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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충성 안 한다” 소신, 권력 수사 밀어붙인 ‘강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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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04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부모가 모두 교수인 학자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연구한 저명한 경제학자로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다. 윤 교수는 아들을 엄하게 키웠다. 윤 후보가 친구들과 남의 밭에 들어가 콩을 서리한 사실이 알려지자 “농부가 힘들게 지은 농작물을 재미로 훔쳐서는 안 된다”며 매로 호되게 꾸짖기도 했다.

9수 끝에 1991년 사법시험 합격

이런 집안 분위기의 영향인지 윤 후보는 학창 시절부터 어려운 형편의 친구들을 곧잘 챙겼다고 한다. 중학교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윤 후보는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운동을 마치고 친구들이 수돗물을 들이켰는데,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는 얘기를 들은 윤 후보는 이후 친구들을 종종 중국집에 데려가 짜장면을 사줬다고 한다. 이처럼 친구를 좋아하는 천성은 그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꿈은 경제학자나 물리학자였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윤 후보의 꿈은 법대 교수였다. 사시 합격도 교수가 되려는 꿈의 일부였다. 실무 경험도 없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건 학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병역은 두 눈의 시력 차이가 큰 ‘부동시’로 면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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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람 챙기길 좋아하고 술자리도 즐겼던 그는 사시 2차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9년간 사시에 도전하다 보니 ‘신림동 신선’이란 별명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기도 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이 시절 윤 후보는 결혼한 친구 부탁을 받고 자녀를 봐주기도 했고 친구 조부모가 상을 당하면 상여를 메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윤 후보는 결국 9수 끝에 1991년 사시에 합격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조윤선 전 장관, 강용석 변호사 등이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다. 첫 직장인 검찰 생활을 시작한 건 34세 때였다. 선후배와 친화력이 좋고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조직 적응은 무난했지만 강골 기질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보통이 아닌 녀석’이란 평가와 ‘승진은 물 건너간 외골수’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2002년엔 잠시 검찰을 떠나 1년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가 돼서도 의뢰인에게 “그런 일을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호통을 치는 등 검사 체질을 못 버려 주위를 당황하게 했다. 그러던 중 대검찰청에 들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철가방 속 짜장면 냄새를 맡고는 검찰 복귀를 결심하게 됐다. 밤샘 수사 때마다 먹었던 짜장면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한다.

검찰로 복귀한 윤 후보는 권력 핵심의 비리를 파헤치는 대형 수사를 맡아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는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 기소했고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 때는 사표를 각오하고 밀어붙인 끝에 정몽구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2011년엔 부산 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맡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2012년엔 52세에 띠동갑인 김건희씨와 늦깎이 결혼하며 ‘검찰총장(검찰 총각 대장)’이란 짓궂은 별명도 떠나보냈다. 결혼 당시 윤 후보 통장엔 2000여만원밖에 없었다고 한다. 윤 후보는 올해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때 총 재산 71억6900만원을 신고했다. 윤 후보 본인 재산은 2억4400만원이고 나머지 69억2500만원은 부인 명의였다.

직장과 개인사 모두 잘 풀리는 듯하던 2013년 윤 후보의 운명을 뒤바꾼 사건이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 첫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으면서다. 윤 후보는 본인 스타일대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게 칼을 겨눴고, 이로 인해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은 끝에 업무에서 배제됐다. 이후 국정감사장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검찰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털어놓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3월 검찰총장 사퇴, 석 달 후 대선출마 선언

윤 후보는 이후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지만 2016년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영수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에도 관여하며 ‘국민 검사’ 호칭을 얻었지만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장본인”이란 보수 진영의 비난도 함께 받아야 했다.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대통령도 그를 적극 등용했다. 취임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한 데 이어 2019년 7월엔 검찰총장에 전격 임명했다. 전임 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은 파격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윤 후보가 검찰 개혁의 주역이 돼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부터 엇갈리기 시작했다. 윤 후보는 1년 뒤 “임명장을 만져 보니 아직 잉크도 안 말랐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저도 인간이라 번민을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권력을 겨눈 수사를 멈추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정권의 비판과 압박이 거세질수록 야권 대선주자로 그를 거론하는 목소리 또한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사태까지 벌어지자 결국 윤 후보는 지난 3월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걸 더는 지켜보기 어렵다”며 검찰총장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윤 후보는 이제 여당에 맞설 제1야당 대선후보로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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