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1차전을 TV 중계로 지켜봤다. 둘 다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은 아니다. 그런데도 무척 흥미롭게 본 건 키움 선발투수 안우진 때문이다. 최고 시속 157㎞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로 1~4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5회도 2사 후 볼넷과 안타를 내줬지만 실점 없이 마쳤다. 6회를 다시 세 타자로 끝냈다. 내심 기대가 차올랐다. ‘오늘 완봉승, 적어도 완투승 보겠네’라는. 하지만 안우진은 7회에 2-2 동점을 허용하고 강판당했다.
포스트시즌 마지막 완투가 언제였나 찾아봤다. 2017년 10월 26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KIA 타이거즈 양현종이 두산을 상대로 기록했다. 공 122개를 던졌고, 탈삼진 11개, 1-0 완봉승이었다. 요즘은 포스트시즌은 물론 정규시즌에도 완투를 보기가 힘들다. 투수가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로 철저하게 분업화한 게 그 원인이다. 완투가 사라진 야구장에서 볼 수 없는 건 또 있다. 퍼펙트게임. 미국은 23번, 일본은 15번 나온 그 대기록. KBO리그에서는 언제쯤 그 장면을 만날 수 있을까.
1992년 프로축구 일화 천마가 전 소련 국가대표 골키퍼 샤리체프를 영입했다. 샤리체프는 그 전까지 10년간 유럽에서 0점대 실점을 기록한 세계적 선수였다. 일화는 샤리체프를 영입한 첫해 K리그 준우승을, 이듬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질세라 포철 드라간, 유공 샤샤 등 다른 팀도 외국인 골키퍼 영입에 나섰다. 한국인 골키퍼의 설 자리가 사라지자 골키퍼를 지망하는 유망주도 사라졌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K리그는 급기야 외국인 골키퍼 출전을 제한하고 나섰다.
지난여름 도쿄올림픽에서 여자배구는 가장 큰 감동을 준 종목이었다. 안타까움도 있었다. 라이트 공격수 김희진은 올림픽 석 달 전 무릎 수술을 받았다. 출전 강행 이유를 그는 “김연경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을 대신할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배구에서 라이트는 외국인 선수 전유물이다시피 됐다. 20년 전 축구 골키퍼처럼 외국인과 경쟁해야 하는 라이트는 유망주에게 기피 포지션이다. 김연경·박정아·이소영이 버틴 레프트와 대조적인 이유다.
지난달 ‘사이언스’에 모잠비크에서 상아 없이 태어나는 암코끼리가 증가했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이 실렸다. 1970~90년대 상아를 팔아 내전 자금을 마련하려고 코끼리를 밀렵했던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상아가 있는 코끼리의 선택적 살해가 상아가 없는 후손을 만들었다. 생존은 본능이고 그 수단은 적응이다. 퍼펙트게임이 요원한 야구장, 골키퍼 유망주가 사라졌던 축구장, 라이트 공격수를 기피하는 배구장. 우리는 그곳에서 상아 없는 코끼리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