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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스트롱맨 후보들과 좁은 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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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오늘 오후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내년 3월 대선의 주요 구도는 스트롱맨 후보들 간의 대결로 짜이는 셈이다. 참으로 대조적인 인생 길을 걸어왔지만, 여야 1, 2번 정당 대선 후보들은 서로 간에 닮은 점이 없지 않다. 후보들의 캐릭터, 대표 공약, 지지자들의 기대를 들여다보면, 바야흐로 한국 정치에 스트롱맨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부드러운 덕장의 이미지보다는 강렬한 투사의 이미지가 이들을 대선 무대의 주연으로 끌어올렸다. 실제 대표 슬로건 역시 저는 “합니다” “정권교체 하겠습니다”로 요약된다.

스트롱맨 리더는 요즘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바람이다. 미국의 트럼프는 잠시 밀려나 있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대표적인 스트롱맨 리더들이다. 민주주의 세계에서도 스트롱맨 바람은 거세다. 세계 최대의 민주국가 인도는 민주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형적인 스트롱맨 리더인 나렌드라 모디가 8년째 이끌고 있다.

여야 모두 스트롱맨 후보 내세워
삶의 불안과 정치 불신이 요인
강한 리더십은 절반의 정치일 뿐
강한 리더, 사회의 기를 되살려야

지구촌 곳곳에서 스트롱맨들이 등장하고 우리 역시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는 현상이 우연일 수는 없다. 두 가지 논점을 생각해보자. 첫째는 원인. 스트롱맨 현상은 고단한 삶에 대한 피로와 무능한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겹치면서 만들어지는 태풍이다. 삶의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박탈감과 기성정치의 파탄이 이들 강한 리더를 불러내고 있다.

둘째는 스트롱맨 리더의 역설적인 과제. 강한 리더는 미래로 가는 엔진의 한 축에 지나지 않는다. 뻣뻣한 나무가 태풍에 먼저 부러지듯이, 강한 리더만으로는 정치경제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누릴 수 없다. 강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사회(자율적인 시민사회와 언론)가 반드시 같이 기를 펴야만 한다. 과연 우리의 여야 스트롱맨 후보들은 강한 정부와 강한 사회가 함께 통과해야 할 좁은 문, 즉 삶의 질을 제대로 누리는 소수의 나라들만이 통과한다는 그 좁은 문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까.

먼저 스트롱맨 시대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흔하게 거론되는 이유를 이미 충분히 들어왔다. 경제 양극화, 빈곤층의 증가, 소셜 미디어 시대의 정치 양극화, 청년 실업의 폭발과 청년들의 좌절, 이민자들을 포함한 소수자들에 대한 적대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나 최근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배경 역시 양극화 사회의 허무와 좌절을 그려낸 까닭이다.

결국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정부와 정치의 역할이지만 사람들은 정부와 정치로부터 꾸준하게 배신당해왔다. 정부는 수백 조원의 돈을 교육, 주거, 실업해소, 청년고용에 쏟아 붓고 있지만,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나빠져 왔다. 사람들은 안다. 복잡한 이론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그 수많은 돈이 관료제의 미로 속에서 그리고 경직되고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사실을.

정부를 감독하고 이끌어야 할 정치 역시 사람들을 배신해왔다. 여야 정당들의 무한 대립, 다수파의 이념 실험의 폭주 속에서 가난을 구제하고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정부의 정책은 덩치만 커졌을 뿐 실제 사람들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지는 못하고 있다.

쌓이고 쌓인 허무와 분노가 스트롱맨 후보들을 불러낸 셈이다. 기존에 정부가 일하는 방식, 기존에 정치가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스트롱맨 후보들의 쾌도난마를 응원하고 있다. 복잡한 절차에 얽매이기보다는 당장 가시적 결과를 내놓겠다는 여당 후보의 공언은 적지 않게 메아리친다. 기존의 상식과 법 규범을 넘어서라도 폭주하는 부동산과 자영업 위기를 잡겠다는 약속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야권의 스트롱맨 후보 역시 기존의 쌓인 문제들을 속 시원히 정리했으면 하는 지지자들의 바람을 안고 부상하였다. 정부가 추진했던 최저임금 정책, 에너지 전환 정책, 부동산 정책, 사법 개혁정책 등이 불러온 혼란과 불안을 단번에 정리했으면 하는 것이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결국 여야의 열성 지지자들 모두 스트롱맨 후보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거대한 권력의 망치로 지금의 무질서와 좌절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당 스트롱맨 후보에게 바라는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평준화의 망치라면, 야당 후보에게 기대하는 것은 질서 회복의 망치일 것이다.

어느 후보가 내년에 승리하든 우리는 스트롱맨 대통령과 5년을 함께하게 된다. 당파적 지지자들은 강한 대통령, 강한 정치에 열광하겠지만 강한 정치는 반쪽짜리 정치이다. 분명한 목표와 집요한 실행력을 지향하는 강한 정치는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는 민주정치에 질서를 부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강한 리더가 언론과 시민의 강한 견제를 받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이야기에 그치고 만다. 학자들은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은 강한 정치와 강한 사회가 공존하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이제 우리는 스트롱맨들과 함께 그 좁은 문 앞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