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빠가 화장실 가면 무서워요" 밤새 떤 소녀의 마지막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1.11.05 22:27

업데이트 2021.11.06 13:32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편지글이 쓰여 있다. 최종권 기자

17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 극단적 선택을 한 여중생 2명을 추모하는 편지글이 쓰여 있다. 최종권 기자

“2개월 전에 아버지가 성폭행을 했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화장실을 가면 무서워서 이불을 꾸리고 자요. 어렸을 때는 성추행을 했어요.”(2월 26일 아름양 진료 기록 中)

지난 5일 충북 청주의 한 법무사 사무실. 김석민(50) 충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은 ‘오창 여중생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아름(가명)양을 상담한 정신과 의사의 법정 진술에 밑줄을 긋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이 서류는 그가 공판기록 열람을 통해 법원에서 받은 자료다.

김 회장은 “집 구조를 보니 아름양의 방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며 “계부가 화장실을 오갈때 마다 성폭행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는 소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름양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A양의 유족을 돕는 법무사다. 지난 8월 유족이 도움을 요청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아름양의 계부 B씨는 그의 딸과 친구 A양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여학생은 경찰 조사를 받던 지난 5월 12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검찰은 지난 1월 17일 B씨가 자신의 집에 놀러 온 A양을 성폭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B씨는 아름양이 6~7세 때 성추행했으며, 13세가 된 지난해 성폭행한 혐의도 받는다. 피해자가 숨지는 바람에 B씨의 혐의는 피해자 생전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빠가 성폭행 했어요” 정신과 상담서 진술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이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사무실에서 '청주 오창 여중생'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 회장이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사무실에서 '청주 오창 여중생'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 회장은 요즘 아름양의 성폭행 피해 증거를 수집 중이다. A양 성폭행 증거는 유서와 친구와 나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사진, 0.2초 분량 동영상으로 충분히 입증됐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선고 전까지 아름이의 성폭행 피해 사실과 극단적 선택 과정을 증언할 만한 지인이나 증거를 찾고 있다”며 “최근엔 A양의 휴대전화 메신저 기록을 살펴보려고 구글과 페이스북에 ‘E-메일과 SNS 메신저’ 확인 요청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A양이 아름이와 평소 대화를 자주한 만큼 추가 피해 사실이 확인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이 성폭행 피해 사실을 찾는 이유는 아름양의 생전 진술 때문이다. 그는 “지난 2월 정신과 최초 상담에서 성폭행 피해를 말했던 아름양은 3월 진행한 경찰·지자체·학교 등 관계기관 참고인 조사에서 계부의 범행을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4월에 진행된 아동성폭력센터가 피해자 진술 때는 친모가 아름양의 진술을 막고, 중간에 데리고 나가는 바람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김 회장은 가해자인 계부 B씨와 아름양이 수사 내내 함께 있었던 점을 지적했다. 그는 “B씨에 대한 영장이 3차례나 반려되면서 분리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계부와 둘이 살던 아름양의 내적 갈등은 물론 외압도 상당했다는 정황이 법정기록에 나타난다”고 했다.

계부와 동거한 여중생…경찰 조사 땐 “꿈인 것 같다”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지난 8월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지난 8월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 회장은 재판부가 아름양의 정신과 진료 기록에 무게를 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름양의 상담을 맡은 정신과 의사는 지난 2월 26일부터 5월 1일까지 7차례 면담했다. 그는 친모와 계부를 제외한 소송관계인 중 아름양을 가장 오랫동안 상담한 인물이다. 두 번째 방문일인 3월 20일부터는 친모가 동행했다. 김 회장은 “경찰 참고인 조사와 달리 아름양은 정신과 상담에서 진심으로 문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름이를 첫날 상담한 의사는 ‘(계부 성폭행에 대해) 피해자가 작심한 듯 와서 얘기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실제 진료기록을 봐도 아름양은 성폭행을 당했다는 질문에 여러 차례 맞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재판 증언과 수사 자료를 종합하면 아름양은 지난 2월 26일 친구와 함께 병원을 찾아 정신과 의사와 첫 면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아름양은 “아버지가 성폭행을 했다”고 토로했다. 범행 시기는 지난해 12월로 기억했다. 아름양은 “작년 말쯤에 이불을 차고 자는데 화장실 옆에 있는 내 방에 들어와 배와 가슴을 만졌다”며 “5개월 전부터 잠을 자기 힘들다. 아버지가 3~4개월 전에 진정제 등 약을 줬다”는 말도 했다.

의사가 ‘아빠가 성폭행을 한 게 맞냐’고 묻는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낮게 ‘예’라고 답했다. 자신이 5개월 전 자해를 했다고도 한다. “아빠가 숙취 해소 약을 준 적도 있지만, 뱉었다”라고도 상담과정에서 말한다.

김석민 회장 “병원 상담서 진실 털어놨을 것”

지난 5월 친구의 계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청주 여중생 A양의 부모들이 지난 8월 22일 청주 성안길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딸의 유서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친구의 계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청주 여중생 A양의 부모들이 지난 8월 22일 청주 성안길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딸의 유서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정신과 의사는 지난달 12일 증인 신문에서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기에 조서 꾸미듯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진료기록을) 작성했다”고 했다. 3월 관계기관 조사에서 아름양이 성폭한 피해 사실을 ‘꿈인 것 같다’고 부인한 것을 두고는 “(계부와) 분리가 안된 상황에서 그들이 나를 위해할 수 있고, 생존과 관련이 있는데 목에 칼을 대고 진실을 얘기하라고 하면 누가 진실을 얘기하겠냐”는 취지로 증언했다.

공판기록에 따르면 아름양은 3월 들어 자신에 대한 계부의 범행을 부인하는 듯한 말을 한다. ‘나는 계부에게 피해를 본 사실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고 친구 성폭행 사건의 참고인이다. 꿈이라고 생각한다.(3월 11일·관계기관 조사)’, ‘정신과에 한 얘기를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아니라고 얘기하니까 좋았다.(3월 20일·정신과 상담)’라는 등 최초 상담과 달리 경찰 조사 등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김 회장은 “3월 11일 아름양 진술을 놓고 피고인 측은 이때 진술이 조현병 증상처럼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기댈 곳이 없었던 아름양이 진실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을 환경이었다. 그나마 정신과에서 혼자서 진료받을 때는 진실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12월께 B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이뤄질 예정이다. 김 회장은 “성폭행 사건은 다른 형사사건과 달리 피해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친족 성폭행 사건은 초기 수사 과정에서부터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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