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또는 정부와 추가 재난지원금 문제를 논의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 주장과 관련해 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후보는 재난지원금의 추가 지급을 “적극 추진해달라”고 민주당 등에 주문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고려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의 입장은 김부겸 국무총리의 발언과도 상통한다. 김 총리는 전날 “당장은 재정 여력이 없다”며 이 후보 주장에 부정적인 뜻을 드러냈고, 이는 당·정 갈등으로 부각됐다.
이와관련 총리실 핵심 관계자는 “예산 편성 절차 등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치권에선 ‘미래 권력’ 대 ‘현재 권력’의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안팎에선 “청와대의 불편한 입장이 김 총리 입을 통해 전달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정세균 총리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정치권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총리의 모든 발언은 청와대와 조율된 상태에서 나온다고 보면 된다”며 “예산이라는 게 다 계획이 있는데 이 후보가 너무 치고 나가니까 청와대의 불편한 기류가 김 총리 발언에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내부엔 이 후보가 주장하는 추가 재난지원금과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있다. 또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는 이 후보가 말한 재난지원금과 관련이 없다.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갔으니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며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을 밝혔다.
다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추가 확보되는 세수와 관련해 “국민들의 어려움을 추가로 덜어드리면서, 일부를 국가채무 상환에 활용하겠다”는 두 가지 목표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전자의 목표와 관련해 “(코로나19) 피해 계층을 두텁게 보호하는 데 최우선을 두겠다”며 ‘선별적 지원’ 의사를 밝혔고, 그 대표 예로 손실보상법에 따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을 얘기했다.
김 총리의 전날 발언도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같은 맥락이다. 김 총리는 “피해가 1년 반 이상 누적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중에서도 손실보상법으로 도와드릴 수 없는 분이 너무 많다”며 “이분들을 어떻게 돕느냐가 지금 정부로서는 제일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후보는 국민 1인당 30만~50만원을 재난지원금으로 지급하자는 ‘보편적 지원’ 주장을 펴고 있다. 게다가 단순 추산으로도 15조 5000억원에서 25조 8000억원이 필요하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올해 추가 세수액은 8조 7000억원, 이 후보 주장대로 하려면 추가 세수를 다 써도 부족하다. 문 대통령의 입장과 이 후보의 주장은 배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만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김 총리가 (이 지사 주장에) 원천적인 반대를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김 총리 발언은) 10조원 정도 되는 추가 세수를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며 “당정 협의와 국회 협의로 접점이 찾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재난지원급 지급을) 미리 짜고 치는 것도 아닌데, 각자 입장이 엇갈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일각에선 잡음이라고 보겠지만, 충분히 논쟁을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