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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줄기에 단 센서, 집앞 텃밭을 스마트 농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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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유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⑩ 이정훈 텔로팜 대표

반도체 가공기술을 활용해 식물 생체정보 수집용 초소형 센서를 개발한 텔로팜 이정훈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관악구의 스마트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반도체 가공기술을 활용해 식물 생체정보 수집용 초소형 센서를 개발한 텔로팜 이정훈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관악구의 스마트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3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낙성대 인근에 있는 한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니 지름 3.5㎝ 크기의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무게가 70~80g으로 일반 방울토마토보다 7배쯤 더 나갔다. 한입에 넣으면 씹기조차 힘든 정도였다. 맛은 어떨까. 당도 측정을 해보니 14브릭스(Brix)가 나왔다. 딸기 맛이 달게 올라왔을 때와 비슷한 수치다. 일반 방울토마토의 달기는 7~8브릭스다.

딸기처럼 달콤한 ‘왕방울토마토’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파리들은 하나같이 시들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열매만 싱싱하게, 그것도 큼지막하게 달리는 걸까. 애초에 이렇게 개량된 신품종인가. 이런 궁금증이 저절로 생기던 순간, 이정훈(55) 텔로팜 대표가 검은색 후드티 차림에 태블릿PC를 들고 나타났다.

농작물 수분·영양분 실시간 측정
햇빛·온도 등 최적 조건 만들어줘
최근 주목받는 도시농업 활성화
비용 감소, 생산량 증대 ‘1석2조’

“놀라셨지요? 사실 시중에 나오는 일반 방울토마토와 같은 대장금이라는 품종입니다. 토마토가 물이 필요한 때를 정확히 포착해, 딱 그때만 물을 줬더니 이렇게 크게 자란 것이지요.”

이 대표는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설명을 이어가며 딸기만큼 당도가 높은 ‘왕방울토마토’를 소개한다. 이 비닐하우스는 132㎡(약 40평) 남짓한 넓이다. 지금은 방울토마토와 머스크멜론을 키우고 있다. 2017년 창업한 텔로팜의 연구실 겸 영업 현장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작물을 체험하면 이 회사의 ‘진짜 실력’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서다.

이정훈 대표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정훈 대표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비밀은 바로 손톱 크기의 센서에 있다. 방울토마토 줄기마다 손톱만한 센서가 달려 있고, 그 센서에 붙은 바늘이 줄기에 꽂혀 있다. 센서에는 가로 0.5㎜, 세로 0.6㎜, 0.1㎜짜리 반도체 칩이 들어간다. 이 작은 반도체칩이 식물의 수분 흐름과 병충해 감염 등을 파악하는 열쇠가 된다. 텔로팜이 반도체 가공기술을 활용해 개발했다. 관련 특허도 30개나 된다.

“식물 줄기에 바늘을 꽂으면 물의 흐름과 광합성, 영양분 흡수 정도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혈압과 맥박을 재는 거지요. 또 농작물과 농장 전체를 사물인터넷(IoT)화하면 햇빛·온도·비료·주변 곤충 등에 식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지요.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설정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농부들이 수십 년 동안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체득한 ‘농사 노하우’를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안에 얻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식물이 필요한 만큼만 자동으로 물이나 비료를 주기 때문에 농사비용을 아낄 수 있다. 낙성대 하우스의 경우 기존 대비 물 사용량은 60%가량 감소하는 대신 작황은 50% 개선됐다.

이 대표는 “물을 줄이면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대신 당도는 올라간다”며 “검침 센서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필요한 만큼만 물을 주기 때문에 (식물이) 말라죽지 않고 잘 자란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프로 농사꾼’ 될 수 있어

텔로팜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분산농업’이다. 분산농업은 집 마당의 텃밭처럼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 농업을 말한다. IoT가 발달할수록 농업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다. 누구나 프로 농사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 대표는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에서는 이미 유휴공간을 이용한 버티컬팜(수직형 식물공장) 같은 도시농업이 유행하고 있다”며 “농업이 가까이 다가오고,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오게 하는 게 궁극적인 사업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마트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내년까지 4080억 달러(약 48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시장도 매년 5%씩 성장해 내년이면 6조원 가까이 될 전망이다.

농업의 ‘치유 효과’를 통해 부가 사업에도 도전한다. 이른바 ‘치유농업’이라고 불리는데 최근 식물 심기나 텃밭 만들기 등이 뇌의 전두엽을 안정화해 심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텔로팜은 작게라도 농사를 짓고 싶지만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농업 메타버스’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농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한 뒤 소비자가 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이때 식물에 설치한 센서에서 “주인님, 물 주세요”라고 알림이 오면 앱에서 버튼을 눌러 물주는 기계를 작동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 발전하면 이렇게 재배한 농작물을 거기에 실어서 거래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회사 수익은 어떻게 낼까. 이 대표는 로열티 비즈니스를 구상 중이다. 농장 단위로 계약을 맺어 검침 센서와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기존의 농업 방식 대비 줄어든 비용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것이다. 늘어난 매출의 일부도 받게 된다. 비료나 살충제, 물값이 적게 드는 만큼 여기에서 일정 부분을 받고 생산량이 늘기 때문에 발생한 매출에 대해서도 수익을 나눈다.

이 대표는 “이렇게 되면 해당 농장에서 발생하는 총생산량의 1~2%가 우리 매출이 된다”며 “5년 이내에 연매출 1600억원을 내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나노기술 전공한 서울대 교수 창업

농업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대표의 전공 분야는 초소형 정밀기계기술(MEMS)이다. 현직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이기도 하다. 기계공학 전문가로는 나노 기술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 개발에 엔지니어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이 대표는 “엊그제도 NGS 기술에서 들어온 로열티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로는 주로 바이오 분야를 연구했는데, 이때 동물에 적용되는 시스템이 식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바늘을 사람 뇌에 꽂아서 생체 신호를 얻어내고, 자극을 줘서 병을 치료하는 ‘심부뇌자극술’을 말하는데, 그는 이 기술을 식물에 응용해 센서를 만들어냈다.

크기가 작아 주변에 영향을 주지 않고, 가격을 낮추면서 전력 사용도 줄일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모든 농작물 재배를 데이터화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존에는 없었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텔로팜은 강원도 양양군과 손잡고 내년에 ‘스마트 온실’을 개설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메타버스 농업 플랫폼도 적용된다. 이 대표는 “국내 농업 시장은 규모가 작고 변동이 커서 농민들이 돈을 벌기엔 힘든 구조”라며 “센서에서 나온 2차 신호를 재처리하면 메타버스 앱을 만든다든지, 농장 체험 프로그램을 실감 나게 만든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캘리포니아 진출해 수익 낼 것

이 회사는 2019년 매출 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3억원 수준이었다. 올해는 10억원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5년 내 매출 1600억원을 장담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해외 진출이다.

이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미래 승부처로 본다. 현재 현지 법인을 설립 중이다. 와인과 각종 과일, 아몬드부터 대마초까지 대규모 농업이 이뤄지는 캘리포니아에서 농장 단위로 계약을 진행하는 게 목표다. 최근 엘니뇨·라니냐와 같은 기후 변화로 물 부족이 심각한 캘리포니아에서는 물을 줄이는 기술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다.

“캘리포니아는 한 해에 와인 생산만 46조원어치를 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몇 마을에서는 1인당 물 사용량까지 제한할 정도로 물 부족이 심각합니다.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농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전문가들은 텔로팜의 신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분석한다. 스마트팜 사업을 추진 중인 강성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자원순환기술처장은 “기존에도 토양에 센서를 심어 식물의 상태를 측정하는 기술이 있었지만, 식물 줄기에 직접 꽂는 방식보다는 정확도가 떨어졌다”며 “당장 천연기념물 등에 칩을 꽂아 관리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승국 경희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텔로팜 센서는 크기가 아주 작아 줄기가 작은 식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버티컬팜의 경우 설치와 관리에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