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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구급차 그냥 오세요" 요소수 공짜로 주는 착한 주유소

중앙일보

입력

요소수 품귀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4일 광주 광산구 하남동의 화물공영차고지에 화물차들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요소수 품귀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4일 광주 광산구 하남동의 화물공영차고지에 화물차들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이번 주말이 차를 멈출지 말지 가를 분수령이 될 것 같아요.”

화물운송업체를 운영하는 황태웅(44)씨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황씨의 회사는 대형업체로부터 물품을 받아 컨테이너에 넣은 뒤 화물차에 싣고 인천 신항으로 운반한다. 인천, 부산, 경기도 평택 사무소 3곳에서 한 달에 운반하는 컨테이너랑은 35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분) 정도다.

황씨는 최근 화물 운송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늘었다고 했다. 요소수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화물차 운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매일 불안해서다. 화물차 70여대를 운행하는 그는 평소 기름을 넣기 위해 인천 신항 주변 주유소를 찾을 때마다 한 번에 40~50리터씩 요소수를 구매했다고 한다. 그러나 2주 전부터 주유소들이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는 요소수량을 최대 10리터까지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공급량이 부족해 수급을 조절한다는 이유였다. 요소수가 부족하면 화물차를 멈춰야 하는 상황. 황씨는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물류대란도 먼일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시작된 요소수 품귀현상이 계속되면서 항만에 컨테이너를 공급하는 화물운송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화물차가 달리기 위해 필요한 요소수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운행 중단을 고민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하늘의 별따기 된 요소수 찾기 

국내 요소 수입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 요소 수입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요소수는 디젤차에서 나오는 배출가스의 일종인 질소산화물을 줄여주는 촉매제다. 버스나 트럭 등 디젤차에 다는 배출가스저감장치(SCR)에 필수로 넣어야 한다. 국내 디젤 화물차 60%는 SCR이 장착돼있는데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많아 100㎞를 달릴 때마다 요소수 1리터를 보충해야 한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2015년 ‘유로6’라 불리는 환경 규제로 경유차에 의무적으로 요소수를 투입하게 했다. 유로6 적용 차량은 요소수가 없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석탄 부족 등을 이유로 석탄에서 뽑아내는 요소 수출을 사실상 막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산업용 요소의 97%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쓰는 상황에 다른 나라보다 디젤 차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국내 현실이 겹치면서 요소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요소수 가격도 치솟고 있다. 1리터에 900원 남짓했던 요소수 가격이 6000원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리터당 1787원인 휘발유보다 3배 이상 비싸졌다. 금값이 됐지만, 그마저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화물운송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자구책 마련 나선 항만 화물업체 

상황이 이렇자 화물운송업체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먼저 요소수가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는 구형 화물차 물색에 나섰다. 유로6 엔진을 도입한 신형 화물차는 300㎞ 주행 시 요수수가 10리터정도 소요된다. 반면 유로5 엔진인 구형 화물차는 300㎞ 주행시 2~3리터정도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일본과 미국에서 단체로 요소수를 직수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미국에서 요소수를 국내에 들여올 경우 1리터당 3500원 정도다. 일본은 1리터당 3000원 정도에 들여올 수 있다고 한다. 박유복(57) 정로종합물류 대표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비싸게 수입했는데 상황이 나아져서 요소수 수급이 잘 풀리면 결과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방차에 요소수 무료 제공한 주유소 

4일 인천시 서구 S-OIL 가좌 IC주유소(대표 김준회·40)에는 '소방차, 119구급차 요소수 급하면 그냥 오세요,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정해네트웍스(주)계열사 일동)'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게재됐다. 김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소방차량에 요소수 무료 나눔에 나섰다. 사진 독자 제공

4일 인천시 서구 S-OIL 가좌 IC주유소(대표 김준회·40)에는 '소방차, 119구급차 요소수 급하면 그냥 오세요,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정해네트웍스(주)계열사 일동)'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게재됐다. 김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소방차량에 요소수 무료 나눔에 나섰다. 사진 독자 제공

4일 인천과 서울의 몇몇 주유소에 ‘소방차, 119구급차 요소수 급하면 그냥 오세요,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이란 문구의 현수막이 걸리면서 화제가 됐다. 김준회 정해네트웍스 대표가 운영하는 인천 남동구·서구·부평구, 경기 김포시, 서울 광진구의 6개 주유소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부터 자신이 운영 중인 주유소에서 소방차·구급차를 대상으로 요소수를 무료로 제공했다. 3리터짜리 요소수 총 120개다. 품귀현상이 벌어지면서 중고마켓 등에선 500만원 정도로 거래되는 양이라고 한다. 소방당국이 운영하는 소방차량 6748대 중 80.5%, 구급 차량 1675대 중 90.0%는 요소수를 사용한다. 앞서 소방 당국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재고 관리에 들어갔다.

김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렵게 구한 요소수를 팔았는데 다시 비싼 가격에 되팔이 하는 경우를 보고 화가 났다”며 “요소수 부족으로 소방차와 구급차가 멈출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역사회에 봉사할 기회라고 생각해 20년간 거래했던 곳에 사정사정해 구한 요소수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요소수 품귀 사태가 심각해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급한 차량용 요소수를 구하기 위해 기존 산업용 요소 일부를 차량용으로 쓸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요소수는 차량용으로 쓰는 요소수보다 배출량 저감 정도가 낮다. 그래서 관련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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