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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레슨하던 그집 딸…유학생 드뷔시가 조기귀국한 까닭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26)

프랑스 문화예술계에서 로마대상은 영광스런 상이다. 로마대상은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한 중요한 행사였다. 음악 분야에서는 드뷔시 이전에 베를리오즈, 구노, 비제 등이 이 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프랑스 음악계의 쟁쟁한 기린아가 이 상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져 젊은 작곡가 드뷔시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 상을 받아 프랑스 음악계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올랐다. 드뷔시가 로마대상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22세 때인 1884년이었다.

수상자는 프랑스 정부가 제공하는 비용으로 3년 동안 로마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는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드뷔시는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로마로 떠났다. 그는 로마에 도착했고 메디치 빌라의 숙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토록 바랬던 로마에서의 유학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지만 고국을 떠난 로마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드뷔시는 1884년 로마대상을 수상해 프랑스가 제공하는 비용으로 3년간 로마에서 유학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진 pixabay]

드뷔시는 1884년 로마대상을 수상해 프랑스가 제공하는 비용으로 3년간 로마에서 유학하는 기회를 얻었다. [사진 pixabay]

과거에도 건방진 젊은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드뷔시는 2년을 로마에서 보냈으며 3년을 다 채우지 못했다. 파리에 대한 향수가 그를 자극했고, 이전에 교우했던 바즈니에 가문에 대한 그리움이 고국행을 재촉했다. 로마대상을 타기 전 드뷔시는 바즈니에 가문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파리의 바즈니에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드뷔시는 이 댁의 딸에게 음악 레슨도 해주었는데 바즈니에가를 제2의 가정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3년을 다 채우지 못한 드뷔시는 커다란 혜택을 입었음에도 본분을 다하지 못한 젊은이라고 비판받았다. 그렇지만 이때의 로마 유학이 드뷔시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향수병에 시달려 3년을 다 채우지 못한 유학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의 체험은 그에게 예술적 사고를 높여주었다. 그는 로마에서 새로운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며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이자 대 작곡가인 리스트의 연주를 직접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드뷔시는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피아노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느꼈다. 리스트는 드뷔시에게 자신의 연주를 직접 들려주었는데, 이때의 연주가 드뷔시에게 멋진 감동을 선사했다고 한다. 드뷔시는 이때를 그의 일생 중에서 가장 대단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했다.

이탈리아에서 드뷔시는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도 만날 수 있었다. 드뷔시를 베르디에게 소개한 인물은 대본가이며 작곡가인 보이토였다. 베르디를 만난 것은 오페라 예술에 대한 새로운 견문을 쌓게 한 체험이었다. 드뷔시는 이탈리아에서 여러 오페라 악보도 접할 수 있었으며 이때의 학습은 후일 ‘펠리아스와 멜리상드’ 같은 걸작을 잉태하게 하였다.

2년의 유학을 마치고 드뷔시는 파리로 돌아왔다. 유학과 관련한 4곡의 작품이 파리로 돌아온 후에 완성되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로마 유학의 소득은 음악의 견문과 지식을 높였다는 데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유학의 체험은 소중한 경험으로 남는다. 드뷔시의 로마 유학은 2년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 2년 동안 우리의 천재 드뷔시는 여러 분야의 음악을 학습하고 자기 예술 성숙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로마에서 드뷔시는 프랑스 예술의 거목이 될 성숙기를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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