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원흉서 보수의 미래로…윤석열 '직진 인생' 61년 [윤석열의 인생]

중앙일보

입력 2021.11.05 15:03

업데이트 2021.11.08 17:22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직함 생략)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윤석열은 5일 열린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50%)와 국민여론조사(50%) 합산 결과 47.85%를 얻어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윤석열이 야당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역정(歷程)은 ‘살아 있는 권력’과의 싸움으로 요약된다.

그는 2013년 정부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렸으나 이어진 인사에서 좌천당하며 검찰 중심부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때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하며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구속기소하자 보수층에게서 보수 궤멸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명의 법무부 장관과 맞서며 여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양대 진영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경험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윤석열은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보수·진보 진영의 격렬한 애증을 동시에 경험한 인물이다. 나라가 반으로 쪼개져 한 인물에게 양가적 감정을 뜨겁게 쏟아낸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사진은 2019년 9월 5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는 윤석열. 뉴시스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윤석열은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보수·진보 진영의 격렬한 애증을 동시에 경험한 인물이다. 나라가 반으로 쪼개져 한 인물에게 양가적 감정을 뜨겁게 쏟아낸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사진은 2019년 9월 5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는 윤석열. 뉴시스

보수층 지지 속에 지난 7월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정치 신인인 그는 경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제1 야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 받는 데 성공했다.

검사와 정치인이 되기 전, 인간 윤석열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떤 굴곡을 지나 윤석열은 삶의 철학과 가치관을 형성했을까. 태어날 때부터 현재까지 그의 인생을 돌아봤다.

원칙주의자의 피

윤석열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교수인 학자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소득 불평등을 연구해 온 저명한 경제학자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윤 교수는 강단 있는 원칙주의자로 유명했다.

윤 교수가 교수에 임용될 때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석사 학위를 받고 교수에 임용된 50~60년대엔 간단한 논문을 내면 박사 학위를 쉽게 딸 수 있는 ‘논문 박사’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윤 교수는 지인들 권유에도 “그런 식으로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거부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아버지와 함께 한복 입고 찍은 사진. 사진은 윤 전 총장의 초ㆍ중ㆍ고 및 대학 동문들로부터 입수했다. 김기정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아버지와 함께 한복 입고 찍은 사진. 사진은 윤 전 총장의 초ㆍ중ㆍ고 및 대학 동문들로부터 입수했다. 김기정 기자

이런 가르침은 윤석열의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다. 윤석열이 대학생 때 친구들과 남의 밭에 들어가 콩을 서리해 먹은 일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윤기중 교수는 “농부가 힘들게 지은 농작물을 재미로 훔쳐서는 안 된다”며 마당에 있는 호스로 윤석열을 매질했다.

윤석열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소위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한번은 단체로 창경원(창경궁) 나들이를 나갔다. 구경을 마치고 집에 갈 시간, 스쿨버스를 기다리는데 친구와 친구 아버지가 그의 앞에 차를 세우고 “집에 데려다줄 테니 타라”고 권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저만 가면 다른 친구들은요… 그냥 친구들과 함께 가겠습니다”하고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윤석열(왼쪽에서 둘째)의 초등학교 졸업식. 어릴 적엔 날렵했고 여러 스포츠에 능했다고 한다. 사진 윤석열 캠프

윤석열(왼쪽에서 둘째)의 초등학교 졸업식. 어릴 적엔 날렵했고 여러 스포츠에 능했다고 한다. 사진 윤석열 캠프

윤석열은 어린 시절 형편 어려운 친구들을 돕는 어른스러운 면모도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 친구들 증언에 따르면 윤석열은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 모여 자주 축구를 했다. 어느날 해 질 무렵 집에 돌아갈 때 친구들이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걸 봤다고 한다.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배를 채우려고 물을 마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석열은 종종 친구들을 끌고 중국집에 데려가 짜장면을 사줬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 좋아하는 천성 탓에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부작용을 톡톡히 겪게 된다.

술과 친구 좋아하는 고시 신선(神仙)

윤석열은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 뜻에 따라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꿈은 경제학자나 물리학자였다고 한다.

윤석열이 대학에 입학한 1979년은 혼란의 시기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고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을 장악했다. 1980년 당시 군부는 언론 보도를 통제해 ‘군사반란’에 대한 소문만 파다한 시기였다. 법대 선배들이 기자들에게 정보를 듣고 돌아온 뒤 대학 축제를 맞아 모의재판을 기획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윤석열은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을 두루 챙기는 '인싸'였다고 한다. 사진 윤석열 캠프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윤석열은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을 두루 챙기는 '인싸'였다고 한다. 사진 윤석열 캠프

윤석열은 여기서 재판장을 맡아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소식이 호외신문에 실렸다. 이 일이 문제가 되면서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는 먼 친척이 빨리 피해야겠다고 윤석열에게 알려줬다. 그는 3개월 동안 강원도 친척 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윤석열의 꿈은 검사가 아닌 법대 교수였다. 사법고시를 치르는 것도 교수가 되려는 꿈의 일부였다. 실무 경험도 없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건 학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법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고시에 붙으면 유학을 갈 요량이었다. 병역은 양 눈의 시력 차이가 큰 ‘부동시(不同視)’로 면제받았다.

윤석열은 사람 챙기는 것과 술자리를 좋아하고 오지랖도 넓은 편이라 사법고시 2차에 번번이 미끄러졌다. 1982년부터 10년 가까이 시험에 도전했다. 신림동 고시촌의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겨지며 붙은 별명이 ‘신림동 신선’이다.

대학 졸업식 때 학사모를 쓴 윤석열(오른쪽). 졸업 뒤 기나긴 고시 준비 시절을 겪으며 '신림동 신선'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사진 윤석열 캠프

대학 졸업식 때 학사모를 쓴 윤석열(오른쪽). 졸업 뒤 기나긴 고시 준비 시절을 겪으며 '신림동 신선'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사진 윤석열 캠프

주변인들에 따르면, 이 시절 윤석열은 결혼한 친구 부탁을 받고 자녀를 봐주기도 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친구 조부모가 상을 당하면 상여를 메고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는 얘기도 있다. 지방에 있는 친구가 결혼 소식을 알리면 내려가 함을 지기도 했다.

윤석열은 사법고시 9수 끝에 1991년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조윤선 전 장관, 강용석 변호사 등이 있다.

권력 수사를 마다치 않는 강골 검사

윤석열이 첫 직장인 검찰 생활을 시작한 건 34세였다. 선후배와 친화력이 좋았고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조직 적응은 무난했다.

윤석열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검사로 임용돼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4세때 일이다. 사진 윤석열 캠프

윤석열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검사로 임용돼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4세때 일이다. 사진 윤석열 캠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윤석열의 ‘강골’ 기질이 처음 싹을 드러낸 건 1999년이었다. 윤석열은 김대중 정부 경찰 실세인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박 국장은 호남 출신으로 모든 경찰 정보를 주무르는 핵심인사였다.

이후 윤석열은 검찰 내부에서도 ‘보통이 아닌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승진은 물 건너간 외골수’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후일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임명되자,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윤석열과는 악연이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우리도 혼이 났다. 청와대에도 ‘(임명)하지 말라. 당신들 죽는다’고 말렸다”고 말한 바 있다.

윤석열은 2002년 잠시 검찰을 떠나 1년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이 ‘이용호 게이트’에 휘말려 사퇴해 검찰 안팎으로 어수선한 시기였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나이도 있고 이제 결혼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권유한 것도 변호사 생활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가 돼서도 검사 체질을 못 버려 동료들을 당황하게 했다. 의뢰인에게 “그런 일 하면 안 되잖아요”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검찰청에 업무차 들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철가방 속 짜장면 냄새를 맡고는 검찰로 복귀한다. 밤샘 수사 때 먹은 짜장면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03년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윤석열은 불법 정치자금 수사를 맡아 노 전 대통령의 측근에 칼을 겨눴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03년 불법 대선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윤석열은 불법 정치자금 수사를 맡아 노 전 대통령의 측근에 칼을 겨눴다. 중앙포토

검찰로 복귀한 윤석열은 2003년부터 권력 중심부를 타격하는 대형 수사를 맡아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맡아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사건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 정무팀장)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를 담당해서는 사표를 각오하고 밀어붙인 끝에 정몽구 회장을 구속기소 했다. 2011년엔 부산 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맡아 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채동욱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2006년 12월 7일 ‘론스타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가 윤석열 검사.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를 해나가던 시절이다. 강정현 기자

채동욱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2006년 12월 7일 ‘론스타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가 윤석열 검사.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를 해나가던 시절이다. 강정현 기자

윤석열은 이 시기 정권 실세와 재계 거물을 상대로도 권력의 눈치 보지 않고 수사 성과를 내며 승승장구했다. 2012년엔 아는 스님의 소개로 52세에 늦깎이 결혼하며 ‘검찰총장(검찰 총각 대장)’이라는 짓궂은 별명도 떠나 보냈다.

띠동갑인 아내 김건희씨는 윤석열에 대해 “남편은 거짓 없고 순수한 사람이다. 가진 돈도 없고 내가 아니면 결혼을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결혼 당시 윤석열의 통장엔 2000여만원 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혼 뒤 윤석열은 올해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총 재산 71억6900만원을 신고했다. 이중 윤석열 본인의 재산은 2억4400만원이고 나머지 69억2500만원은 김건희씨 명의다.

직장과 개인사 모두 잘 풀리는 것만 같았던 2013년, 윤석열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이 벌어졌다.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 첫해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았다. 윤석열은 본디 스타일대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게 칼을 겨눴다. 이 때문에 검찰 수뇌부를 비롯해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마찰을 빚었다. 윤석열은 검찰 내부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국정원 직원에 대해 압수 수색 및 체포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결국 업무에서 배제됐다.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2013년 10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윤석열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중앙포토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2013년 10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윤석열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중앙포토

윤석열은 이틀 뒤 국정감사장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나, 야당이 이걸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을 하겠냐’라고 말했다”라며 정권과 검찰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조 지검장을 바로 앞에 두고 한 말이었다. 윤석열은 이 자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당시 야당 인사들은 윤석열 폭로를 지지했지만 검찰 내부에선 도를 넘은 항명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적폐청산의 주역

윤석열은 이 일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이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기업으로 치면 부장에서 사원으로 강등되다시피 한 윤석열을 두고 검찰 내부에선 “조만간 옷을 벗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정권과 검찰 수뇌부에 찍힌 윤석열은 찬밥 신세였다고 한다. 당시 검찰 지인들에 따르면 길을 가다 윤석열을 보고도 본체만체하는 사람이 많았다. 선후배에게 전화해도 목소리만 듣고 바로 끊기 일쑤였다고 한다.

하지만 3년이 채 되지 않아 윤석열에게 믿기 힘든 기회가 찾아왔다. 2016년 말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국정농단 사태를 특검으로 수사하라는 국민의 압력이 거세졌다. 박영수 특검이 시작됐고 윤석열은 수사팀장으로 합류했다. 박근혜 정부에 맞섰던 윤석열의 합류로 특검 성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에 윤석열이 수사팀장으로 합류했다.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출근하는 모습. 중앙포토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에 윤석열이 수사팀장으로 합류했다.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출근하는 모습. 중앙포토

당시 박영수 특검의 성공 여부는 박근혜-최순실-삼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밝힐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윤석열은 그중 삼성 수사를 맡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죄로 구속기소했다. 박근혜ㆍ최순실ㆍ이재용 모두 구속 수감되면서 특검은 성공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마무리됐다. 윤석열은 이후 ‘국민 검사’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과 ‘공정’의 기치를 걸고 국민 지지 속에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윤석열을 검찰 수사의 핵심조직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지검장 직급을 변경하면서까지 임명할 정도로 정권의 신임이 높았다.

2017년 5월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청사로 첫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된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고위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우상조 기자

2017년 5월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청사로 첫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된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고위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우상조 기자

윤석열은 임명된 즉시 과거 자신을 좌천시킨 문제의 사건인 ‘국정원 댓글 사건’을 파헤쳤다. 전 정권에서 수사를 방해했던 검사들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기소했다. MB의 최측근 비서관까지 수사한 끝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구속기소했다. 윤석열은 전 정권 사법 농단의 장본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기소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내건 ‘적폐청산’ 수사의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수사는 대체로 국민의 지지 속에 마무리됐지만, 1년 새 보수 정권의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 수감시켜 윤석열은 보수를 무너뜨린 주범 취급을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평가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정반대로 바뀌었다.

대통령감으로 지목된 검찰총장

2019년 7월 문 대통령은 윤석열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전임 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은 파격으로 검찰 역사에 없는 기록이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선 “윤석열이 지독한 원칙주의자라서 정권에 해가 될지 모른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안정보다 파격을 택했다.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이 ‘검찰 개혁’의 주역이 돼주기를 기대했다. 하나의 축은 윤석열이었고, 또 하나의 축은 한 달 뒤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는 조국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두 사람 간에 벌어진 일은 국가적 수준의 갈등으로 비화한다.

2019년 7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부인 김건희 씨가 청와대 본관에서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시작을 기다리며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불과 한 달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뉴시스

2019년 7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부인 김건희 씨가 청와대 본관에서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 시작을 기다리며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불과 한 달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뉴시스

윤석열이 총장 취임 뒤 휴가를 간 동안,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딸의 입시 비리의혹, 아내 정경심 교수의 사모펀드 의혹, 웅동학원 비리 의혹 등이었다. 윤석열은 휴가 중 ‘임명장 만져보니 아직 잉크도 안 말랐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조국 수사가 벌어지고 한 해 뒤 윤석열은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 수사를 할지 말지에 대해 저도 인간이라서 번민을 했다”고 말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윤석열 앞에는 조국에 대한 고소·고발장이 쌓여 있었다. ‘전격 수사’ 모드에 돌입한 윤석열은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여권 인사들은 “윤석열 검찰의 조국 수사는 ‘인디언 기우제’ 식 과잉 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사안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수사를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너무 가혹했다”고 평가했다.

야당에서도 수사가 거칠었다는 반응이 일부 있었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9월 한 토론회에서 “결코 조국 수사가 부당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과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조국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은 극명히 나뉘었다. 윤석열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이었다. 검찰총장실에 “총장님, 엿 좀 드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엿이 소포로 배달되는가 하면, 대검찰청 앞에는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쫙 줄 서 있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2019년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 광경.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조국 장관을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 광경.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조국 장관을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은 권력을 겨눈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조국 수사에 이어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였다. 이러다 보니 청와대가 임명한 검찰총장을 여당이 비난하고 야당이 옹호하는 보기 힘든 광경도 연출됐다.

조국이 물러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앉으면서 상황은 반전을 맞는 듯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강경하게 윤석열을 몰아붙였다. 검찰 인사를 단행해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을 대거 교체했다. 총장 직속 수사를 막으면서 윤석열을 ‘식물 총장’으로 만들었다.

두 사람은 총장이 장관 부하냐 아니냐 다투면서 대립했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2020년 1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 집행 정지'를 명령했다. 김상선 기자

2020년 1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 집행 정지'를 명령했다. 김상선 기자

문재인 정부의 압도적 신임을 받으며 검찰총장이 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윤석열은 역적으로 몰리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반작용’도 거대했다. 차기 대권 주자로 단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윤석열은 지난 3월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걸 더는 지켜보기 어렵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지난 6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리고 4개월 만에 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초보 정치인 윤석열의 도전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평탄한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정치 행보 시작 후 하루가 멀다고 논란이 터져 나왔다. 말을 할 때 고개를 자주 돌리는 습관이나 다리를 지나치게 벌리는 자세 등이 문제시됐다. 토론회 때 손바닥에 보였던 ‘王(왕)’자는 ‘천공 스승’이라는 인물과 맞물려서 무속에 의지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한 TV토론회 중계화면에 잡힌 윤석열의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MBN 유튜브 캡처

한 TV토론회 중계화면에 잡힌 윤석열의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MBN 유튜브 캡처

가장 큰 리스크는 그의 말실수였다. 대중적 화법이나 미디어 대응에 익숙하지는 못한 탓에,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 문제가 됐다. 코로나 관련해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라거나 “주당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은 논란을 낳았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두고 “군사 쿠데타와 5ㆍ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는 발언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비판받았다. 뒤늦게 송구하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반려견 토리에게 ‘사과’를 건네는 사진을 인스타에 게재하면서 국민 조롱 논란으로 번졌다.

대선일까지 윤석열에게는 여러 리스크가 남아 있다. 고발 사주 의혹이나 검찰 후배 관련 뇌물수수 무마 의혹처럼 검찰 권력을 남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요양병원 설립·운영 과정 때문에 징역형을 선고받은 장모와 주가 조작 사건 연루 의혹을 받는 아내 문제도 명쾌하게 해결된 상황이 아니다.

불법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수십억 원대 요양급여를 부정수급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장모 최모 씨가 지난 7월 1심 선고 재판을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최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뉴스1

불법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수십억 원대 요양급여를 부정수급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의 장모 최모 씨가 지난 7월 1심 선고 재판을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최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뉴스1

윤석열은 검사로서는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막 검증 받기 시작한 인물이다. 특히 원칙주의자 기질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때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 태도로 칭송받지만, 국민을 대하거나 정책을 조율할 때는 독불장군 혹은 안하무인으로 오해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제 윤석열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최종 격돌을 앞두고 있다. 예민한 감각과 임기응변이 필요한 대선판에서 윤석열은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인생 최대 승부처에 선 윤석열 앞엔 4개월의 시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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