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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도시공사만 못한 성남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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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검찰이 굵직한 의혹 수사를 시작하면 관련된 기관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 모드에 들어간다. 의혹의 당사자가 입을 다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답변하지 못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강제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은 문제가 생기면 자체적으로 원인을 규명해 시정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성남도시공사 “대장동 배임 소지”
화천대유 부당이익 환수책 제시
은수미 “당시 최선의 결정” 발뺌만

9월 중순부터 대장동 비리 의혹이 커졌지만 은수미 성남시장은 최근까지 침묵했다. 전임 시장이 소속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최종 후보가 됐으니 쉽게 말하기 어려운 처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남 시정을 책임진 사람으로선 너무나 소극적인 행보다.

은 시장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 당시엔 최선의 결정이었다. 사실관계를 파악한 결과 성남시는 부끄러운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민간업체에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 심려를 끼친 것은 죄송하고, 이익 환수를 위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을 삭제하면서 김만배씨가 대주주인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참여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뉴스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을 삭제하면서 김만배씨가 대주주인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참여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뉴스1]

정말 그 당시엔 최선의 결정이었을까. 구속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얻은 배당금과 분양이익은 6391억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추산으론 8500억원에 달한다.

유 전 본부장의 공소사실엔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일부 직원과 화천대유, 천화동인 세력이 내통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직원을 미리 공사에 심어두기까지 했다. 이들은 화천대유가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한 것은 물론이고 초과 이익을 독점하도록 했다. 사업이 시작된 2015년 당시 상황만 보면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아니라 ‘화천대유공사’였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곧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윤정수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 지난 1일 자체 조사 보고와 대응 방안을 공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윤 사장은 성남시가 수사 중인 사안이니 공개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우려를 표시했음에도 발표를 강행했다고 한다. 상급기관인 성남시의 말을 따르지 않았으니 돌출 행동을 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국민 보고와 대책을 공개한 것은 타당한 일이다. 윤 사장은 “통상적인 업무 처리 방식으론 실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보고 내용엔 ‘민간사업자가 제시한 분양가를 상회하여 발생하는 추가이익금은 출자지분율에 따라 별도 배당하기로 한다’는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2015년 5월 27일 7시간여 만에 삭제된 정황도 나와 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이지만 공사가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윤 사장은 “사업협약을 하는 과정에서 추가이익 분배 조항을 삭제한 적법하고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초과이익을 민간사업자가 독점으로 취득하게 하고 그에 반하여 공사에 같은 금액 상당의 손해를 가하여 업무상 배임이 성립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대응 방안도 내놨다. 유 전 본부장 등 관련 직원과 화천대유, 천화동인 관계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부당이익 반환 소송을 내는 것 등이다. 행정적으론 공사가 대주주인 성남의뜰 주식회사의 주주총회를 개최해 위법하게 배당했던 배당 결의를 무효라고 의결하고 대표이사가 부당이익 반환을 청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유 전 본부장에 이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가 구속됐지만 법원에서 죄가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세력은 부정한 이익을 숨기고 모처로 빼돌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차단하는 것도 서둘러야 한다.

성남시도 자체적인 조사를 한다고 하지만 언제 결과를 내놓을지 알 수 없다. 성남시는 산하기관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특정 세력의 이익 확대를 위한 도구가 된 것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 이사회엔 성남시 국장과 과장이 각각 이사와 감사로 참여했다. 왜 이들은 당시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나. 부끄러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성남시는 이 질문에 대한 답과 향후 대책을 신속히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