만기 때 발행회사의 의사에 따라 30년 더 연장할 수 있습니다. 연장 횟수에 제한도 없습니다. 사실상 만기가 없다는 점에서는 주식, 이자부담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채권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구채를 자본 또는 부채 가운데 무엇으로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10여 년 전에 있었습니다.

결론은 자본인정이었습니다. 영구채의 이자 조건은 독특합니다. 예를 들어 연 5% 금리로 발행했다가 3년 뒤부터 7%로 금리가 올라갑니다. 다시 2년 뒤부터는 매해 0.25% 포인트씩 금리가 상승합니다. 영구채 금리는 이렇게 스텝업(step-up)이 되는데, 조건은 영구채마다 제각각 입니다. 발행회사에게는 스텝업 시점이 도래하면 조기상환(콜옵션 행사)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대부분 영구채 발행기업은 3~5년 뒤 최초 스텝업 시기가 오면 조기상환을 합니다. 금리 부담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말이 영구채이지, 실질은 3~5년 만기 일반 회사채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이 영구채를 발행하면 자본증가로 재무구조가 개선되면서 현금유입으로 유동성도 좋아집니다. 하지만 영구채 금리는 일반 회사채보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실상 수년 뒤 원금을 상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투자자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풀무원식품의 영구채는 연 5.5% 금리로 발행해 5년마다 금리를 높여나가는 구조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이 조기상환한 850억원 영구채는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발행한 것이었습니다. 스텝업 금리가 8.5%에서 11%로 상승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콜옵션을 행사했습니다.

금융지주사들이 발행하는 영구채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상각조건부 자본증권발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공시가 바로 영구채 발행을 뜻합니다. 상각조건부영구채는 금융지주사가 금융구조개선법 등에서 정한 부실금융기관에 지정될 정도로 경영상황이 악화하면 영구채 대금을 갚지 않고 상각처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금융지주사가 그 정도로 부실해질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HMM(옛 현대상선)의 영구채는 최근 자본시장에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 해운업 정상화 지원 차원에서 HMM 영구채를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인수했습니다. 191회~197회 발행분까지 잔액이 3조2800억원에 이르는데, 대부분 전환사채형(전환가격 5000원) 영구채입니다. 주주들은 주식전환으로 발행주식이 급증하면 주주지분가치를 훼손한다면서, 회사가 순차적으로 조기상환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식전환권을 가진 산은 및 해운진흥공사측은 “현 주가와 전환가격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주식전환을 포기하면 배임 이슈가 제기될 수 있다”면서 주주들과 맞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국 해양진흥공사는 최근 191회 영구채 6000억원 어치를 8300여 만주로 전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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