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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짝퉁 논란 벽화, 언제까지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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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술시장 호황과 대비되는 공공미술

① ‘뱅크시 짝퉁’ 논란이 일고 있는 SRT 서울 수서역 승강장 벽화. 2021년 10월 27일 사진. 문소영 기자

① ‘뱅크시 짝퉁’ 논란이 일고 있는 SRT 서울 수서역 승강장 벽화. 2021년 10월 27일 사진. 문소영 기자

어제부터 서울의 미술 컬렉터들이 대구로 몰려가고 있다고 한다. 2021년 대구 아트페어가 개막해서 7일까지 열리기 때문이다. ‘키아프(KIAF) 서울’을 주최하는 한국화랑협회가 올해 처음으로 대구 아트페어를 공동 주관한다. 역대 최고 매출(650억원)을 올린 지난달 키아프에서 작품이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바람에 미처 사지 못한 서울 컬렉터들이 대구에서 만회를 하겠다고 잔뜩 벼른다는 소문이다.

대구에 가기 위해 수서고속철도(SRT) 서울 수서역을 이용하는 아트 컬렉터 중에는 6번 승강장의 벽화를 보고 깜짝 놀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얼굴 없는 게릴라 벽화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그림 같은 것이 SR 기차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으니까 말이다(사진1).  잘 보면 뱅크시가 2006년 런던 동부에 그린 벽화 ‘카펫 밑으로 쓸어 넣기(Sweep It Under The Carpet)’와 거의 똑같다(사진2). 빗자루가 사라지고 벽돌 벽이 바다로 바뀐 것 외에는 차이가 없다.

미술 붐이라지만 공공미술은 정체
고속철도 수서역엔 ‘뱅크시 짝퉁’
천억 들인 ‘우리동네 미술’도 논란
미술시장과 공공영역 균형 맞아야

이 벽화는 SRT를 운영하는 공기업 SR이 지난해 5월에 설치한 벽화들 중 하나다. 이미 한 번 소셜미디어에서 ‘짝퉁’ 논란이 일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무 조치 없이 남아있다. ‘짝퉁’이 아닌 ‘패러디’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까? 패러디는 원작을 유머러스하게 비트는 것이지만, 이 벽화는 그렇지 않다. 오마주는 원작의 의미에 대한 존중을 담아 새로운 맥락에 적용하는 것이지만 이 벽화는 그것도 아니다.

② 영국 작가 뱅크시가 2006년 런던 동부 거리에 그린 벽화. [중앙포토]

② 영국 작가 뱅크시가 2006년 런던 동부 거리에 그린 벽화. [중앙포토]

뱅크시의 원작은 영어에서 ‘카펫 밑으로 먼지를 쓸어 넣다’가 ‘불편한 진실이나 치부를 사람들의 눈에서 감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에 착안해서 당시 열리던 국제회의 의제들을 풍자한 것이며, 또한 전형적인 유럽 호텔 청소원 복장의 인물을 통해 소외된 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서역 벽화가 오마주라면 이 의미를 존중해 한국적 현실에 적용한 것이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데다가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없다. 바다에 대고 쓰레받기를 털다니 모두 함께 환경파괴라도 하자는 것인가?

SR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이번 벽화는 세종대학교 회화과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져 공공기관과 학교가 협력하여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모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확실히 모범 사례가 되긴 할 것이다. 외국인도 많이 오가는 거점 역에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공공미술을 설치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모범 사례 말이다. 실력이 검증된 프로 미술가에게 합당한 보수를 주고 의뢰했다면, 자존심과 양심 때문에라도 이렇게 의미도 안 맞는 모방작을 버젓이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재능기부에 의존하는 공공 벽화 퀄리티에 대한 논란은 이미 7~8년 전부터 시작됐다. 공공 벽화 프로젝트의 기원을 따져보아도 재능기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기원은 미국 대공황 시대(1929~33)의 ‘뉴딜 벽화(New Deal murals)’다.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한편 미술관에 갈 여유가 없는 서민들에게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주기 위해, 루스벨트 정부가 화가들을 고용해 우체국 같은 공공기관에 벽화를 그리게 한 것이다.

그런데 돈만 투입된다고 해서 공공미술의 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뉴딜 벽화’와 똑같은 취지로, 즉 코로나19로 피해 입은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우리 동네 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올해 여름 종료했다. 무려 1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전국 228개 시·군·구에 약 4억원씩 할당해서 공공미술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물로 나온 작품 중 다수가 안타깝게도 퀄리티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한국판 뉴딜 벽화의 민망한 수준

심지어 어떤 작품은 ‘짝퉁’ 논란이 일었다. 경기도 양주시가 올해 1월 ‘우리 동네 미술’ 프로젝트 결과물로 소개한 작품 중에 신촌마을 벽화가 있었는데, 벽화 윗부분은 한국 추상화 거장 김환기(1913~1974)의 ‘항아리와 매화’(1954)와 닮았으며 아랫부분은 미국의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1958~1990)의 ‘춤’ 연작과 빼닮았다. 저작권 문제와 표절 시비는 둘째 치고, 달항아리와 춤추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관련이 있으며, 이들이 양주시라는 공간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전국을 다니며 ‘우리 동네 미술’ 프로젝트 결과물들을 꽤 보았는데, 90%가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공공미술 전문가이며 2018년 강원 국제비엔날레 등을 감독한 미술평론가 홍경한은 이렇게 말했다. 홍 평론가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이 프로젝트가 ‘졸속’으로 기획되었고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꼽았다. 원래 지난해 여름에 시작해서 올해 2월에 끝나는 스케줄이었는데, 기획·공모·작가선정·작품제작 소요 시간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스케줄이다. 그나마 종료가 올해 여름으로 늦춰졌지만, 시민·전문가의 의견을 모으고 작품을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외국 공공미술 사례들을 보면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년 1월 6일 개관하는 울산시립미술관의 서진석 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아름다움·독창성 등의 예술성, 설치되는 지역의 역사 및 현재와 관련된 사회성, 그리고 지역의 작가들을 배려하고 생계를 지원하는 정치경제성이다. 그중 예술성과 사회성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성이 우선순위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는 공무원을 포함한 한국인 전반의 미술에 대한 평균적인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지난 1년간 한 번이라도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은 15세 이상 인구의 13%였다. 같은 기간 박물관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인구는 15.7%였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설령 한 명도 안 겹친다고 가정해도 합쳐서 28.7%에 불과하다. 반면에 영국의 경우, 2019년 문화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미술관·박물관을 아우른 뮤지엄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 16세 이상 인구의 절반인 50.2%였다(잉글랜드 지역 기준).

그렇다면 올해 들어서 ‘이건희 컬렉션’ 국가 기증, NFT아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랑·옥션·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한 미술시장의 호황으로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증했는데, 이것이 공공미술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미술시장 열기가 공공미술에 도움을 줄까

서 관장은 “먼 간접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직접적 연관은 없다. 지금의 미술시장 폭발은 미술을 작품으로 대하기보다 투자자산으로 대하는 미술의 금융상품화(financialization)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홍 평론가 역시 “미술시장은 달리는 말처럼 시야가 좁다. 시장이 호황이라고 해서 미술사적·미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시장이 아닌 미술영역, 즉 공공 미술관·비엔날레 등이 좋은 전시를 보여주어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다.”

미술전문가들이 시장영역과 비시장·공공영역 미술의 균형을 강조하는 이유는 전체적인 미술 저변이 탄탄하지 않은 채 시장만 불균형하게 과열되면 2007년의 경우처럼 거품 붕괴로 끝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지어 화랑과 경매사 관계자들도 걱정스러워하는 부분이다. 2007년 이후 미술시장은 오랜 침체를 겪어야 했다. 이런 버블 붕괴는 컬렉터와 화랑은 물론 미술계의 근간인 작가들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지나친 인기로 작품을 과다 창작한 젊은 작가들을 작품 가격의 폭락으로 충격과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비무장지대에서 11월 15일까지 진행되는 ‘2021 DMZ 아트 & 피스 플랫폼’ 전시의 예술감독인 미술사학자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술시장의 지나친 호황은 작품 값을 급등시켜 작품 구입 예산이 한정된 국공립 미술관 등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 뮤지엄 프라이스(국공립 미술관에는 작품을 시가보다 싸게 제공하는 것)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정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다만 지금의 미술시장 호황에서 한 가지 고무적인 부분은, 2007년과 다르게 자기 철학과 취향을 확고하게 갖고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젊은 컬렉터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2000년대부터 시작된 블록버스터 전시와 활발해진 해외여행으로 견문과 지식을 쌓은 세대다. 물론 여전히 미술작품을 코인처럼 단기매매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에 자기가 좋아하는 젊은 작가들을 후원할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해 장기 보유하는 2030 컬렉터도 있다. 이런 이들이 많아야 2007년과 같은 버블이 반복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미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공공영역의 두 날개가 균형을 맞추고 함께 날아야 한다. 아트페어에 가기 위해 향한 기차역에서 외국 작가를 그대로 모방한 벽화가 공공미술이라고 나와있는 이런 장면들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